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독서 일기

자신을 긍정하는 일

김민식pd 2020. 8. 21. 05:47

20대에 책을 많이 읽은 건, 할 일이 없어서였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한 이유고요. 외로움과 권태를 붙들고 살아가는 제게, 독서는 구원입니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어요. 이렇게 훌륭한 스승을 책으로 만나 배울 수 있으니, 이것이 독서의 즐거움이구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저자는 소설가 김연수가 적어놓은 문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먼저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 다섯 배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므로 한 번 비난을 받으면 다섯 번 칭찬을 받아야 마음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인 것이어서 그 덕분에 우리 존재가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것 등이 그의 체험적 결론이다.‘

 

살면서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일이 내내 마음에 남습니다. 응원하는 수 백 명 팬보다, 악플러가 남긴 댓글 하나에 더 상처받는 게 사람이거든요. 하루하루의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을 글로 기록합니다. 책에서 만난 보석 같은 글이며, 일상에서 만난 여행 같은 풍경이며. 글을 쓰며 내 삶을 긍정합니다. 대학생을 상대로 발행하는 잡지의 기자를 만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멘토가 될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거예요.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예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 거예요. 인간이니까.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 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예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맞아요. 살면서 힘든 일을 끊임없이 겪습니다. 인간은 고난과 시련에서도 배웁니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우겠지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책에는 ‘마르크스의 사랑’이라는 글이 있어요.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길이기는 하지만, 쉽고 빠른 길은 아니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섬세하고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해야 한다. 그 어렵고 느린 길을 걸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은 그 대신 권력을 가지려 한다. 권력을 얻어 명령의 주체가 되면 커뮤니케이션을 생략해도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비행기나 호텔에서 여성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남성 권력자들은 사랑 대신 지배를 선택했고, 그런 의미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26세의 칼 마르크스는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돈이 인간관계를 비틀어놓지 않은 상태를 가정해보라고, 그때의 교환은 어떨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인간이 인간일 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인간적인 것일 때, 그럴 때 당신은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오직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다. 당신이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으로 거의 모든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청년 마르크스가 가정하는 “인간적인” 세계에서는 다르다. 그곳은 사랑/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신뢰를 줘야 하는 세계다.’

 

마르크스를 혁명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문학 평론가의 눈을 통해 그의 글을 읽으니, 예술가로군요.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기를 희망하는 예술가. 책을 읽으며, '아, 이래서 신형철, 신형철 하는구나, 했어요. 주말에는 신형철 평론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으며 칩거의 시간을 보내렵니다.

힘든 시절, 책과 함께 건강하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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