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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영암 벚꽃길 기행

김민식pd 2022. 4. 20. 06:00

요즘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도서관 강의를 자주 다닙니다. 2022년 4월 5일, 6일 양일간 전남교육청 연수를 다녀왔는데요. 뜻하지 않은 벚꽃길 여행이 되어 독자 여러분과 여행기를 공유합니다.


아침 6시 40분, 수서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오전 8시 40분, 나주역에 도착했어요. 내려가는 객차에 비치된 SRT잡지를 보니, 올해가 '전남 방문의 해'로군요. 와우! 옆에는 기차에서 읽으려 가져간 책입니다. 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 + 정세랑 작가님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강추!

남쪽으로 내려가니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벚꽃이 한창입니다. 그날 영암교육지원청에서 강의를 하는데요. '영암 벚꽃'을 검색하니 왕인박사 유적지 주변이 벚꽃 명소라고요. 와우! 달려갑니다!

나주역에서 내려 나주시청 버스정류장에서 영암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영암 버스는 나주시 버스정류장에 안내가 안 뜨네요.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1시간을 기다려도 안 오네요. 그런 제가 안타까운지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그러셔요. 

"원래는 버스가 많았는데, 요즘은 인구가 줄어서 운행 편수도 줄었어요."

지역소멸이라는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영산포 터미널로 가서 영암 가는 직행버스를 타라고 하시네요. 터미널에 가서 영암 가는 버스표를 끊었습니다.


영암 터미널에 도착한 건, 결국 오전 11시 30분입니다. 터미널에서 왕인박사 유적지까지 또 버스로 30분인데요. 여기도 정확한 배차시간은 안 뜨네요. 그냥 포기합니다. 오후 3시 강의인데, 시간이 빠듯하면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거든요. 

오늘의 질문 : 현지 사정으로 여행 일정이 꼬일 땐 어떻게 할까요?

그럴 때는 그냥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찾아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에요. 계획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아예 포기해버리지는 않아요.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찾습니다. 터미널에서 영암 교육지원청까지 걸어서 30분인데요. 마을 나들이하듯 찬찬히 걸어서 갑니다. 그냥 동네를 산책하며 걷는 것도 다 여행이니까요. 제가 서울에서 한강 마실을 다니는 것도 여행이듯. 그런데...

헐? 여기 벚꽃이 도로 양쪽으로 만개한걸요? 

알고보니 영암군에는 100리 벚꽃길이 있고요. 왕인박사 유적지 주변이 명소지만, 터미널 근처가 '문화가 있는 벚꽃길'이 조성된 곳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꽃구경을 하며 걷습니다.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이곳은 영암 수성사입니다. 60세 이상의 전직 관리나 학자들의 수양처랍니다. 쇠락해가는 한옥 건물이 쓸쓸하지만, 그래도 정원에 예쁜 벚꽃이 한가득 피었어요. 

이제 저는 낙향한 선비처럼 살고 싶어요. 욕심을 버리고, 수양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피며 살고자 합니다. 

벚꽃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영암 향교가 나옵니다. 

향교 뒤편에 영암 도서관이 있어요.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텅 빈 열람실에 혼자 앉아 열차에서 읽던 정세랑 작가의 책을 이어 읽습니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맞아요. 책벌레만큼 도서관을 사랑할 수도 없을걸요? ^^

책을 읽고, 다시 영암군 마을 산책을 하듯 찬찬히 걸어서~

오늘 강의를 할, 영암교육지원센터에 도착했어요. 

꽃길을 따라 찾아온 곳이에요. 

함께 만들어가는 영암교육 행복 시대.

학교도서관 관계자 순회 연수에서 강의를 합니다. 책벌레에게는 무한한 영광이자, 감사한 일이지요. 

강의가 끝난 후, 광주로 가는 길, 영산강 자전거길을 차로 달려봅니다. 광주에도 곳곳에 벚꽃이 예쁘게 피었네요. 

다음날에는 장성에서 강의가 있어, 서울로 가는 대신, 장성에서 1박을 합니다. 


현지 교통편 연결이 뜻대로 되지 않아, 왕인박사 유적지는 가지 못했지만, 영암군 걷기 여행만으로도 눈호강을 한 하루였어요.

결국 인생은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기에, 차선과 끝없이 타협하고 사는 게 아닐까요?

직장인으로서 저의 최선은 정년퇴직까지 MBC에서 버티는 것이었는데요. 어느 순간, 명예퇴직이라는 차선을 선택해야 했어요.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여전히 다하려고 합니다. 지역 소멸의 시대, 지역의 청소년을 지켜줄 수 있는 공간이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관계자분들에게 도서관의 의미에 대해 강연을 다니고 있어요. 차선과의 타협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렵니다.

블로그 업데이트 횟수를 줄이겠다는 말씀에 제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실은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상의 사정입니다. 이번주에도 화요일은 담양, 수요일은 화순, 목요일은 나주에서 강의를 합니다. 결국 2박3일 출장을 왔지요. 지방 강의를 다닐 때, 도보 여행을 위해 가볍게 짐을 꾸리고 다닙니다. 노트북까지 챙기면 짐이 무거워 걸어다니기 쉽지 않거든요. 미리 3일이나 4일치 글을 써두고 예약을 걸어두다보니, 주말 내내 집에서 블로그 글만 쓰는 거예요. 평일에는 지방 출장을 다니니 주말에는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도 하고, 다음 책 원고 작업도 해야 하거든요. 결국 아쉽지만 블로그 업데이트 횟수를 줄이기로 했어요.

지속가능한 은퇴 생활을 위한 결정이니,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분간 월수금에 만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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