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3. 9. 11. 05:42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에 저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었습니다. (당시 제목은 '카네기 처세술')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세미나를 듣고 인생이 달라진 많은 사람들의 예화가 나왔어요. 나는 당시 자원공학과(구 광산학과)를 다니며 석탄채굴학이나 광석역학이라는 전공 공부가 재미가 없어 고민중이었어요. 그런 나도, 그 책을 읽고 나니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 책을 읽고 대인 관계에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세가지 조언은요. 

1.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라.

2. 상대를 웃기려는 대신 상대의 말을 듣고 적절한 순간에 웃어라.

3.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 책을 읽다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저자가 다니면서 세미나를 열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이었지요. 1980년대 당시 한국에는 그런 직업이 없었어요. 인문학 열풍이 불고 강연 포맷이 TV 예능을 주름잡아 김미경 김창옥 등의 인기 강사들이 등장한 건 200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을 읽다 그 저자의 직업에 매료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당신도 인생역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변화의 의지를 불어넣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미국에는 그런 직업도 있더군요. 미국 원서를 읽다 그런 사람을 motivational speaker(동기부여 연설가)라고 한다는 걸 알았어요. TV 선교 방송에 나와 성경 말씀을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TV 전도사들도 일종의 동기부여 연설가였어요.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동기부여 연설가. 한국에 그런 직업은 없었어요. 20대의 나는 언젠가 동기부여 연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동기부여 연설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직업을 구하고, 일에서 성과를 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젊어서 직장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야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요. 그래서 취업을 위해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영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4학년 때 교내에서 무료 세미나를 열었지요. <영어 잘 하는 방법, 무료 강좌>.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영어교육 전문가도 아닌,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한 공대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무엇보다 1992년에는 영어를 굳이 잘하지 않아도 취업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대학생들 앞에 서서 '다가올 21세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이니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으나 별 반응은 없었어요. (열정만 가득했던 시절입니다.)

대학 졸업하며 8군데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는데 7군데에서 서류 낙방했어요.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더군요. 결국 외국계 기업에 영업사원으로 취업했습니다. 세일즈는 또다른 의미의 동기부여 전문가라고 느꼈습니다. 고객에게 제품 구매의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기술 제품과의 만남으로 고객의 매출과 성과를 올려준다고요. 영업이 내 천직이라 느끼며 뛰어다녔는데요. 좌절할 때도 많았지요. 영업사원을 환대해주는 곳은 별로 없거든요.

방송사 피디가 되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동기 부여 전문가가 된 것 같았어요. 작가에겐 더 좋은 대본을 쓸 수 있도록, 배우에겐 더 나은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스탭에겐 더 멋진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 피디거든요. 퇴직을 하고, 요즘 저는 진로 특강을 다닙니다. 학생들에게 말해줘요.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한다면, 당신에게는 잘하는 일이 생길 겁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새로운 일의 기회는 어디서 찾을까요? 저는 책을 읽습니다. 책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아봅니다. ​20대에 꿈을 꾸었어요. 50대에 그 꿈을 매일 이루며 삽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동기 부여 전문가로서 쓰는 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공짜로 즐기는 세상, 매일 매일 즐기며 살아요~' 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띄웁니다. 

이번 한 주도, 우리 멋지게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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