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내 친구
(요즘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도서관 저자 특강을 다닙니다. 강의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방학을 맞은 중학생 딸과 책 이야기를 하다, 자랑삼아 그랬어요. “아빠, 책 진짜 많이 읽지?” 딸이 그러더군요. “왜 그런지 알아? 아빠는 친구가 없어서 그래.” 아, 정곡을 팍 찌르는 말입니다. 저는 나이 50대의 중년 남성이지만,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고 골프도 안 치고 동창회도 안 나갑니다.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책을 읽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요. 새벽에 일어나 또 책을 읽습니다. 결국 제 다독의 비결은 친구가 없기 때문인데요. 대학 시절에도 그랬어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학과 활동에 겉돌았어요. 과 친구는 없었지만 외롭진 않았어요. 1980년대 말 조정래 작가가 쓴 <태백산맥>이나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읽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거든요. 열 권 짜리 대하 소설 속에서 염상진, 김범우, 곽정, 황용 같은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요.
복학하고 영어 공부를 겸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 저자에게 홀딱 반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초 스티븐 킹의 작품은 아직 번역된 게 별로 없었어요. 용산 미군 부대 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책 사냥에 나섰어요. 한 권 2000원하던 영문 페이퍼백 헌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스티븐 킹에 중독되어 전작 읽기에도 도전했어요.
아마 영문법이나 타임지 같은 잡지를 보며 독해를 공부했다면 영어 공부에 재미를 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스티븐 킹이라는 재미난 작가를 만난 덕에 영문 소설을 읽는 데 맛을 들였고요. 그 덕분에 영어 실력이 쑥쑥 늘었지요. 스티븐 킹은 다작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의 책을 몽땅 읽느라 독해 실력이 엄청 늘었어요. 스티븐 킹이라는 부지런한 친구를 얻어 내 삶이 더욱 윤택해진 거죠.
스티븐 킹 못지않게 부지런한 작가로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있어요. 평생 500권 이상의 책을 낸 걸로 유명한 분이죠. 그분의 책을 읽다, '이 재미난 작가의 책이 한국에는 왜 없을까?' 싶어 출판사에 찾아가 직접 아시모프의 책을 번역하고 책을 내기도 했어요.
도서관에서 만난 책들은 제게 정신적 아버지이자, 길을 보여주는 스승이자, 즐거움을 주는 친구였어요. 그럼 이 좋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첫 번째, 읽을 책은 직접 골라야 합니다.
저는 '필독 도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서가에 꽂힌 책등을 손으로 주욱 훑으며 제목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목이 제게 말을 걸 때가 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한 권 읽어 보지도 못했다, 어쩔래?' 그런 책은 꺼내어 표지를 살펴봅니다. 표지 디자인이 쌈빡하니 눈길을 끌어야 합니다. 매년 3만 종 이상의 신간이 나오지만, 모든 책이 다 잘 팔릴 거라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팔릴 것 같은 책에 출판사에서는 투자를 더 합니다. 그게 바로 표지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일이에요. 독자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리는 책은 일단 표지로 눈길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표지에 힘이 없다면, 다시 서가에 꽂아도 좋습니다. 내 눈을 사로잡는 표지라면, 이제 그 표지를 넘겨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습니다. 저자의 삶이 부러워야 해요. '이 책을 읽는다면, 나도 이 저자처럼 살 수 있을까?' 제목, 표지, 저자 소개에 이어 서문과 목차까지 읽고 마음이 동하면 선택합니다. 이렇게 책을 직접 고르는 과정이 있어야 독서가 즐겁습니다.
두 번째, 책은 쌓아놓고 읽어야 합니다.
저는 최소 다섯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습니다. 첫 번째 책이 재미가 없으면, 덮고 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그다음 책도 재미가 없으면, 다시 세 번째 책으로 가고요. 그러다 어떤 책에 꽂히는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 그 책을 끝까지 읽습니다. 다 읽은 다음에는 다시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요. 책을 한 권만 읽는다면, 읽다가 재미가 없다면, 독서를 그만두기 십상입니다.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다 문득 SNS를 들여다보고, 신상품 소개에 마음을 뺏겨 쇼핑몰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속에 재미난 게 너무 많아 한번 들면 내려놓기 쉽지 않습니다. 책 한 권만 읽다가 흥미가 없어지면, 독서를 그만두기 쉽습니다. 여러권을 쌓아놓고 끊임없이 이어서 읽는 게 다독의 비결입니다.
세 번째, 책을 읽은 후, 기록을 남깁니다.
그냥 읽고 지나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독서일기를 쓰면, 책의 중요한 내용이 내 것이 되어 남습니다. 독후감같은 숙제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날짜와 책 제목과 저자만 기록해도 좋습니다. 여기에 책의 한 줄 평을 추가해보세요. 표지에 적힌 책 소개 글을 옮겨 적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런 다음 책을 읽다 마음에 든 대목이 있다면 옮겨 적어 봅니다. 노트에 적어도 좋고 휴대폰 메모장에 남겨도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제목, 저자, 소개, 마음에 드는 글귀.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갑니다. 목표는 자신만의 총평을 쓰고, 마음에 드는 글귀를 쓴 다음 그 글이 마음을 움직인 이유를 적는 것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바빠서 책 한 권 읽을 짬이 없을 수도 있고요. 그런 분을 위해 저는 블로그에 독서일기를 남깁니다. 한 편의 글로, 책 한 권의 핵심을 전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울린 글귀를 공유할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담아 글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독서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요.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동시에 읽고, 그렇게 읽은 책은 세상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은퇴하고 전국의 도서관을 다니며 강연하는 것이 삶의 낙입니다.
사서 선생님들, 연락주시면 달려갈게요~
블로그 방명록이나 댓글에 비밀글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연락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