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월 24일 주말에 가족과 함께 나주 불회사로 템플 스테이를 갔다. 당시 나는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26일 재판을 받게 되어 있었다. 판결에 따라 법정구속되어 6개월의 형을 살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실형을 살기 전, 마지막 주말 뭘 하며 보낼까 하다가 나주 불회사로 가족 나들이를 떠났다.

 

산을 타면서 절에는 자주 들르지만, 템플 스테이를 위해 찾는 절은 느낌이 또 다르다. 오후 4시가 넘어 절에 도착했는데 유명하고 오래된 절임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낮에는 산을 찾는 관광객으로 절간이 시끌시끌하지만 어느 절이나 해질 무렵이 되면 고요한 원래 정취를 되찾게 된다. 수백년된 고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래서 1박을 해봐야 한다. 난 그런 분위기가 좋아 매년 가족과 한 두 차례 템플 스테이를 떠난다.

 

첫날엔 아이들과 산채 비빔밥으로 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내와 둘이 예불에 참여했다. 컴컴한 산 속에서 산새 소리 들으며 목탁 소리에 맞춰 스님과 함께 대웅전 둘레를 걷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108배를 올리고, 가볍게 땀을 흘린 후, 대웅전을 나오면 새벽 산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그때 만나는 일출은 정말 반갑다.

 

아침을 먹은 후, 주지 스님과 차담의 시간이 있었다. 스님 뒷편에 수행 일과표가 적혀 있었다.

 

'오전 3시 ~ 6시 새벽 수행

오전 6시 ~ 8시 아침 공양

오전 8시 ~ 12시 아침 수행

12시 ~ 오후 2시 점심 공양

오후 2시 ~ 6시 낮 수행

오후 6시 ~ 8시 저녁 공양

오후 8시 ~ 11시 밤 수행'

 

누가 그 일과표에 대해 물었다.

"스님, 정말로 저렇게 수행을 하십니까?"

스님이 빙긋 웃으셨다.

"그럼요, 저렇게 수행을 하지요."

"힘들지 않나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수행하면?"

"참 좋죠. 저렇게 수행만 하면. 지금 절 뒤편에 스님들 공부하시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엔 학승이 몇 분 계시죠. 그 분들은 저보다 더 엄격한 일과로 수행을 하십니다. 저는 지금 주지라는 관리직 역할을 맡아 이렇게 손님도 맞이하고 절간의 살림도 돌보고 하는데요, 임기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 수행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수행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가요?"

"단순한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면벽 참선이라 하여 그냥 벽 보고 정좌하고 앉아 가만히 있는 공부가 최고지요."

"염불은 어떤까요?"

"염불도 좋지요."

"일반 불자들에게 불경 낭송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나무아미타불만 하루 종일 외우셔도 그것도 참 좋은 공부입니다."

 

문득 나는 내 마음 속 커다란 응어리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재판을 하루 앞두고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러 절을 찾아갔지만, 사실 그 마음이 뭐 그리 좋겠는가. 벌써 몇년째 구속영장이니 뭐니 검찰에 불려다니는데, 정작 형무소에 가게 된다면 여덟살 난 딸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심란했는데 주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래 용맹정진의 기회가 되겠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내가 평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단기출가다. 하지만 가정을 가진 직장인이 몇 달의 시간을 내어 산사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검찰의 도움으로 집안일과 회사일에서 놓여나 장시간 용맹정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스님이 그 좋다고 하시는 면벽참선도 할 수 있고, 나무아미타불 하나만 죽도록 외우며 염불 수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명랑하고 즐겁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실은 난 무척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항상 어떤 일에 앞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그려본다. 그런 후, 그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밝은 면을 들여다 본다. 그러면 최악도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다. 최악을 각오할 수 있다면 인생 그리 힘들지 않는다. 

Hope for the best. Expect the worst.

최상을 희망하고, 최악을 각오한다.

 

(나주의 어느 찻집에 들렀을 때 어떤 분이 찍어준 가족 사진.)

 

모시고 사는 마님은 나의 부처님이시다. 예전에 드라마 하나 말아먹고 너무 괴로워서 휴가계를 내고 단기출가 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가 말렸다.

"그냥 집에서 나랑 아이들을 부처님 모시듯 대하고 살아봐."

ㅋㅋㅋ 역시 마님은 못 당한다.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검찰에서 곧바로 항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용맹정진의 기회는 살아있다. 아내도 말릴 수 없는 단기 출가의 기회가. ^^ 

무엇이 오든 달갑게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서 보내지 않은 오늘 하루 하루를 선물받은 기분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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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 2014.06.23 0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는 모습은 닮고 싶을 정도로 부럽습니다 멋진 아빠, 멋진 남편 덕분에 가족들 얼굴에 행복이 넘치나봐요^^ 오늘도 기쁜일만 만드세요^^

  2. 권오문 2014.06.23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PD님

    최악을 각오하고 최상을 바란다는 건

    마음은 그래도 실제 닥치면 참 안되는 일이더라구요.

    날씨도 별로고 축구도 별로지만

    그래도 한 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3. 時代遺感 2014.06.24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다보면 늘 느끼는 거지만, 마님께서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입니다. 중심을 잘 잡아주시는 것 같아요.

  4. 공수래공수거 2014.06.24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수 배우고 갑니다^^*

  5. 구름 2014.08.05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마운 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