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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몽골 여행, 나의 뻘짓 릴레이

by 김민식pd 2014. 8. 25.

따님들을 모시고 몽골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어느 나라를 갈 때 여행을 나름 준비한다고 하면 두가지 정도는 보너스로 해줘야 한다. 하나는 언어, 하나는 역사 공부. 한국에 여행 온 파란 눈의 이방인이 우리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우리 역사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한다면 얼마나 이쁘게 보이겠는가. 적어도 론리 플래닛에 나오는 역사 개요 정도는 읽어줘야한다. 여행가서 우리가 보는 것은 대부분 역사 유적이니 그에 얽힌 사연 정도는 알아야지.

 

그런 생각에 나는 몽골 여행에 앞서 중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가보니, 그게 완전 뻘짓인걸 알았다. 몽골은 중국어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 음........ 완전 바보짓 한거다. 내몽골은 중국의 한 성이니 중국어가 쓰일지 모르나, 독립국가인 몽골은 중국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 중국어 간판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러시아 어권인 시릴 문자를 쓴다. 딸들 앞에서 잘난 척 하려고 한 계획, 망했다. ㅠㅠ

 

나는 역사 공부도 좀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을 열심히 읽었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 제국의 전성기인 쿠빌라이 칸 시절에 대원 제국의 화려함을 서방 세계에 알린 그 사람 아닌가. 그의 책을 통해 몽골의 역사를 공부해야지! 음...... 이것도 또한 뻘짓이었다.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몽골의 수도는 지금 중국의 북경이다. 쿠빌라이 칸이 천도하면서 세운 수도가 베이징이다. 동방견문록을 보면 북경의 옛모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내가 방문한 울란바토르에 대한 얘기는 언급도 없더라..... 딸들 앞에서 아는 척 하려고 한 계획, 실패다. ㅠㅠ

 

나는 정말이지, 몽골에 가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마지막 날, 큰 딸 민지에게 물었다. "몽골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말타기나 낙타타고 한 사막 트레킹을 기대하고 물었으나 민지는 "호텔에서 TV 본 거" 라고 말해서 나를 좌절시켰다. (여행도 그렇지만 육아는 절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

 

 

 

농경민족인 우리가 오곡을 중요시하듯이 유목민들인 몽골 사람들에게는 오축이 소중하다. 낙타 말 소 양 염소. 몽골의 양고기는 별미이긴 하나 아이들은 특유의 노린내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그래서 마트에서 신라면을 사다 끓여줬더니 좋아라 하더라. 집에서는 엄마가 잘 해주지 않는 라면을 아빠랑 여행 가서 원없이 먹고 온 거다.

 

 

 

게르에서 끓인 신라면을 초원을 바라보며 셋이 나눠 먹었다. 물론 먹으면서 신신당부했다.

"엄마한테 아빠가 신라면 끓여줬다고 이르기 있기 없기?" "없기!"

 

돌아오던 날 장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외할머니랑 통화하던 여덟살 민서가 제일 먼저 했던 말.

"할머니, 우리 몽골 가서 신라면 3번이나 먹었어!"

놀라서 옆에서 기함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얼른 덧붙인 말.

"참 할머니! 아빠가 라면 끊여준 거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랬어. 그러니 할머니도 얘기 하지마."

ㅠㅠ 네가 날 두번 죽이는 구나.....

 

그렇다. 나름 수백 들여서 여행 다녀왔는데, 민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간만에 먹어본 신라면이었던 것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에 있는 게르 캠프. 시설이 참 좋다. 유목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온 관광객을 위한 배려로 딱인듯 하다. 8월 한여름에도 밤에는 쌀쌀해서 난로를 켜야한다. 나무땔감을 때는데 불씨가 꺼지는 새벽에는 좀 쌀쌀하다. 아침에 일어나 추워서 애들이랑 덜덜 떨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그러더라. 새벽에 불피워주려고 갔다가 문이 잠겨있어 못 해줬다고. 담부터는 문 잠그지 말란다. 딸들 챙기려는 마음에 문단속했다가 애들 얼어죽을 뻔했다. ㅠㅠ

 

 

나름 의욕 넘치는 아빠가 준비한 여름 방학 특선 여행, 애들은 어땠을까?

애들은 게르 옆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몽골 다녀와서 남은 단 한 장의 사진을 꼽으라면 이 사진을 들겠다. 두 딸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던 한 장면이다. 기껏 몽골까지 가서 놀이터 사진이냐고 타박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두 아이의 즐거운 표정을 보는 것 만으로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

 

예전에는 여행을 다니며 신기한 풍경, 재미난 액티비티를 찾아다녔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찾아다닌다. 나도 늙었나보다. 감이 떨어졌는지 여행가서도 뻘짓 많이 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게 낯선 곳에 가서 뻘짓하고 실수하는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완벽하게 통제된 생활을 원한다면 그냥 집에 있지, 여행은 왜 떠나나. 이런 관대한 생각으로 스스로 뻘짓을 용서해준다.

 

20대에 배낭여행을 다니던 시절, 결혼과 육아는 배낭 여행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아빠로 딸들과 함께 다니는 여행도 재미있더라. 이번 여행의 최고의 협찬자인 마님께 감사드린다. 남편의 못말리는 오지여행벽을 이해해주고, 때로는 딸들과 오붓이 떠나는 여행을 용서해주시는, 그분이 보살이시다. 나는 마님 없이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한 열흘 정도 엄마가 없어봐야 애들이 아빠 귀한 줄 안다. ㅋㅋㅋ

(마지막까지 협찬 고지 의무는 반드시 지키는 성실한 방송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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