고독한 중년의 새해 결심, 따삐빠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살 더 먹었어요. 아직 철은 안 들었는데 속절없이 나이만 늘어갑니다.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쉽지는 않네요. 철들기를 바라는 마음에 결심한 게 있어요.
'따삐빠.'
탁구장에서 배운 말이에요.
'따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빠지지 말자.'
제가 요즘 틈만 나면 탁구를 칩니다. 탁구, 미치도록 재밌습니다. 탁구 아니었으면 은퇴 후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을 지경이에요. 탁구 시합을 하면 서브가 중요합니다. 첫번째 공을 어떻게 주느냐로 플레이가 결정이 나거든요. 복식에서 서브를 할 때는 탁구대 가운데 하얀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공을 보내야 합니다. 왼쪽으로 공이 가면 실점입니다.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오른쪽으로 올 공을 기다립니다. 이때 상대가 허를 찔러 가운데로 서브를 할 때가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하얀선 안쪽으로 파고드는 서브지요. 문제는 작은 탁구공이 하얀선 근처로 휙 지나가기 때문에 가끔 시비가 붙어요. "아웃!" 못 받은 사람이 그러지요. "세이프!" 넣은 사람의 주장입니다. 아웃을 억지로 세이프라고 우기지는 않아요. 상대방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 "노플레이"를 선언하고 다시 서브를 합니다.
1. 따지지 말자
탁구 시합을 할 때,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두고 너무 심하게 따지면 안 됩니다. 시비가 이어지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아니 그럼 나는 1점 따겠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 같애?"
2. 삐지지 말자
자꾸 따지다보면 삐집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요. 상대가 미워지지요. 재미나게 놀자고 시작한 게임이 썰렁한 분위기에서 끝이 나요.
3. 빠지지 말자
자, 이렇게 삐진 사람은, 다음에 복식 하자고 부르면 안 갑니다. 게임에서 빠집니다. "그냥 세 분이서 치세요. 저는 기계랑 연습 좀 더 할게요." 두 번 세 번 불러도 안 오잖아요? 그럼 이번에는 부르던 사람이 삐집니다. '내가 부르면 안 오고, 다른 사람이 부르면 가네? 사람을 무시하나?' 이젠 그 사람을 찾지 않아요. 그 결과 사람은 외로워집니다.
노후에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입니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생활이 위축됩니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집니다. 친구들과 모여 놀 때, 누가 엉뚱한 소리를 해도 너무 따지지는 않아요. '아, 저 친구는 저렇게 생각하나보다.' 하고 넘기려고요. 괜히 따지다 시비가 붙으면 삐지고요. 그럼 다음 모임부터 빠져요. 다들 재미나게 모여서 노는 데 나는 안 가잖아요? 그럼 나만 손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연쇄작용을 끊는 겁니다. 어쩌다 따질 수도 있어요. 또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가 내 말에 시비를 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삐지지는 않아야 해요. 살다보면 삐질 때도 있지요. 그래도 모임에서 빠지면 안 됩니다. 한번 두번 빠지다보면 나중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져요.
어리거나 젊을 때는 싫어도 나가야 하는 곳이 있어요. 학교가 그렇고 직장이 그렇지요. 친구에게 삐졌다고 학교 안 가는 사람은 없고, 상사에게 삐졌다고 회사 안 가는 사람 없잖아요. 노후엔 그런 의무적인 사회관계가 사라집니다. 내가 싫으면 아무도 안 만나고 살 수 있어요. 문제는 그런 외로움이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신적 괴로움은 육체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최고의 노후대비는 좋은 친구들과 만나는 재미난 모임을 많이 만들어두는 겁니다.
'따삐빠', 따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빠지지 말자.
2023년도 신년 결심입니다.
2020년 11월 이후 한동안 정말 외로웠습니다. 신문 칼럼을 잘못 쓴 건, 분명한 일이니 저를 비난하는 분들에게 감히 따질 수 없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데 그들의 말이 옳으니 삐질 수도 없었어요. 결국 저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내리고 혼자 칩거에 들어갔지요. 2020년 11월 이후, 긴 시간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며 많이 힘들었어요.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저는 도서관으로 피난을 갑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괴로움을 예전에 누군가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았다면 그는 책에 글로써 답을 남겨뒀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주제로 한 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제가 책 속에서 찾은 답을 다시 글로 엮었습니다.
2023년 1월 11일, 새 책 <외로움 수업>이 나옵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등 10년 넘게 저와 함께 일하시는 출판 편집자님이 문자를 보내셨어요.
'피디님, 출판사에서 지난 2년 동안 피디님 응원하고 기다려주셨던 블로그 독자들과의 아주 사적이고 소소한 출판기념회 같은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요. 독자분들 초청해서 책 드리고 피디님이 이 책 쓰면서 느꼈던 소회를 나누는 그런 자리로요. 어떠셔요?'
제가 올리는 글이 다 여러분의 마음에 들 수는 없을 거예요. 때로는 재미없고 의미없고 시시한 글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매번 찾아와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20년 11월 이후, 저는 온라인에 글을 쓰는 게 참 두려웠습니다. 그런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신 블로그 독자님들 덕분에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블로그 독자님들 여러분이 제게는 은인입니다.
오랜 시간 꾸준한 블로그 댓글을 통해 저를 응원해주신 독자 열 분을 초대합니다.
아리아리짱, 섭섭이짱, ladysunrise, 보리랑, 아프리칸 바이올렛, 꿈트리숲, 바람향기, 찬휘헌, 김주이, 초현 님.
<아주 사적인 초대 : <외로움 수업> 출간사은회>는 2023년 1월 14일 토요일 오후 2시에 홍대 인사이터홈에서 열립니다.
그날 뵐게요.
더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행사는 계속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다음 기회를 또 기약합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모두 은인이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