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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3 나무도 질투를 할까? (20)

(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예능 피디로 일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리얼리티 프로는 진짜 리얼인가요?” 답변하기 참 난감하다. 세상 모든 것을 진짜와 가짜, 둘 중 하나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나쁜 짓도 살짝 하는 좋은 사람일까, 남들이 볼 때만 좋은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카메라로 찍는 순간, 출연자가 하는 행동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남이 찍은 내 사진을 보면 화들짝 놀란다. ‘누구세요?’ 내가 찍은 셀카와 우연히 찍힌 모습은 사뭇 다르다. 카메라를 의식할 때, 나는 최대한 선한 표정을 짓는다. 부지불식중에 찍힌 사진을 보면, 탈모가 심하고 배 나온 아저씨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헐? 사람들이 보는 평소 내 모습은 이런 거였어?’ 그동안 난 셀카에 속고 살았다. 


요즘 사회적 관계망에 바디 프로필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와, 저게 배야, 빨래판이야.’ ‘헐! 저 나이에 저 몸매가 가능해?’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울해진다. 다들 나보다 잘 지낸다. 밥은 맛집에서 먹고, 커피도 핫플레이스에서 마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 선남선녀다. 페친들의 근황에 비해 내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초라한가. 혼자 우울하고 말면 그나마 다행이다. 좌절은 때로 분노가 된다. 주식으로 돈을 벌어 ‘플렉스’했다는 친구의 새 차 사진에는 이 악물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다 애꿎은 연예인의 근황 기사에는 분노의 댓글을 단다. “돈 많은 부모 만나 외제차도 타고 좋겠네.” “저거 다 성형빨인거 아시죠?”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캐스팅이라니, 피디가 돈 먹은 듯.”


분풀이 할 대상을 찾아 온라인 뉴스 세상을 헤맨다. 각자의 우울이 모여 다수의 분노가 된다. 뉴스는 가짜라도, 분노는 진짜다. 현실을 도피한 이들의 사이버 테러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등지는 이유가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열 명인데, 그중 한 두 명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나쁜 거다. 그런데 내가 만나는 사람이 다 나쁜 놈이라면, 내가 나쁜 거다. 무분별한 분노에 물드는 순간,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된다. 우울에 중독되고, 분노가 전염되는 스마트폰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이 생기면, 나는 휴대전화를 끄고 산을 오른다. 혼자 묵묵히 걷는다.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니 바위틈에 뿌리내린 나무가 보였다. 하필 흙도 없고 물도 없는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니 네 팔자도 참 박복하구나. 부드러운 흙이 있고, 뿌리 옆으로 물이 흐르는 숲에 사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울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나무도 질투를 할까?’ 


식물의 씨앗은 자신이 살아갈 자리를 선택할 수 없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든, 새똥에 섞여 떨어지든, 그냥 떨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잎을 피운다. 물이 귀하고 흙이 부족한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그래서 불행할까? 물 많고 흙 많은 숲에 떨어진 씨앗은 그냥 썩어 죽어버린다.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은 부모의 그늘에 가려 맥을 추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기를 쓰고 씨앗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의 그늘 아래서 자식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걸 나무는 안다. 맛있는 열매로 씨앗을 감싸 동물을 유혹하거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날개를 달아주어 멀리 떠나보낸다.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경쟁자가 없는 천혜의 환경을 만난 덕에 살아남았다.


바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울창한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 덕분에 쉬어간다. 빼곡하니 하늘을 가득 메운 이파리들을 보면 겸손해진다. 햇볕 한 줌 놓치지 않으려고 나무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성실한 나무에게 나는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

(어제 소개한 <랩걸>을 읽고 나무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책에서 얻은 배움을 삶에서 얻은 질문에 연결해 써 본 글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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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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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은혜 2020.10.13 0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행이 최고~^^

  2. 은쥐맘 2020.10.13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서평이 좋아 리디북스에서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어요. 스마트폰이 좋은건 출퇴근시 두꺼운책을 손에 들지 않아도 책을 읽을수있는 거네요. 무려 읽어주기도 하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보내세요.

  3. 보리랑 2020.10.13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빛나던 모습이 경이로와 셔터를 막 눌렀는데 잊고 살았네요. 셀카가 뽀샵이라는걸 알고 다시는 프사로 쓰지 않았어요 ㅎㅎ 분노의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지키도록 건강한 경계를 칠 수 있게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4. 인대문의 2020.10.13 0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속 나무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네요.
    오늘 아침 읽은 책에 무인도에 3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가긴 싫고 영리하게 특별한 물건을 가져가는 건 모르겠고 저는 이 세 가지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1. 책
    2, 3. 제 방에서 키우는 식물 두 종류.

    식물 두 종류를 방생해서 잘 살게 하고, 즐겁게 책 읽다가 하늘로 가고 싶습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피디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5. 오달자 2020.10.13 0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윗틈에 자라나는 나무처럼 주어진 환경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책 한권에도 수만가지의 진리를 깨우치는 피디님의 삶에 대한 태도도 본받아야겠습니다.^^

  6. 달빛마리 2020.10.13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도덕경>이 생각나요.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과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요. 카톡과 sns만 하지 않아도 삶이 한결 자연과 가까워 지는 기분이에요.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일이 반갑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루이스 헤이의 책들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충분히 멋지세요! ^^

  7. 슬아맘 2020.10.13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PD님 등산도 하시는 군요 ^^
    얼마전 오른 백운대를 소재로 글을 적어 주시니
    더 정감이 가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8. 섭섭이짱 2020.10.13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SNS 게시물을 보다보면
    '나는 누구?' '여기 어디' 를 느끼는데요.
    제가 아는 곳과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팔로워 수.. 하트 수 , 구독자 수, 좋아요 갯수...
    모든게 숫자로 표현되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집계되다보니
    숫자가 모든것보다 우선시 되면서
    자극적이고 혹하는 글이나 사진들을 올리고
    다시 또 숫자가 많아지면 더더 자극적인걸 올리고....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남과 비교하며 분노하기 보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거에 더 시간을 쏟아야할거 같아요.

    오늘도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섭섭이짱 2020.10.13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무를 얘기해주시니 이 곡이 떠오르네요
      오늘 이곡을 픽해봅니다.

      🎵🎶🎵🎶🎵🎶🎵🎶🎵🎶

      < 가시나무 - 조성모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

    •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10.13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섭섭이짱님! 안녕하세요!:)
      저는 그런 현상을 보면 우리의 삶을 갉아 먹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SNS를 자제하고 있습니다ㅎㅎ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보다 조금 더 크고 무거운 책이라는 네모를 들고다녀요. 저를 더 살아있게 해주는 네모요ㅎㅎ

  9. 아리아리짱 2020.10.1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나무!
    나는 나대로 뿌리내린 이 자리에서 무심히 살아갈 뿐이다.

  10.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10.1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영감을 주는 글이에요 ㅎㅎ

  11. 아빠관장님 2020.10.13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는 내내 글으 소재가 바뀔 때마다,
    참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하네요...

    '세상 어떻게 살까?'
    '어떻게 SNS를 활용해야 할까?'
    '고민이 있을 때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 어떻게 기를까?
    등이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12. 꿈트리숲 2020.10.13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나무도 옛날엔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요?
    질투해보니 별 볼일 없고 나만 손해더라고
    깨달았기에 있는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유전자가
    대를 이어 자손에게 전해져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나무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의연하게 늠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요.

    나무는 우연히 찍히든 정성들여 찍든 한결같은
    모습이어서 참 부러워요. 얼짱각도가 뭔가요?
    할 정도로 굴욕샷이 없어요. 비결 좀 전수받고
    싶네요.
    질투하지 않고 일단 성실하게 살아보면 비결
    알 수 있겠지요? ㅎㅎ

  13. 김주이 2020.10.13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식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네요.
    나무가, 식물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네요.
    묵묵히 씨 뿌려진 그 곳, 자리를 지키며 빗물 해빛 모든 것들을 열심히 흡수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나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제 나무를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14. 모험생띠띠 2020.10.1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위 틈의 나무를 보시고
    이렇게 좋은 생각의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피디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15. 에가오 2020.10.1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들 늘 감사해요~^^

  16. ㏂㏘ 2020.10.15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실한 나무에게 나는 인생을 배운다.
    한결같은 나무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싶어요.

  17. 옥포동 몽실언니 2020.10.16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모든 글이 좋지만 오늘 글은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좋아요. ㅋㅋ 뭔가 표현이 참 이상하게 됐네요.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 나무에 대한 은우로 풀어내신 이야기, 너므 절절히 와 닿는 진짜/가짜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민.. 그걸 이렇게 짧게, 잘 풀어서 표현해내시는 피디님 능력에 오늘도 크게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8. 2020.10.17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