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어린이 자료실에 가다

아이랑 동네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어린이 자료실에 가서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동안 영어 서가를 기웃거린다. 아, 요즘 도서관도 참 좋아졌구나. 영어책이 정말 많다.

먼저 꺼내든 책은 Little Women.
두꺼워서 약간 겁은 나지만, 워낙 유명한 책이니까.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랑 모니카가 독서 대결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첫 장부터 '작은 아씨들'이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 심리 묘사나 장면 묘사보다 이렇게 대화문이 많은 책이 회화 공부하기에는 딱이다. 오래되어 안 쓰는 단어나 표현이 나오는 게 좀 아쉽지만 책이 재밌어서 일단 추천!

쉬운 현대식 영어 표현을 원한다면 A to Z Mysteries 같은 어린이용 시리즈 책도 좋겠다. 영어는 참 쉬운데, 이야기가 좀 유치한게 흠이다. 물론 초등용 어린이 영어라고 만만하진 않다. 회화를 위한 외국어 공부라면 Time 지보다 어린이 책을 읽는 게 낫다.

영어는 쉽지만 좀더 어른스런 위트를 원한다면 Diary of a Wimpy Kid 시리즈도 재밌다. 영화를 한 편 보고 읽으면 더 재미있다. 삽화가 들어있어 쉽게 읽힌다. 시리즈가 계속 나오니까 어느 책이든 대출 가능한 책으로 시작하시라.

아이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며 본인의 영어 발음 연습도 하고싶다면, 닥터 쑤스 Dr. Seuss 는 어떨까? 분량이 짧아 밤에 아이들 재우는 용도로 딱이다. 그림도 재밌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미국식 판소리처럼 소리내어 낭송하기 참 좋은 텍스트다. 역시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 가면 많이 있다. Dr. Seuss는 미국인들에게 워낙 친숙하여 영화화가 많이 되는 책이다.

삐삐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 이나 아낌없이주는 나무 (The Giving Tree) 등, 어른들에게 친숙한 이야기의 영어 원서도 어린이 자료실에 많다. 어려서 읽은 경험이 있다면 영어 공부를 겸해 다시 한번 읽어도 좋다. 강추하고 싶은 책은 역시 영어로 읽는 해리 포터 시리즈다. 정말 재미있다. 시리즈로 연결된 책을 읽는 것이 독해 공부에도 효율적이다. 친숙한 단어나 이름, 표현들이 반복되기에 책을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 있는 영어책만 읽어도 훌륭한 영어 공부가 된다.

 

(요즘엔 어린이 자료실에 서가 하나가 다 영어 책이더라. 참 좋은 세상이다.

페이스북 독자분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가 어렸을 때 비해 요즘 영어 책이 도서관에 많이 늘었단다. 이게 다 엄마들이 많이 신청한 덕분이라고. 역시 대한민국 엄마들 만세!다. ^^)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하나. 

어느 날 학교 마치고 나오는데 정문 앞에 못보던 리어카 행상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간식을 팔았는데, 바로 식빵 토스트 튀김이었다. 하나에 50원. 너무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당시 내 하루 용돈이 10원이었다. 10원이면 당시 ‘라면땅’ 과자 하나를 살 수 있었는데, 토스트 튀김은 신제품답게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가였던 셈이다. 그래서 난 그날부터 용돈을 안 쓰고 모았다.

 

닷새째 되는 날 수업이 끝나자 50원을 쥐고 교문 앞으로 나갔는데, 행상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50원을 들고 날마다 거리를 찾아헤맸지만 튀김 토스트 리어카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난 그 토스트를 먹어보지 못하고 유년 시절을 마감해야 했다. 돈이 부족해 토스트를 사먹지 못한 그날의 아쉬움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드라마 촬영을 하다 문득 길거리 행상에서 튀김옷을 입힌 토스트를 보면 꼭 사 먹는다. 그럼 같이 일하는 조연출이 놀라 묻는다.

“감독님 출출하세요? 가서 간식꺼리 사 올까요?”

그럼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아냐. 이건 그냥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선물이야.

 

어른의 삶은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 가서 어려서 읽지 못한 책을 다시 읽는다. 이제는 원서로 읽는다는 게 어른이 된 기쁨이다. 아이와 일주일에 두어번은 꼭 동네 도서관에 간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어른. 이게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