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 더 알차게 즐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주 한가지씩 새로운 습관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습관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습관이 곧 나다. 습관이란,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게 최적화된 삶의 방식이다. 이제 겨우 나이 50이다. (겨우^^) 남은 평생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하루라도 젊을 때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오래도록 이득이다.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드는건 쉽지 않다. 그래서 올해 첫 결심으로, 오래된 습관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나의 오랜 습관은 도서관을 다니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립 도서관을 즐겨 다녔다. 책이 좋았다기보다, 집이 너무 싫었던거지. ^^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에 있으면 늘 주눅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면 소설도 있고, 신문이랑 잡지도 있고, 심지어 만화도 있었다.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였기에, 도서관을 피난처 삼는게 습관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책을 읽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자료열람실에 가서 백과사전을 검색했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그냥 핸드폰 열고 인터넷 위키 백과로 검색한다. 참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 인터넷 때문에 도서관 가는 사람이 줄었다. 요즘 애들은 집이 싫으면 그냥 PC방으로 가더라.

인터넷 때문에 도서관이 찬밥만 되는 건 아니다. 좋아진 것도 있다. 바로 인터넷과 도서관의 만남이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한다. 동네 도서관을 구글링해보시라. 요즘 도서관 홈피 참 잘 되어있다. 책을 찾아 도서관까지 발품 팔 필요도 없다. 갔다가 책이 없으면 공연히 헛걸음이다. 일단 검색해보고 대출가능이라고 뜨면 그때 달려간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도서관 이용시 좋아진 3가지가 있다.
1. 대출된 상태라고 뜨면 인터넷으로 대출 예약을 한다. 그러면 반납되는 대로 대출 안내 문자가 온다. 도서관 회원 가입만 하면 아주 간단한 절차로 예약이 가능하다. (쇼핑 사이트 가입보다 훨씬 간편하다.)
2. 만약 찾는 책이 없다면 상호대차 서비스를 알아본다.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 근처 도서관에서 픽업할 수 있다.
3. 도서관에 없는 신간이라면, 또는 도서관에 구비해두고 이웃끼리 함께 읽고 싶은 책이라면, 희망도서 구매 신청에 올리면 된다.

40년된 습관을 새로 업그레이드한다. 올해는 인터넷 도서관 홈피를 활용해 도서관을 더욱 가열차게, 적극적으로 애용하기로 했다. 예약 대출, 상호 대차, 희망 도서 구매 신청, 이 세가지를 적극 활용하여 독서량을 더욱 늘리기로. 오랜 습관에 새로운 습관을 더하여 풍성한 독서생활!

생각해보면, 도서관이야말로 진정 '공짜로 즐기는 세상' 아니던가!

올 한 해도 짠돌이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 속에서 더욱 행복할 것이다. 음하하하!

도대체 돈 벌어 뭐하기에 그렇게 자린고비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어제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배님, 어디 계세요?"
좋은 질문이다.
'직무상 편성국 TV편성부에 있고,
마음은 MBC 드라마국에 있고,
몸은 발리 꾸따 비치에 있다."
라고 답을 해줬다.
ㅋㅋㅋㅋㅋ

(발리 꾸따 비치에서 둘째딸 민서~)

추석에는 아버지 모시고 뉴욕을 다녀왔고, 가을에는 혼자 한달간 남미 배낭 여행을 다녀왔으니, 겨울 방학에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시간이다. 그래서 3일전 발리에 왔다. 2주간 가족여행~ 평소에는 무일푼으로 취미 생활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여행 다닌다.

며칠 전 올린 강의에서 최인철 교수님이 그러시지 않았나.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이라고.

새롭게 시작하는 무일푼 취미 교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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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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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무 2016.01.05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죄송~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ㅋ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부탁드려요^^

  2. 초록해마 2016.01.05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 조아하자 2016.01.05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도서관에 아예 전자책을 빌리는 서비스도 있죠 ^^

  4. 라라윈 2016.01.0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몸은 발리에......!
    도서관에 관해 끄덕이며 읽다가 '몸은 발리에..' 라는 부분에서 부러움이 마구 몰려옵니다...
    저도 올해의 목표는 도서관 다독왕이에요. :)

  5. 자작나무 2016.01.07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글 잘 안남기는데 반가워서 댓글 달아요.
    여행 잘 다녀오시고 시간되실 때 맛있는 거 같이 먹어요.
    최근에 본 책 '일기를 쓰다-흠영선집'
    이 책을 꼭 선배님께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보시면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그리고 보시면 아마,
    왜 제가 선배님께 이 책을 권했는지도 아실거에요.

    부끄러운 게 너무 많은 요즘
    전 자꾸 책으로 도망치고 싶은데
    물리적인 시간과 제 체력이 방전이라 이것 밖에 안된다고
    자꾸 변명만 늘었는데
    선배님 글 보고 또다시 부끄러워하며 돌아갑니다.
    얼마나 더 부끄러워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요.ㅠ

    참...제가 누구일까요? 맞춰보세요. ^^

    • 김민식pd 2016.01.07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홀!
      고전이군요
      찾아볼게요
      먼저 스무고개 들어갑니다
      예 아니오로 답해주세요 ^^
      학교 후배입니까?

    • 자작나무 2016.01.07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이...스무고개 하지 마시고
      직관으로 딱! 해주시지...
      학교 후배는 아닙니다. ^^

      참...힌트는 제 글 속에 있습니다.
      부끄러운 게 너무 많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노래를 떠올리면서요.

  6. 자작나무 2016.01.07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읽은 좋은 글도 달아놓고 갑니다...
    댓글이라기엔 너무 길지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이 책은 보셨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 아직 못보셨다면
    역시 추천하고 갑니다...^^;;;
    ----------------------

    프리모 레비, 그는 왜 자살했는가.





    “‘아우슈비치 이후’의 세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온몸으로 제시한 ‘척도’와 같은 존재”이자 “죽음이 아니라 삶의, 또 인간성의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상징”이었던 그. 그런 그가 생환하여 4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자살한 것이다. 그는 대체 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한 불가리아 지식인의 말처럼,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 선의 궁극적 승리. 선=결국의 행복. 인류가 그렇게도 믿고 싶어 하던 혹은 그런 체하던 그 공식. 그 공식의 대표 표상이던 레비. 그런 그가 자살하다니, 우린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자 레비의 무덤을 찾아 길을 떠난다. 레비가 거닐었을 거리를 거닐며 그의 삶을 반추하고, 그가 몸을 던진 현장을 바라보며 느끼고, 아파한다. 하지만 결국, 명쾌한 답은 없다. 찾지 못한다. 레비는 왜 자살을, 이 질문은 삶 속에서 내내 도돌이표를 타게 되리라.





    ‘레비는 왜 자살을?’이란 끝없는 질문엔 결국 ‘당신은 자살하지 말았어야했어’란 바람이 들어있단 생각도 든다. 그의 자살은 결국 ‘선의 승리’란 믿음에 대한 배신이니까. 그는 그대로 영영 선의 영웅으로 남아줬어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같은 범부들이 감히 선을 좇고 구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우리가 죽은 예수를 결국 부활시켰듯 레비의 죽음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멋대로 상상해본다. 타인들은 박수치며 칭송했다. 레비는 인간성의 승리라고, 지옥을 겪고도 삶을 긍정했다고. 그런데 진정, 레비 그 자신도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삶이 걸어온 상황에 그리고 타인들에게 ‘떠밀려’ 인간성의 승자와 삶의 긍정자란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던 건 아닐까. 옳고 바른 ‘정답적 말’(단순히 사회규범 이상의, 정언명령적인 그 무엇. 타자를 향한 양심?)을 좇아 살고 그런 선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건 분명 훌륭한 일이나 한편 ‘나는 (확실히) 선의 편에 서있다’는 자의식에 취하기도 쉬워진다. 선언과 삶은 다르다. 선의 선언이 선한 삶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그 자각은 쉽지 않고 착각은 쉽다.

    레비는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은 진짜 증언자가 아니라 말하는 장면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즉 인간성의 승자, 삶의 긍정자란 평은 외부에서 그에게 부과한 것일 뿐, 그 자신 내면에서 스스로를 보는 눈과는 다른 것이다.

    차라리 레비 그 자신도 스스로를 인간성의 승자, 선의 상징으로 여겼다면, 그런 자의식을 품었다면 결코 자살하지 않았으리라. 허나 그는 스스로에게 취하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선의 선언만으로도 자신을 선의 편, 선한 삶이라 쉽게 착각하는 범부들과 크게 다르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성의 승자가 어떻게 자살을!”이란 모순, 그 당혹은 외부의 눈으론 지당하나 레비 내면의 눈으론 전혀 모순될 일이 아닌 것이다. 영웅의 자살은 우릴 당혹케 하지만 그 당혹은 결국 우리에게 인간성을 더 깊이 숙고하라는 명령, 오만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렇다면 레비를 끝끝내 절망케 한 건 무엇일까. 답은 간단한 것 같다. 레비의 외침처럼 “이것이 인간인가!”. 서경식의 말처럼 “인류는 나아지지 않았다”.





    우린 나치를 욕하고 유대인 학살에 치를 떨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치와 유대인 학살은 보지 못한다. 오히려 나치를 욕함으로써 나의 정의, 나의 선에 쉽사리 자족하며 살아간다. 폭력과 차별에 기반 한 인간사회라는 본질은 계속된다. 어느 시대고 그러했고 어느 시대고 인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욕망은 늘 선보다 강했다. 그렇게 우린 망치고, 망가져왔다.

    우리가 (소수의) 선의 영웅들을 칭송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의지하는 건 거꾸로 그만큼 이 세상이 전혀 선하지 못함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폭력과 차별이란 거대 틀 안에서 진정 선, 옳음을 좇는다는 건 괴로운 일이 된다. 끊임없는 자기모순과 절망을 반복해야 하리. 그러지 못한, 편안한 선, 옳음이란 그저 멋진 선언이란 액세서리뿐일 수 있다.





    우린 어느덧 절멸의 벼랑 끝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폭력과 차별은 전방위적이다. ‘아우슈비츠’는 끝난 적이 없다. 오늘도 인류는 참으로 ‘젠틀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자연에 대한 폭력은 한층 더 잔인하고 젠틀하다. 자연에 대한 제노사이드는 이젠 한계에 닿았다. 뭇 생명의 생존 자체가 점차 불가능해져간다. 이 지구의 온 생태계의 절멸의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인류의 폭력과 차별도 끝이 나리라. 너무 너무 슬프게도, 절멸=구원이 되는 것이다.





    “다음 세기에도 인류는 스스로 경험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게 될까? 나의 예견은 비관적이다.” (책 ‘쁘리모레비를 찾아서’ 중)


    비관적이다. 비관적일 뿐이다. 사고의 큰 틀은 이렇듯 비관적이라 해도 죽지 않는다면, 그럴 거라면 우린 소소한 오늘 일상을 또 살아내야 한다. 제3세계를 착취해 얻은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며 세상의 문제점들을 논하고, 하류가 있기에 중상류층의 여유를 누리고 있음을 잠시 잊고 우리가족의 안정과 웃음을 위해 힘내서 뛰고 누려야 한다. 자본주의가 마련해둔 장난감과 놀이터란 소비세상 안에서라도 가능한 한 우정과 우애를 키워간다. 모순들을 적당히 ‘퉁치며’ 소소하게, 약간은 치사하게, 이따금 재미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힘내서 살아가다 가끔 이런 글을 읽으며, 눈물지을 수밖에 없다.





    “현실세계가 어떻든 오직 선 때문에 그리고 오로지 선을 위하여 흔들림 없이 선을 행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처음부터 현실세계에 대해 절망하는 법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참으로 선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선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희망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비극적 세계관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상봉의 책 ‘호모에티쿠스’ 중)



    [출처] [인문학교실] 프리모 레비, 그는 왜 자살했는가. (대안연구공동체(CAS)) |작성자 햇님이

    • 김민식pd 2016.01.07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희망은 힘이 세다
      고 느꼈어요

      음...
      어려운 퀴즈에요

      자작나무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작 부끄러워해야할 사람들은
      부끄러운줄 모르고 살아요

      직관이 딸리나 봐요 ^^
      감을 잃었나?

    • 자작나무 2016.01.07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응팔 때문인지 애들 학교에서도
      마니또 놀이를 하더라구요.
      저희 어릴 때 하던 것인데....

      그냥 제가 선배님의 마니또가 될게요.
      마니또, 뭔지 아시지요?
      몰래 뒤에서 도와주는 비밀친구 같은 것...
      저희 집 꼬마는 친구 사물함을 몰래 정리해줬다고 자랑하더군요..ㅎㅎ

      제가 선배님을 도울 힘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나 기꺼이 그럴거니까요
      선배님께 큰 빚을 진 후배입니다...
      이젠 정말 누군지 아실 거 같은데...ㅠㅠ
      그럼 마니또가 아닌가? ^^;;;

  7. 김민식pd 2016.01.07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한 마음, 한가득이옵니다!
    망극하옵니다! ^^

  8. 불광동 민서엄마 2016.01.14 0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동네는 심지어 대출 신청하면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가져다 줍니다!!! 책이 단비처럼 내린다고해서 '책단비'에요 ^^ 죽이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