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2. 10. 14. 05:39

(요즘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도서관>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합니다. 오늘은 그 원고를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식 피디입니다. 저는 1996년에 MBC PD로 입사해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했습니다. 신인이던 조인성을 캐스팅했던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입사 4년 만에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을 탔고요. 다니엘 헤니와 <느낌표>를 찍기도 했습니다. 10년간 예능 피디로 일하다, 나이 마흔에 드라마 피디로 이직을 했습니다.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를 연출하고, <내조의 여왕>을 만들었습니다. 드라마로 이직한 지 3년 만에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장르를 바꿔가며 매번 새롭게 도전하는 저를 보고 회사에서는 ‘겁 없는 피디’라고 불렀습니다. 자, 여기서 퀴즈. 그럼, 저의 대학생 시절 전공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한양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자원공학과가 어떤 학문을 배우는 과인지 아십니까? 모른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저도 모르고 입학했으니까요. 과의 정체를 알게 된 건 신입생 수강신청 할 때였어요. 과목을 보니, 석탄채굴학, 석유시추공학이더군요. 원래 이름은 광산학과였어요.
저는 원래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1지망 선택했어요. 2지망으로는 비인기학과였던 자원공학과를 썼습니다. 재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거든요. 제가 87학번인데요. 마침 자원공학과는 86년도에 정원미달이었어요. 지원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과라는 말에, 앗싸! 하고 지원했는데요. 내신이 15등급에 7등급이라 1지망 똑 떨어지는 바람에 2지망인 자원공학과에 갔어요.
원래 이름이 광산학과였다는 걸 알고 멘붕에 빠졌지요.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가 아니라요. 저처럼 어둡게 생긴 사람은 탄광 가서 일하면 위험할 것 같았어요. 인물과 배경의 구분이 안 가서 동료들의 곡괭이를 맞을 수도 있잖아요.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얼굴이 까맣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탄광 가서 검댕이를 묻히며 일하는 건 싫었어요.
전공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만 하다 군에 입대했어요. 방위병이라 해서 집에서 출퇴근하며 복무했는데요. 주말이면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었어요.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독자 시상 행사를 하는데 제가 최우수상을 받는다고요. 여쭤봤어요. 제가 1년간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려 읽었나요? 200권의 책을 읽었대요. 
1980년대 말 제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중에는 앨빈 토플러 3부작이 있어요.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 이동>. 앨빈 토플러는 1980년대 유명한 미래학자였어요. 그는 다가올 21세기의 두 가지 변화를 예언합니다. 세계화와 정보화. 지금 여러분이 듣기에는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 같지요? 하지만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말에는 세계화와 정보화는 생소한 단어였어요.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건 1991년도 일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배낭여행은커녕 어학연수나 교환학생도 없었어요. 외국에 나가는 일도 드물었는데 세계화라는 말이 실감이 났을까요? 정보화도 마찬가지예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커녕 집에 피씨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대학 정보 실습실에서 컴퓨터라는 걸 처음 봤어요. 그런 제게 정보화라는 말이 실감이 났을까요?
그런데 제가 1980년대에 도서관에서 읽은 수많은 책들이 다가올 21세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라고 예언하는 거예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가 온다면, 가장 유용한 도구는 무엇일까요? 난 그게 영어라고 생각했어요. 영어를 잘하면, 글로벌 마켓에 나가 물건을 팔 수도 있고, 번역이나 통역의 도움 없이 최신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자, 여기서 잠깐 저의 대학 시절 성적증명서를 볼게요. 2학년 1학기 전공 성적을 보세요. 처참하지요? 죄다 C 아니면 D입니다. 졸업 후에 뗀 성적표라 그나마 F는 안 보이는데요. F가 나오면 재수강을 해서 C나 D를 받은 겁니다. 보시면 영어도 D를 받았어요. 대학 2학년 때까지 저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1989년에 휴학하고 도서관을 다니며 영어학습서를 읽었는데요. 해외 유학을 갈 수 없는 시절이라 그즈음 유행하는 영어 공부 방법은 문장 암기였어요. 그래서 영어 회화 교재를 통째로 한 권 외웠어요. 독해 공부도 하고 싶은데, 인터넷도 없고 유튜브도 없어 영어 학습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마침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미국 잡지 타임지가 있었어요. 타임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사설을 복사했어요. 군부대에서 복무하면서 여가 시간에는 타임지 사설을 읽고 번역을 했어요. 1주일이 지나면 타임지 한국어판이 도서관에 들어와요. 내가 한 번역이랑 비교해보며 틀린 곳을 찾아내는데요. 가끔 전문 번역가가 한 기사에도 번역 실수가 있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영어 기사를 급하게 번역해 잡지를 만드느라 실수가 나오기도 해요. 그때 깨달았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실수하는 건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한 탓이구나. 나는 지금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영어를 공부한 시간이 부족한 거구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 실력은 저절로 오를 것이라 믿었어요. 
영어 세계라는 잡지를 도서관에서 봤는데요. 독자 번역 응모 코너가 있었어요. 영어 학습 자료가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1등 상품이 영작문 전집 9권이라는 얘기에 도전했어요. 그랬다가 제가 A급 번역에 선정되었어요. 혼자 하던 영어 공부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이듬해 3학년에 복학해서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갔는데요. 2등상을 탔어요. 2학년 1학기 영어 성적 D를 받던 사람이 3학년에 복학해서 전국 대학생 영어 경시대회 2등을 했어요.
영어를 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공부에 있어 중요한 것은 What 무엇이나 How 어떻게가 아니라, Why 왜? 입니다. 어떤 교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부를 왜 하는지 이유를 아는 거죠.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영어를 공부할 이유를 발견했고요. 도서관에서 빌린 잡지나 교재를 보며 영어 실력을 키웠어요. 제가 대학을 다닌 1980년대는 토익 점수가 없어도 취업에 지장이 없었어요. 남들이 영어를 공부하지 않던 80년대에 혼자 독하게 영어를 공부했어요. 회화책을 한 권 통째로 외우면, 누구나 영어를 잘 할 수 있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업할 때 전공을 살리고 싶진 않았어요. 전공을 살리지 않고 취업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영업사원을 하면 됩니다. 영업은 전공 불문이거든요. 토익 고득점자가 드물던 시절, 토익 980점을 맞은 덕분에 1992년에 미국계 회사에 취업했고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직장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나왔어요. 직장 생활이 성격에 맞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프리랜서를 하면 됩니다. 저는 프리랜서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외대 통역대학원에 입학했어요.


그러다 1995년에 제레미 리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을 읽었어요. 20세기 산업혁명의 결과,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요. 21세기 정보혁명의 결과, 인간의 정신노동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요. 심지어 컴퓨터의 언어 정보 처리 기술이 발달하면 자동통역기나 번역 프로그램이 나와 통역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했어요. 통역대학원을 다니던 저는 기겁을 했어요. 
다가올 21세기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직종은 무엇일까? 책을 보니, 컴퓨터가 발달하면 소설 번역도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컴퓨터가 좋아져도 사람 대신 소설을 쓰는 시대가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21세기에 오래 살아남을 직종은 창작자라고요. 20세기가 활자 문명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영상 문명의 시대니, 21세기에 잘나가는 직업을 얻고 싶다면, 미디어 산업의 창작자가 되어라고 했어요. 
책의 조언을 받아들여 1996년 MBC PD 공채에 지원해 예능 피디가 되었어요. 광산학과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다 피디가 되었으니 연출 업무가 어렵지 않았냐고요? 어려서 기른 책 읽는 습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미디어에 대한 책도 많고 피디가 쓴 책도 많아요. 책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 전공 못지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피디로 일하며 늘 즐거웠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1년에 200권씩 책을 읽었어요. 미래에는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 말하는 책이 많았어요. 소셜미디어가 부상하며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위축될 거라는 예언도 많았고요. 100세 인생이라는데, 과연 공중파 피디로 앞으로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지요. 그즈음 최재천 교수님이 쓰신 책을 만났어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2005년에 나온 책인데요. 부제가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였어요. 고령화 시대에는 20대에 얻은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나이 40, 50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거죠. 노후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고민 끝에 1인 창작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MBC를 다니면서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어요. 블로그에 7년 가까이 올린 글 중 영어 학습 노하우만 엮어낸 책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그 책이 인터넷 서점 연간 베스트셀러 종합 10위에 올랐어요. 책 한 권으로 인세만 2억 넘게 벌었고요. 피디 월급에 저자 인세까지 받는다는 소문이 돌자 회사에서 동료 피디들이 물어보더군요. 책을 어떻게 쓰는지. 출판사와 계약은 어떻게 하는지. 그 질문에 답을 하고자 또 책을 썼어요. <매일 아침 써봤니?> 
대학 4학년 여름방학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돌아오며 결심했지요. 이렇게 재미난 배낭여행, 매년 한 번씩 다니자. 그렇게 결심하고 1992년부터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한 차례씩 해외여행을 다녔어요. 그 경험에 대해 쓴 책이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입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 쓴 책이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고요. 
공중파 드라마 시장이 위축되는 걸 보고, 2021년에 명예퇴직을 선택했고요. 지금은 작가와 강사로 인생 2모작에 도전하고 있어요. 세상의 변화를 책을 통해 깨달았고, 책의 조언대로 미리 대비한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얻어 즐겁게 살고 있어요. 지금도 저는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어 인생을 바꾼 사람이 들려드리는 다독의 비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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