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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사고를 바라보는 세가지 입장

by 김민식pd 2014. 2. 12.

예전에 주말연속극 '글로리아'를 연출할 때 일이다. 차로 출근하는 길에 신호 대기에 걸려 멈춰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차가 덮쳤다. 아니, 덮치는 건 모르고 있었다. 그냥 빨간 불에 걸려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하고 들이받기에 뭔 일인가 내렸더니 내 차 뒷범퍼와 문짝이 나가 있었다. 뒤에서 받은 차는 본넷이 들려올라간 상태로 반파된 지경이었고. '이건 뭐지?'

흥분한 뒷 차 운전자가 내려서 한 첫 마디. 

"방금 그 트럭 보셨어요?"

"네?"

"방금 끼어들기 하려던 그 트럭 보셨나구요."

잠시 멍해졌다. 지금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저기요, 전 트럭은 모르구요. 제가 빨간 불에 정지해 있는데 뒤에서 저를 받으신 거거든요?"

"그러니까요. 그게 제 잘못이 아니구요. 웬 트럭이 갑자기 끼어들려고 해서 그런 거거든요."

 

트럭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나중에 추론해 본 사고 경위는 이렇다. 당시 오른쪽 옆 차선은 버스 전용차로였다. 차가 막히자 텅빈 버스 차로로 불법 주행하던 트럭이 전방에 버스 차선 단속 카메라를 발견하고 급하게 끼어들려고 했는데, 내 뒤에 따라오던 소나타 운전자는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엑셀을 밟았고, 트럭이 계속 밀고 들어오자 엑셀을 밟은 상태에서 서로 째려보며 실갱이를 벌인 것이다. 트럭이 결국 포기하고 그냥 가자 소나타는 가속 상태 그대로 앞에 정지해있던 내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뒷 차 운전자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트럭이 끼어들기 하려는 통에 내가 방어운전 하느라 전방 주시를 못 한 것 뿐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 무슨 날벼락인가. 목 허리 아프고 쑤셨지만 입원은 꿈도 못 꿨다. 주말 연속극 연출에게 6개월간 휴식은 단 하루도 없다. 당장 다음날 '글로리아' 세트 녹화라 결국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밤을 새며 녹화를 했다. 그럼에도 그 운전자는 내게 사과 한번 하지 않더라. 당연하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트럭 탓이니 사과할 일이 없을게다.

 

운전할 때 끼어들기 하겠다고 깜박이를 넣으면 뒷 차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속도를 줄여 공간을 내주던가, 오히려 가속해서 못 끼어들게 하거나. 소나타 운전자는 가속을 선택했다. 트럭이 그 큰 덩치로 밀고 들어오자 속도를 내어 신경전을 벌였다. 기싸움에서 패자는 트럭이다. 결국 끼어들지 못하고 버스 차선으로 밀려나 단속 카메라에 걸렸을 테니. 패배의 댓가로 범칙금 5만원을 물었겠지. 하지만 승자인 소나타를 결승선에서 기다린 건 신호대기중인 내 차였다. 맹렬하게 결승선을 통과해서, 승리의 댓가로 1천만원이 넘는 수리비와 병원비를 물게 되었다.

 

우리 인생의 불행은 어쩌면 평소 우리의 생활습관이 부른 업보인지 모른다. 트럭 운전자는 불법 주행한 벌로 범칙금을 물었을 테고, 소나타 운전자는 양보하지 않은 벌로 보험금을 물었는데, 그럼 나는? 그냥 신호 대기하고 서 있다가 받히고, 심지어 일하느라 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은 나의 억울함은 어떡할 것인가?

 

코엔 형제의 신작 '인사이드 르윈'을 봤다. 포크 송 가수인 주인공은 첫 장면에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누가 공연장 밖에서 기다린다는 얘기를 듣고 나갔다가, 갑자기 처음 본 남자에게 폭행을 당한다. 어떻게 된 걸까? 영화는 우리의 삶이 타인과 혹은, 우리의 과거가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 지 보여준다.

 

살다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행이 닥쳐온다. 그때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남 탓은 의미없다. 하필 그 순간에, 내 차가 그 곳에 있었던 이유도 내가 지은 무수히 많은 인연의 결과일 것이다. 5분 먼저 집에서 나왔다면? 3분전 옆차선으로 옮겼다면? 이런 생각은 의미없다. 그냥 업보는 받아들이는 거지 뭐. 그걸 못 받겠다고 씩씩 거려봤자 내 정신 건강만 해칠 뿐이다. 트럭에는 트럭의 입장이, 소나타에는 소나타의 입장이, 내게는 나의 입장이 있다. 상대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겠거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괴롭기만 할 뿐이다.

 

불행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닥쳐온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내가 과거에 지은 업보려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이게 절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하고, 수행이 필요한 것 같다. 인생, 참 만만치 않다.

 

 

 

인생에 큰 의미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오는 대로 받으며 살 뿐이다.

순간 순간 최대한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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