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에 진심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줌바 댄스를 배웁니다. 수업 시간에 흥겹게 춤을 추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 재미난 걸 쉰 다섯의 나이에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다 문득, '어? 내가 언젠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싶었어요.
때는 바야흐로 1987년. 대학 신입생 시절, 저는 멘붕에 빠져 있었어요. 대학 입시에서 1지망 낙방한 겁니다. 고3 1학기 대입 모의고사에서 225점을 받아 반에서 22등을 했던 제가, 학력고사(당시 대입시험)에선 284점을 받아 반에서 2등을 기록했어요. 6개월 동안 이 악물고 미친듯이 공부를 했거든요. 성적도 안 되는 아들에게 매일 의대를 가야한다고 종용하는 아버지로부터 달아날 길은 서울로 가는 거라 생각했어요.
어려서 문과를 가는 게 꿈이었는데, 아버지가 억지로 저를 이과로 보냈어요. 이과에서 그나마 문과쪽 학문을 가르치는 전공을 찾아봤더니 산업공학과가 있어요. 공업경영학과라고도 불리는데요. 경영학과 경제학을 함께 공부한다는 말에 지원했다가, 10등급 중 5등급이라는 낮은 내신 때문에 떨어졌어요. 안전지원한다고 2지망은 당시 가장 커트라인이 낮은 자원공학과를 썼는데요. 2지망 겨우 합격했어요. 알고보니 원래 이름이 광산학과였고요. 석탄채굴학, 석유시추공학을 가르치는 곳이었어요.
1지망 떨어진 걸 보고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6개월 간 공부해서 성적을 올린 걸 보니, 1년간 재수를 하면 의대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6개월 간 죽어라 공부해도 낮은 내신 탓에 공대 1지망에도 낙방하는데, 의대를 감히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아버지한테 혼나겠지요. 고집불통 아버지가 재수를 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수를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학력고사 점수가 높아 당시 저는 한양대에서 입학금과 등록금 면제를 받았어요. 일단 1학기 등록을 해야 장학금을 받는데요. 기왕에 등록한 김에 학과를 다니면서 제 적성에 맞는지 살펴보고 아니면 바로 재수를 하겠다고요. 아예 재수를 안 하겠다고 뻗댔다면 뒤지게 혼났겠지만, 나중에 반수를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도 일단 물러서시더군요. 고집불통 부모님과 소통을 할 때, 상대방에게 물러날 수 있는 여지를 줘야해요. "죽어도 못합니다!"하고 고집을 부리면, "그래? 그럼 너 죽고 나 죽자."하고 나오시거든요.
자원공학 공부는 재미가 없었어요. 적성에도 맞지 않고요. 연애라도 해볼까 하다 소개팅 미팅 과팅 나가는 족족 차였어요. 나이트클럽에서 헌팅이라도 할까? 싶어 춤을 추기 시작했고요. 나이 스무살에 그만 춤바람이 납니다. 춤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 재미난 춤을 나이 60에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닐까?'
나이트클럽 죽돌이로 사느라, 감히 반수는 꿈도 꾸지 못했고요. 그냥 대학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든 춤만 출 수 있으면 된다, 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통역대학원 다닐 때, 제가 춤추는 걸 본 동기들이 "형처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예능 피디를 해도 잘 할 텐데."라고 말하는 걸 듣고 진로를 바꾸기도 했으니, 춤이 제 인생을 바꾼 거죠.
어려서 아버지가 늘 그러셨어요. '행복은 남보기 번듯한 직업을 얻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사는 데서 온단다. 그러니 너는 의대를 가야 해.'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버지, 저는 남보기 번듯한 직업을 얻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즐거운 직업, 내가 재미를 느끼는 일을 찾는 게 목표입니다.'
춤을 추고 싶을 때, 춤을 출 수 있는 게 행복입니다.
유튜브 굿라이프 채널에서 새로운 코너를 시작했습니다.
"Jay 쌤의 신나는 줌바"
진행을 맡아 동작을 배우고, 함께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업로드된 영상을 보니, 제가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고 있군요. 일주일에 두 번씩 줌바 수업을 받으며, 저는 늘 저렇게 웃고 있어요.
"아, 이 나이에 이렇게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으니, 인생에서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으랴."
스무살의 꿈을 이룬 행복한 남자의 춤사위, (아니, 몸부림, ㅋㅋㅋ), 유튜브에서 확인하세요~^^
매주 금요일 아침에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