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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03 기다림에 지쳐갈 때, <서칭 포 슈가맨> (14)

(<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영화 리뷰입니다.)

드라마 피디로 일하며 나는 늘 기다린다. 좋은 대본을 기다리고, 편성 기회를 기다리고, 촬영 세팅을 기다리고, 배우의 준비를 기다린다. 기다릴 때 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 지쳐, 재미없는 대본을 선택해도 안 되고, 편성 욕심에 급하게 들어갔다가 사지에 들어가도 안 된다. 레일 깔고, 조명 설치하고, 카메라 세팅하는 스태프들을 재촉해도 안 되고,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 감정을 잡고 있는 배우에게 “밤 샐 거야? 얼른 촬영 시작합시다!”해서도 안 된다. 감 없는 감독이라 소문나 다음에 일하기 힘들 테니까. 꾹 참고 잘 기다려야 한다.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다고 답답한 마음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모임을 위해 달려 나가도 안 된다. 잘 기다려야한다. 마냥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 때, 나는 <서칭 포 슈가맨>을 본다.

1970년 미국에는 로드리게스라는 아마추어 가수가 있었다. 평소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하는 그는, 저녁이면 동네 술집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취객들이 자신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무대에서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노래했다.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기 위해. 어느 날 숨은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음반 프로듀서가 찾아온다. 로드리게스가 만든 <콜드 팩트>는 음반 제작자가 생애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손꼽지만 망했다. 아무도 틀지 않고 사지 않았다. 결국 음반사는 계약을 해지하고 로드리게스는 음악계에서 사라진다.

한편, 몇 장 팔리지 않은 음반 중 한 장이 미국인 여행자와 함께 1970년대 지구 반대편 남아공화국으로 날아간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남아공. 외부 세계와 공식적 문화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로드리게스의 음반이 들어오고, 체제 비판적인 가사가 그곳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방송 금지 판정을 받지만, 불법 복제 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남아공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인기를 얻은 음반이 되지만, 정작 가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이유는 가수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란다. 싸늘한 관객 반응에 실망해 무대 위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팬들이 보는 앞에서 휘발유를 붓고 분신했다는 설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30년이 지난 후, 남아공의 한 음악 평론가는 로드리게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취재를 시작한다. 죽은 가수의 발자취를 쫓던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로드리게스를 발견한다. 아직도 고향에서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하며 사는 로드리게스. 기적과도 같은 다음 이야기는 영화로 확인해보시라.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입가에서는 미소가 그려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로드리게스의 2집 앨범은 미국에서 여섯 장 팔렸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로드리게스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남아공 팬들의 상상처럼 자살했을까? 아니면 1970년대 뮤지션들이 그랬듯 마약이나 술로 도피를 했을까?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실한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잘 만든 앨범인데 왜 미국 시장에서는 실패했을까요?”
평론가의 질문에 로드리게스는 말을 잇지 못한다. 아마 자신도 평생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지 못했을 게다.
“그런 게  시장이지요. 그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인생이 그런 거다. 우린 늘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 기다림이 끝날 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뿐.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이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일명 ‘슈가맨’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인데, 대중이 양준일을 재발견한 계기였다.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꾸고, 양준일이라는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 슈가맨, 슈가맨 하지만, 정작 영화를 못 본 사람도 많다.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는 코로나의 종식을 기다리며 조금씩 지쳐가는 우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로드리게스는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며 평생을 살았다. 그 기다림의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가야 할까?

‘왓챠의 브런치’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다. 왓챠플레이에는 좋은 영화가 많다. 옛날 영화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영화를 보다 어느덧 우리를 지치게 하는 힘든 기다림이 기적처럼 끝나기를!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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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젠가 2020.11.03 0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2. 아솔 2020.11.03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흥미진진한데요? 이참에 왓챠를 시작해야되나..ㅎㅎ 잘 보고 갑니다 피디님:)

  3. 섭섭이짱 2020.11.03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슈가맨> 재밌게 봤던 프로인데...
    이 영화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왓챠에 있었군요. 피디님 아니었으면 볼 생각도 못했네요
    이번주에 꼭 볼 영화로 찜 해뒀습니다

    왓챠 기고는 끝났지만 김민식이 좋아하고 추천하는
    영화 리뷰는 계속 써주세요
    "서칭 포 김민식 러브 무비" 는 영원하라~~ ^^

    오늘도 재밌는 글 잘보고 갑니다

  4. 아리아리짱 2020.11.03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이렇게 흙속의 진주 같은 좋은 영화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디님의 영화평을 보니 로드리게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꼭 챙겨 보겠습니다.^^

  5. 꿈트리숲 2020.11.03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이 소개해주시는 왓챠 브런치 덕분에 왓챠를 알게됐어요. 오래된 영화를 찾아보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서칭 포 슈가맨 제목만 들었는데, 영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눈물은 줄줄 나는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라니... 더 호기심 생기네요.

    책보고(보물창고), 영화보고(보석금고)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오면 좋은 얘기가 늘 기다리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6. 나우시카 2020.11.03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왓챠 기고는 끝나셨어도 영화 리뷰 가끔 올려주세요~
    피디님의 블로그를 읽고 체르노빌을 시작으로 왓챠에 입문하게 되었어요
    좋은 작품들 볼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7. 오달자 2020.11.03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그 <슈가맨>이 영화 슈가맨을 모티브로 만든거였군요.

    왓챠에 있다니 피디님말씀 듣고 꼭~~볼께요~~^^

  8. 오달자 2020.11.03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그 <슈가맨>이 영화 슈가맨을 모티브로 만든거였군요.

    왓챠에 있다니 피디님말씀 듣고 꼭~~볼께요~~^^

  9. sara_yun 2020.11.03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이야기를 티비에서 본 적이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 멋진 이야기가 본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좀 더 빨랐더라면, 이 사람의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에 어디서 봤던 영환데요, 시간여행을 해서 반 고흐에게 돌아가서 사실 당신이 엄청난 화가가 되었다고 미래를 보여주고 돌아갑니다. 미래에서 그 사람들은 고흐가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 기대하지만 미래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즐거운 일을 찾게 됩니다 작가님께서 그때 하셨던 말씀처럼, “행복은 선택이 많은 거고, 불행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임을 기억해요 안타까운 일들이 요즘 많이 생겨서 뒤숭숭하지만..! 오늘도 꾸준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10. 김주이 2020.11.03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영화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네요.
    슈가맨이 이 영화에서 나온거군요.
    정말 드라마같은 이야기네요.
    세상은 참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참 세상을 힘들게도 재밌게도, 다양하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11. 슬아맘 2020.11.04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찾아서 봐야 겠네요.
    저번에 칠곡가시나들 영화도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 나를 찾아 주길 바라면서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12. 창작동화세상 2020.11.04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올리신 글인데 너무 바빠서 못보다 ㅠㅠ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 켜자마자 봅니다.)

    오늘 피디님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문구라 메모해 둡니다.

    "인생이 그런 거다. 우린 늘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 기다림이 끝날 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뿐."

    감사합니다. 피디님... 현실은 힘들지만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기로 해요^^

  13. 아빠관장님 2020.11.04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왓챠의 브런치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다. 라는 말에 왜 센치해지는 거지요ㅜㅡ ㅎ 수고하셨습니다 ~^^

  14. 보리랑 2020.11.09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망 좌절 포기없이 오랜 세월 일상을 살아내신 로드리게스 양준일님 김피디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

    늦게 피는 꽃이지만 향기는 무지 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