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즐기는 세상

독자와의 점심 후기

김민식pd 2019. 1. 25. 06:31

작년 말, 교보문고에서 저자와 독자가 만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는데요. 오늘은 그 후기를 공유합니다. 모임을 잘 정리해주신 블로그 기자님, 고맙습니다!


다른 독자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개인이 조직에 꼭 적응해야 할까? 애초에 개인에게 맞는 조직이 있기는 할까?” ‘나’라는 울타리를 떠나 세상에 발을 디뎌본 무수한 사회인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쳐 갔을 고민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궁금했다. “개인을 조직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의 욕망에 아주 충실하게 삽니다. 다만 나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의 욕망만큼이나 타인의 욕망도 긍정해줘야 돼요. 그리고 ‘과연 나는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봐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 저는 책을 많이 읽으려 해요. 혹시라도 제가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잘못된 길로 가면서 고집을 세우는 건 좋은 길이 아니잖아요.” 


이 모든 것을 헤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거기에 주위 상황까지 살피다 보면 생각이 깊어져 선뜻 행동하기 어려울 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김민식 작가는 “때로는 다 볼 필요 없어요. 집중해서 보는 거예요”라는 말을 던졌다. “저도 학교에 강의 가보면 자는 애들 많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와중에 눈이 반짝반짝하는 애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제가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또 제가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러면 그것만 보고 가는 거예요.” 숲 전체를 돌보기가 벅차다면, 숲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내려놓고 한 그루 나무에 정성을 쏟는 방법이랄까. 


그렇다고 김민식 작가가 숲을 포기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큰 인기를 끌고 화제가 되는 시트콤을 만들어왔던 그인지라,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이 밝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독자가 그에게 대중의 관심을 파악하는 비결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세상을 연구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요. 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라고 예측했던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만약 엄마아빠가 앞으로는 부동산이 주류라고 해서 공인중개사가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면, 좋아하지도 않는 걸 열심히 한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는 건 이렇듯 허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를 보는 일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사람인지를요.”  


만약에 어떤 사람을 하나의 도구에 비유한다면, 김민식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내는 나침반일 것 같았다. 세상을 탐색할 때도, 재미있는 것을 물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재미있는 것을 찾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단 스스로 해보는 편”이라고 답했다. 춤만 해도 그렇다. 작가의 중고등학교 시절, 나이트클럽은 불량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그런데 87년도에 나이트에 처음 가보니까, 조명은 막 돌아가고, 음악은 둠둠 하는 게 심장이 같이 뛰는 것 같고. ‘여기는 천국이 아닌가? 이렇게 좋은 걸 엄마아빠는 왜 못 가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당연히 재미의 여부는 타인의 잣대가 아니라 직접 해보고 나서 판단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든 스스로 겪어본다는 그의 신조 덕분인지, 김민식 작가는 여러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방송국 피디라는 한 가지 일만 해도 충분히 바쁠 텐데, 저서를 내기도 하고 또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등 손에서 펜을 놓지 않는다. 한 독자는 지금은 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로서 글도 쓰고 싶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1퍼센트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사실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서, 어느 한 분야에서 상위 1퍼센트가 되기란 정말 어려워요. 자 그런데, 목표를 상위 30퍼센트로 잡는 거죠. 왠지 그 정도면 노력해 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자, 봐요. 먼저 상위 30퍼센트의 의사가 된다고 합시다. 그리고 책을 써요. 근데 꼭 베스트셀러를 쓰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한 30퍼센트 정도 안에 들어가는, 적당히 팔리는 책을 써보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 교집합을 생각해 봐요. 대한민국에서 책을 쓰는 의사는 1퍼센트밖에 없단 말이죠. 그게 요즘 제 전략이에요. 맨 처음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썼을 때가 그랬어요. 그 많은 피디들 중에서 통역사는 없으니까. 통역사는 많은데, 그중에서 시트콤 피디는 저밖에 없으니까. 그 교점에서 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위치를 찾아냈던 거죠. 심지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교집합을 이루는 원을 하나씩 더 만들어갈 수 있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 저 위로 올라가려고 할 게 아니라, 옆에 어떤 원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까를 궁리하면 됩니다.” 


[출처] 김민식 작가와의 점심, 교보문고 보라런치|작성자 VORA


도서관 강연을 가면, 질의응답 시간이 가장 즐거우면서도 어려워요. 이게 즐거운 건, 내가 준비한 이야기만 반복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게 어려운 건, 내가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정답이 없어요. 사람마다 더 잘 맞는 답이 있을 뿐... 그럼에도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그걸 단서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죠. 독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요.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추운 날씨에,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체 소식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https://blog.naver.com/vora_kyobobook/221437209503


2000년 '논스톱' 시트콤 사랑 정모에서 나눠드린 대본을 가져오신 이상화님, 반가웠어요!

피디로 일하면서 꾸준히 다음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어요.

그 덕분에 작가라는 직업도 얻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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