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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8 쓰고 싸우고 살아남는 삶 (12)

100년 전 여성은 사회문화 활동에서 배제된 존재였어요. 학교도 보내주지 않는 부모가 많았고요. 가난 탓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산 이들이 많아요. 힘든 여건 속에서도 글쓰기로 자신을 찾아간 이들이 있어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 민음사)에서 글쓰는 여성의 이야기를 만났어요.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입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태어난 백인 소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풍토병으로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요. 파산한 후,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하고 딸을 학대합니다. 똑똑한 딸에게 관심을 가지는 남자가 나타나면 남자의 재력을 살핍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딸에게 “그건 가치도 없고, 직업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일종의 허세에 불과해.”라고 말합니다. 

‘“허세에 불과한”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들이었다. 명민한 뒤라스는 거꾸로 생각했다. 부자들만 글을 쓸 수 있다면, 반대로 글을 써서 부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8쪽)

어려운 환경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꿈꾼 작가가 쓴 소설이 훗날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과 <연인>의 원작이 됩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 원작자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영화도 좋지만, 작가의 삶은 더 큰 감동을 줍니다.

<빌러비드>를 쓴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 작가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에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백인과 흑인,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지요. 백인들은 모리슨이 흑인을 소재로 글을 쓰는 변방의 작가라고 폄하했고, 흑인들은 모리슨이 가정 폭력, 알코올중독 등 흑인 사회의 끔찍한 문제들을 다룬다고 비난했지요. 힘든 상황에서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버텼을 까요?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과 글의 힘을 믿었답니다. 

“저는 세 살 쯤 되었을 때 언니와 함께 조약돌로 보도에 글자를 쓰곤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울타리에 어떤 단어가 검정 페인트로 크게 적혀 있었는데, 우리는 그 글자를 따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에프(f)를 쓴 다음 유(u)를 썼지요. 그러자 어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계단을 내려오더니 ‘가서 빗자루 가져와. 물도 한 통 가져오고. 너희 대체 왜 그러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그때 저는 말의 힘에 대해서 두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말은 어머니를 완전히 기겁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 또 조약돌로 보도에 글자를 쓰는 것만으로도 아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비판을 모두 “폭발적인 반응”이라고 해석하며,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했다.
(165쪽)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비판에 직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거든요. 하지만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대해 용감하게 발언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빚진 여성 작가의 이름이 연이어 나오는데요. 그중 하나는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영화 <박열>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박열의 연인으로 나온 일본 여성이지요. 1920년에, 일본 여성이 식민지 조선 출신의 유학생, 그것도 다소 과격한 사상을 가진 유학생과 동거하며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천황 암살 모의를 이유로 두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사형수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남은 시간을 자서전을 쓰는 데 열중합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형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자서전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출판되어 하나라도 내게 공명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나의 시작부터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이 세상의 절멸과 나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1926년 4월 가네코 후미코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석 달 뒤 자살을 감행하여 천황의 ’은사‘에 저항했다.’
(182쪽)

가네코 후미코가 남긴 글 덕분에 우리는 박열이라는 조선 독립 운동사의 중요한 인물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내가 독립운동가도 아닌데, 무슨 글을 쓰느냐고요? 책에 나오는 많은 이들은 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독립, 차별적인 사회의 압박에서 독립, 경제적 고난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에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는, 모든 삶을 응원합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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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랑 2020.05.08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독서록 세줄일기 감사일기에 내 삶이 조각조각 남겨져 있습니다만, 외국어 공부가 눈덩이가 굴러가는 느낌이듯, 쓰다 보면 내 삶의 밑그림도 어느날 내 눈에 보이겠지요.

  2. 제니스라이프 2020.05.08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상황에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이룬 여성들이 있는데
    저는 참 축복받은 것이네요.

    제가 독립해야 할 것은 불신, 걱정, 두려움...
    제 자신만 극복하면 될 것 같습니다

  3. 김주이 2020.05.08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힘을 믿습니다.
    타인의 폭발적인 반응뿐아니라
    제가 글을 쓸 때 제 안의 감정들, 잊고 지내왔던 생각들이 쏟아지고 정리되는 것들을 보면서 나의 글에 나 역시 반응을 일으키는구나 싶을때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의 극한의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글을 쓰는것이 어쩌면 기본적이면서 가치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타인과 소통하려는, 나의 감정과 사건을 성찰하려는,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이유를 굳이 달지 않아도 그냥 쓰고 끄적이려는...

    오늘도 글쓰기를 해야겠습니다.^^

  4. 꿈트리숲 2020.05.08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글을 쓴다...
    어쩜 이 문구가 제게 필요한 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 낳고 돈 한푼 벌지 않으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아무 능력없이 나이 먹는 것이
    가끔은 두렵기도 하고 한심하다 여겨질 때도
    있거든요.
    지금도 꿀리는 건 없지만 그래도 내 글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 생각하니
    상상만해도 즐거워지네요.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그리고 전 어제의 나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썼습니다.

    소통의 창구, 배움의 전당, 그리고
    내 글쓰기의 시작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 있어 글쓰기의
    맛을 알아갑니다^^

  5. 아리아리짱 2020.05.08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록남기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삶인 글쓰기!
    그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치유하며 단단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때로는 어설픈 글쓰기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지만,
    피디님 말씀처럼,
    작가에 대한 감사함으로 독서일기를 쓰고
    소중한 자식들 성장의 감사함에 육아일기를 쓰고
    여행할 수 있는 감사함에 여행일기를 씁니다.

    피디님이 감사함 만으로도 글 쓸 이유가 분명하다는 말씀에 공감백배하면서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6. 코코 2020.05.08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소개만으로도 얼른 읽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꼬꼬독 영상에서 책의 목차까지 한 번 훑어 주셔서 더욱더 좋았어요.
    요즘은 지난번 소개해주신 '100세 인생'을 읽고 있는데요.
    지금까진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진 않고 항상 그때그때 할 일에 초점을 맞춰 급급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치 상공에서 삶의 흐름을 쭉
    바라보듯이 전체적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다 읽고 나면 넓게 고민을 하면서
    현재 삶에 조정과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습니다.

    피디님 요번 영상에 쓰신 동그란 안경테 너무 잘 어울리세요.
    안경 하나로 굉장히 분위기가 달라지네요. ^ ^

  7. 아솔 2020.05.08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요즘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해보고 있어요. 좋은 추천 감사합니다!

  8. 타타오(tatao) 2020.05.08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후기 중에 이렇게 살아있는 글들이 튀어다니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어요. 가차이 하고 싶네요. 괜찮죠? ^^

  9. 휘게라이프 Gwho 2020.05.08 17: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아주 정성스러운 글 잘보고 가요 .. ㅎㅅㅎ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당! :-)

  10. 2020.05.08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20.05.09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닮은 사람이었나봅니다. ^^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요즘은 좀 헷갈릴 때가 많지요. 다음에 도서관 강연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

  11. 나겸맘 리하 2020.05.10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제목에서부터
    피디님의 <나는 질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가
    생각나는데요^^

    글을 안 쓰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다지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안 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수단으로써의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또 뭐가 있을까요?^^

    글쓰는 여자는 빛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목차에서의 이야기가 맞다면
    계속 글을 써보고 싶네요.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작은 빛은 내면서
    조용히 의미있게 살고 싶으니까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