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5.28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 (17)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상대로 폭언을 일삼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안타까웠지만, 동료인 경비 반장의 갑질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게 참 가슴 아팠어요. 불과 몇달 전까지 같은 일에 종사했던 노동자도 관리자라는 직함을 다는 순간, 동료를 향해 감시와 탄압의 시선을 장착합니다. 이건 왜 이럴까...? 그 궁금증을 책을 읽다 풀었어요.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이욱연 / 휴머니스트)

루쉰 연구자인 저자는 우리 시대를 돌아보는 데 루쉰의 글만큼 예리하고 섬세한 것도 없다고 말하는데요. 등급 질서 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노예처럼 비굴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섭대요. 이런 인간 유형을 만드는 게 등급 질서랍니다. 수직적 신분사회만 노예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대사회처럼 신분 이동이 가능한 사회에서 사람은 노예가 되기 쉽다고요. 

'과거 신분제 사회처럼 유동성이 없는 사회는 선천적인 노예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예는 신분제 사회에만 있지 않다. 유동성을 지닌 등급 위계 사회에도 노예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자발적인 노예다. 등급 위계가 갈수록 강해지는 사회에서 우리 삶이 고달픈 이유다.'

(154쪽)

 

이런 세상에서는 밑바닥에 있던 노예가 출세하여 주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등급 질서 속에서 살면서 몸에 익은 노예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주인의 자리에 올라도 여전히 마음은 노예라는 거지요.

MBC는 공영방송사입니다. 소유주가 따로 없어요. 노동자로 입사한 사람이 사내 승진을 통해 사장이 됩니다. 사원으로 일할 때 고생하던 경험이 있으니, 밑에 있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도 잘 알아서 재벌2세 출신 사장보다 더 좋은 경영자가 될 것 같은데요. 루쉰은 정반대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노예 의식을 지닌채 주인이 된다면 아랫사람을 학대하고 자신이 과거에 당한 것을 분풀이하면서 주인 놀이에 빠진다는 거지요. 과거 MBC의 흑역사는 자신을 사장으로 만들어준 권력에 충성하느라 동료들을 탄압하던 사장과 함께 시작합니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루쉰은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예에서 주인으로 상승할 수 있는 등급 질서 속에서 노예의 꿈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노예는 늘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산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인이 되면 노예는 과거 주인보다 더 악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지금 그의 위치가 아무리 높고 자리가 호화롭고 지위가 찬란하더라도 그는 노예다. 주인이지만 구제할 수 없는 노예다.'

(158쪽)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요, 시청자입니다. 시청자를 섬기는 대신, 권력의 앞잡이가 된 사람에게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줘야지요.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은 무엇일까요? 루쉰은 과거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는 좋은 부모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팁을 제시한다. 아이가 공원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부모는 귀찮다. 루쉰은 그럴 때면 자신이 어렸을 때 어떠했는지를 떠올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자신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등급 질서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서도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과 같은 기억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밑바닥에서 노예 같은 대우를 받으며 힘들었던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는 기억의 힘, 그것은 당신을 새로운 주인으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주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161쪽)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겁니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기억하는 힘과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게 노예 근성을 버리고 진짜 주인이 되는 길이니까요.

세상은 생각보다 좁구요. 인생은 생각보다 깁니다.

내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사는 삶을 소망합니다.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부를 묻는 시간  (13) 2020.06.01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16) 2020.05.29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  (17) 2020.05.28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12) 2020.05.25
어느 작가의 편지  (14) 2020.05.22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19) 2020.05.21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최수정 2020.05.28 0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갑질이 노예근성과 연결되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같은 사람들끼리 좀더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2. SORA& 2020.05.28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어른이 되고 힘든 일마다 이 말을 늘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부모자식간 고부간 직장상하관계(이건 종 오래됐지만) 어디서나 흔하게 보이는 일인지라..
    갑을이 꼭 있고 을중에서도 또 갑이 있고 ...배려라는 마음 하나만 제대로 가져도 다를텐데...

  3. 김주이 2020.05.28 0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글을 읽으며 태움 사건이 생각났어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
    그것은 노예근성이구나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습니다.

  4. 귀차니st 2020.05.28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에 출근해서 매일 피디님 블로그를 보면 하루를 시작합니다. 피디님이 물러가라를 외칠때쯤이었으니 벌써 몇년 되었는데요.... 피디님의 글에서 매일 배우고 성장합니다. 언젠간 꼭 뵙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5. 섭섭이짱 2020.05.28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문제는 갑질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런 글을 읽지도 않고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거 ㅠ.ㅠ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노예 같은 대우를 받으며 힘들었던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는 기억의 힘 "

    전 이 내용이 초심을 잃지 않는다로 읽히는데요.
    기억보다는 기록의 힘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기억은 순간 사라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니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자신의 초심을 적은 메모지를
    수첩에 항상 들고 다니며 꺼내본다고 한거 같아요.
    그래도 낯 두꺼운분들은 언제 그랬냐며 딴소리를 하긴 하지만 ^^;;;

    나는 또 다른 아큐가 아닌지 곰곰히 생각도 해보게 되고
    내 초심은 뭐였는지.... 내가 기록했던 초심들도 다시 꺼내보고 반성해봅니다.

    이번주에는 다 읽지못했던 <아큐정전> 을 읽어보고 싶네요.
    내 안의 아큐는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민식 읽는 아침, 나를 읽는 시간"
    오늘도 생각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스승 피디님 ^^

  6. 인대문의 2020.05.28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at's why people are encouraged to study history and read classical literature.
    I think we are also making history in our daily lives.
    What we think,
    What we do,
    What we say.
    Let's be kind to one another.

  7. 아빠관장님 2020.05.28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부모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보고 배운것이 부모의 갑질이었던 사람들은, 그 갑질이 '갑질'이라는 걸 인지조차 못 하니 말이죠.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부류라.. 속상하지만, 그렇지않은 몇몇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그 몇몇이 다수가 되길 바라고요~^^
    오늘도 감사한 하루되세요 ~

  8. GOODPOST 2020.05.28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진정한 주인이 되는법!
    과거를 기억하는 힘과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노예근성"
    누굴 탓할것이 아니라,,,나 자신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며 살아야겠습니다.
    좋은생각이 올바른 행동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세상.! 공즐세~~ 늘 감사합니다.

  9. 아리아리짱 2020.05.28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 님 아리아리!

    갑질하는 이들의 기본은 '노예근성'에서 시작되는 것이군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키우기위해서는
    끝없이 자기 성찰과 공부를 해야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오늘도 좋은 깨우침을 주는 책소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스승님 ^^

  10. 꿈트리숲 2020.05.28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부모가 되려면 자신의 어릴 적을 기억하고,
    갑질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려면 힘들고
    고단했던 을의 시간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었네요.

    기억과 공감 그리고 기록하는 우리의 능력
    그것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고
    타인의 인생은 타인이 주인이 되도록
    돕는 길이라는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먼저 말하기 보다 잘 듣는 것 부터 실천해보겠습니다.
    좋은 글로 생각하는 시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 오달자 2020.05.28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한 갑질사는 상사로부터 1 년간 시달림을 받아보니....
    피디님의 오늘의 글이 마음에 확 와닸네요.

    과거를 기억하는 기억.
    그 기억을 더듬어 성찰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피디님의 글은 항상 제 마음에 와닿습니다.

  12. 코코 2020.05.28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기억의 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쉽게 잊지 말고 과거의 시간을 되새기며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되게끔 옳은 곳에 힘을 쓰는 태도.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불어 살기 좋은, 건강한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3. 슬아맘 2020.05.28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예근성 무섭네요.
    그래서 다들....내가 사장만 되봐라 가만히 두지 않겠어 이렇게 말하는 군요
    이것도 노예근성이였네요.
    아이가 내게 뭘 해달라고 했을때 저도 아무생각없이 안되는 이유만 얘기했었네요.
    제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14. 훈제란 2020.05.29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좋은 글 감사합니다.

  15. 나겸맘 리하 2020.05.30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훈을 얻지 못한 과거는 잊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노예로 살때 장차 주인이 되면
    부당한 노예 대접은 하지 말아야지...
    그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가 참담하네요.
    깨달음없는 주인의 삶만을 덜컥 살아버리니
    보이는 현상, 갑질만 강화될 뿐이네요.ㅜㅜ

    교훈을 얻은 과거는 현재를 살아갈 힘이 된다는 걸..
    저 또한 뒤늦게 깨달은지라
    글을 읽는 내내 반성이 많이 됩니다.
    질긴 노예노릇 그만하고
    제 인생의 참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16.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5.30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이제 같은 직장에서
    10년이상 되니 새로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내가 처음 일 시작할 때 마음을 잊고
    고통을 주지않았을까 이 글을 보면서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여러 번 읽고 깊이 새기려해요

  17.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5.30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때 묻은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 초심을 새기라는 말.
    깊이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