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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8 못난 아비의 육아법 (19)

(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우리 집 식구 중에 아버지에게 안 맞은 사람은 없다. 다 맞았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짊어진 장남이라 특히 많이 맞았다. 맞다 맞다 맞아 죽을 거 같아 도망친 적도 있다. 아버지는 매를 들고 동네 어귀까지 쫓아오다 포기하셨다. 다음부터 나는 옷을 홀딱 벗고 매를 맞았다. 맞으면서 고민했다. 맞아 죽는 편이 나을까, 쪽팔려 죽는 편이 나을까. 맞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팬티 바람으로 달아난 적은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통째 외우는 게 방학 숙제였다. 하루에 한 과씩 외우는데, 검사를 하다 실수하는 날에는 또 매를 맞았다. 그때 나는 영어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 아버지가 영어 교사였는데, 영어 백날 잘해봤자 뭐하나, 처자식 패는 못난 어른 밖에 못 되는데. 맞으면서도 영어 실력은 늘지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반항심 탓이다.

하루는 어머니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왜 하필 저런 사람과 결혼했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민식아, 너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단다. 그런데, 네가 노력하면 정신적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도서관에 가 봐라. 도서관에 가면 위인들의 삶을 기록한 책도 있고, 멋진 생각을 가진 저자도 많단다. 그 중 좋은 어른을 찾으면 그 분을 너의 정신적 아버지로 모시렴.”

1989년 대학 휴학하고 방위병 복무하느라 고향에서 지낼 때, 주말에는 아버지를 피해 도서관으로 달아났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게 가르침을 줄 어른을 찾아 책을 읽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독서의 달을 맞아 다독상을 시상하는데, 내가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고. “제가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읽었나요?” 한 해 동안 200권의 책을 읽었단다.

그 시절,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을 쓴 앨빈 토플러에 매료되었다. 21세기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영어만 잘 하면, 영어로 된 최신 정보를 입수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수 있을 테니까. 아버지가 매를 휘두르며 가르친 영어는 내게 상처였는데, 정신적 아버지인 토플러의 가르침에 따라 자발적으로 공부한 영어는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1995년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원서로 읽었다. 다가올 시대, 기계나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은 영상 미디어 산업의 창작자라는 말에 동시통역사를 그만두고 문화방송 피디로 입사했다. 아버지는 내게 육체적 고통을 안겨줬지만, 책에서 만난 정신적 아버지들 덕분에 삶이 더욱 즐거워졌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건물을 물려주거나 재산을 남겨줄 형편은 못된다. 최고의 유산은 책 읽는 습관이라 생각한다. 독서습관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매일 밤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매일 밤 20분씩 책을 읽어줬다. 직업이 방송사 피디지만, 집에서는 절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부모가 책을 즐겨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독서 교육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두 아이와 서점에 갔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 있다면 3권까지 마음껏 고르라고 했다. 내 역할은 책을 사주는 데까지다. 읽을지 말지는 아이들 마음이다. 방학이 끝날 무렵, 물어보면 안 된다. “그래서 지난번에 사준 책은 다 읽었니?” 그 순간 마법이 깨어진다. 아빠가 사준 선물은, 아빠가 내준 방학숙제가 되어 버린다.

아이가 어려서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읽어줬다. 독서습관 형성에 있어 부모의 열정이 도움이 되는 건 중학교 입학 전까지다. 사춘기에는 부모의 과도한 열정이 역효과를 부른다. 나의 성적을 올리려는 아버지의 열정이 내게는 상처였다. 책을 향한 나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비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부디 아이들이 책에서 훌륭한 정신적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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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랑 2020.09.08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많이 부족한 엄마입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마을이 필요하다 하니 문탁에 온전히 맡겨봅니다. 너무 잘커서 요즘은 줌으로 친구들끼리 화상회의하고 작은딸이 어제 첫영상작품 올렸습니다.(5분) https://youtu.be/pcncei75hY0

    외국어에 대한 저의 열정이 애들에게 상처가 되었지만, 마음을 접은 요즘 스스로 즐기고 있어 흐뭇합니다.

  2. 달빛마리 2020.09.08 0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이 오늘따라 너무 마음 아프고 울림이 크게 느껴집니다. 도대체 부모란 무엇일까요. 미성숙한 부모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네요.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최초의 인물은 부모라고 합니다. 책으로 이겨내신 모습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멋진 육아관입니다! 오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해 주시는 글 감사드려요. 많이 웃는 하루 되세요 :)

  3. 섭섭이짱 2020.09.0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우~~ 이것은 찐 아비의 육아법이네요 👍
    어떤 마음으로 딸들을 대하셨을지
    피디님 마음이 전해지네요.

    오늘 곡은 피디님에게 딸들이 노래 선물을 한다면
    이 곡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해서 고른 곡이에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라디오 DJ 까지
    다재다능 재주꾼 정은지가
    해외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생신
    선물로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멜로디도 좋으니 시간되실때 꼭 들어보세요

    🎵 🎶 🎵 🎶 🎵 🎶 🎵 🎶

    <하늘바라기 - song by 정은지>

    꽃 잎이 내 맘을 흔들고
    꽃 잎이 내 눈을 적시고
    아름다운 기억
    푸른 하늘만
    바라본다
    꼬마야 약해지지마
    슬픔을 혼자 안고 살지는 마
    아빠야 어디를 가야
    당신의 마음처럼 살 수 있을까
    가장 큰 별이 보이는 우리 동네
    따뜻한 햇살 꽃이 피는 봄에
    그댈 위로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만의 노래로

    뚜루뚜뚜두 두두두
    뚜루뚜뚜두 두두두
    뚜루뚜뚜두 두두두
    하늘바라기 하늘만 멍하니

    가장 큰 하늘이 있잖아
    그대가 내 하늘이잖아
    후회 없는 삶들
    가난했던 추억
    난 행복했다

    아빠야 약해지지마
    빗속을 걸어도 난 감사하니깐
    아빠야 어디를 가야
    당신의 마음처럼 살 수 있을까
    가장 큰 별이 보이는 우리 동네
    따뜻한 햇살 꽃이 피는 봄에
    그댈 위로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만의 노래로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 내음
    그대와 이 길을 함께 걷네
    아련한 내 맘이 겨우 닿는 곳에

    익숙한 골목 뒤에 숨어있다가
    그대 오기만 오기만
    기다린 그때가 자꾸만 떠올라
    가장 큰 별이 보이는 우리 동네
    따뜻한 햇살 꽃이 피는 봄에
    그댈 위로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만의 노래로

    뚜루뚜뚜두 두두두
    뚜루뚜뚜두 두두두
    뚜루뚜뚜두 두두두
    하늘바라기 하늘만 멍하니

    🎵 🎶 🎵 🎶 🎵 🎶 🎵 🎶

  4. 바람향기 2020.09.08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젯밤에 아들 녀석 때문에 화가 솟구쳐 집을 나갔습니다.
    걸을수록 누그러지더군요. 코로나로 애들이 비대면 수업을 한다고 집콕 한지도 벌써 7개월째인데도 저는 적응이 안됩니다. 오히려 짜증만 극대화되니...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준 것 같은데 대학생이 된 후엔 책은 아예 뒷전이고 눈만 뜨면 폰만 보는 녀석을 우찌해야할까요..
    항상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시는 피디님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다시 마음을 잡아봅니다.
    퇴근 후엔 아들과 대화를 시도해 볼랍니다.
    가을스런 날씨가 좋습니다.
    좋은 날 되셔요^^

  5. 기쁘미 2020.09.0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책과 블로그 글을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덕분에 좋은 책들을 찾아읽고있지요,,,
    감사드립니다

    어린 김민식이 안쓰럽고,,대견합니다...
    그런 시간(책읽는)이 있었기에
    지금의 피디님이 되셨겠지요...
    아버지와 다른 아버지가 되기 쉽지않은데,,,
    멋진 아빠 이십니다,,,

    늘 좋은글과 삶의 얘기로
    감동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6. 꿈트리숲 2020.09.08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차서 터지는 줄도 모르고 열정을
    불어넣은 때가 있었어요.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저는 마흔이
    넘으니 체력이 딸려서 어릴 때만큼 열정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게 아이에게 더 좋은 효과를
    준 것 같아요.

    바람을 뺄때는 적당히 열정을 줄이는 게 아이와 저 사이에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에게 쏟는
    열정 대신 저에게 더 많이 쏟고 있어요.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저의 뒷모습을 아이가 닮지 않을까 싶어서요 ㅎㅎ

    못난 아비라고 하시지만 뒷모습은 언제나 열정과 성실의
    아이콘이십니다. 공즐세를 찾는 많은 이웃들, 피디님
    책의 수많은 독자분들이 피디님 뒷모습 보며 배우고
    있어요~~

  7. 오달자 2020.09.08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었을 어린 시절 역경을 책을 통해 이 세상의 지혜를 보아라~~고 가르쳐 주신 현명한 어머님을 응원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찐아빠의 모습에 감동입니다.^^

  8. GOODPOST 2020.09.08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들을 키우면서 참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직장 다녀와서 책읽어 달라는 애들에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책읽어주다 잔다든지 혼자 읽어라고 방치했던 것들.
    뒤에 후회에도 소용이 없네요.
    애들 스스로가 어른이 되어 책과 친해지고 책속의 지혜를 깨닫기를 빌어봅니다.
    나는 오늘도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혼자만 책을 읽으니까요.
    지난날을 생각하게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9. 아솔 2020.09.08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은 정말 멋진 아버지이신 것 같아요. 늘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10. 후까 2020.09.08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서 큰 아이 여기 하나 추가요 ^^ 훈육도 대물림 된다지만, 언니 오빠네 아이들은 아버지 방식으로 엄하게 키우는데 동생네 아이는 절대 절대 엄하지 않고 프리하게 키워서 오히려 나무라는 이모를 자제 시킨답니다. 우리는 바꿀 수 있어요.

  11. 보라코치 2020.09.08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하는 김민식 PD님 좋은 날이에요 ^^

    항상 나쁜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하죠.
    PD님을 동네 어귀까지 몰고간 아프기만 했던 그 매는
    어쩌면 도서관으로 이끌기 위해 잘 짜여진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잠깐 생각해봅니다.

    흠.
    책 속에 답이 있군요.
    '도서관은 나를 키운 천국'
    이미 현생에 천국이 어딘지 맛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는데요.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좀 배워야하나 고민중에 있어요.
    비대면 활성화에 따라 '작은 화면으로 내 전부를 보여줄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니 정말 영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PD님 만나뵈면 한 수 배우고 싶어요.
    'UCC 한 편 찍어봤니?'
    그 다음 출간 책으로 어떠셔요? ^^

    언제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12. 김주이 2020.09.08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픈 기억일 수 있는데,
    공유해주시고
    승화법을 나눠주시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계셔서
    그 삶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교훈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13. 아리아리짱 2020.09.08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 아리아리!

    어릴적 아픔을 이겨내고
    피디님은 생물학적, 정신적으로 완벽하신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자녀가 초등5학년 될 때까지 책읽어주는 아빠는 거의 드물어요!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아빠 등극입니다.


    더불어 공즐세 를 찾는 모든 분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사시는 피디님
    늘 승승장구 하세요!

  14.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9.08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못난 아비라뇨
    책 읽어 주는 아빠는 워너비죠
    지금도 잘 되라고 때리기까지 하는게
    어떻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이해가 안되지만
    그 시절 저 역시 성적표 나오는 날은
    늘 혼났구 많이 떨어졌을 때
    위로나 격려 대신 맞기까지 했네요
    지금 그런 적 없었다고 엄마의 기억에서는
    모두 지워졌지만
    원망하는 마음대신 저도 책을 통해
    훌륭한 정신적 어른을 만났더라면

  15. 에가오 2020.09.08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가끔씩 아이에게 책을 권하는데 조심해야겠어요.
    ' 책을 향한 나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라는 말씀이 있네요.

  16. 아빠관장님 2020.09.08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어느새 피디님의 성장사를 줄줄 외고 있네요!^^;
    같은 이야기지만, 매번 깨달음은 다릅니다!

    저의 정신적 스승님이신 거 아시죠~^^

  17. 옥포동 몽실언니 2020.09.09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인 글입니다!

  18. 수린 2020.09.09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멋진 아버지를 둔 두따님들이 부럽네요~^^
    이미 너무 훌륭하고 멋진아빠이십니다~~

  19. Liberty 2020.10.11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빠다운 아빠시네요. 아이는 항상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데. 또 그 뒷모습을 고대로 닮는다는데..
    멋지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