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PD 공채 시험 볼 때 가장 어려운 과정 중 하나가 기획안 작성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TV 프로그램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예능국에서 버라이어티 쇼 연출할 때의 일이다. 느낌표라는 공익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일했는데, 어느날 김영희 선배님이 불렀다. "새 코너 기획안 만들어 와." 김영희 국장님이 내주신 과제는 간단했다. '세상을 바꾸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라.' 이 대목에서 여러분도 잠깐 고민해봐주시기 바란다. 세상을 바꾸는 프로그램, 어떻게 만들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들여다 봐야 한다. 세상만사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들여다본단 말인가. 자신을 들여다 보라.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보라.

내가 살면서 세상에 가장 많이 상처받은 일은 무엇이었나? 그 고민에서 나의 기획은 시작되었다. 거창한 세계 평화나, 평등의 가치, 교육 문제... 이런 건 나에게 와닿지 않는 문제였다. 어린 시절 나의 고민은?

난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유명한 왕따였다. 반에서는 아이들이 우리 반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로 나를 뽑았고, (생각해보면 또 다시 울컥한다. 그런 투표를 도대체 왜 한거지?) 아이들은 내놓고 나를 놀려댔다. 이유는? 내가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마른데다 입술이 두꺼워서... 즉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늘 나를 따라다니는 별명은, 베트콩, 보트피플, 필리피노... 뭐 이런 별명들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것? 외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어린 시절 단지 동남아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걸로 놀림을 받았는데, 요즘 농촌에 가보면 엄마가 동남아 사람이여서 그런 외모를 지닌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도 나와 같은 지옥을 겪게 되는 걸까? 난 그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기획안이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3탄, 집으로'였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엄마 중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후 친정에는 못 가본 사람이 많았다. 친정 엄마에게 외손주 얼굴도 못 보여드린거지. 그런 아이를 데리고 아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며 늘 그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랑 다르게 생겼고, 이상하게 말하는 걸까?' 난 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엄마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쓰며 사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 기획안을 쓰라고 하면 다들 거창한 세상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런 기획안의 문제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아픔에서 시작하라. 나의 컴플렉스, 나의 단점까지도 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연출로 사는 가장 큰 기쁨이다.

   
혼혈아동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꺼이 게스트가 되어 주었던 다니엘 헤니! 몸도 마음도 진짜 멋진 친구다. 

(마님은 이 사진을 보고 딱 한마디했다. "다니엘 헤니 옆에서 꼭 사진을 찍고 싶었어? 이거 자살행위아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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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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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피용 2011.11.0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민하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고민해봤는데 역시 거창한것 부터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한편으론 제게도 분명 이야기가 있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많은 일이 있을 앞으로의 제 삶이 참 기대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용^^

  2. 권상민 2011.12.08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니엘 헤니도 김 PD님도 사진 정말 훈훈하네요 ㅎㅎ

  3. readwritewalk 2018.04.08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김민식 피디님이 더 멋져 보이는것은 책 때문에 콩깍지가 씌여서 일까요? ㅎㅎ 마님 넘 하셨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