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경주에서 10년을 살았기에 마음의 고향은 늘 경주다. 아이들과 별 생각없이 뛰어다닌 뒷동산이 알고보니 왕릉이었고, 구슬치기 한 곳이 포석정이었다. 예전에 하이킥 시리즈를 연출한 김병욱 감독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그 분도 고향이 경주란 얘기를 들었다. 둘 다 그 자리에서 무척 신기해했다. 경주에서 자란 것과 시트콤 피디가 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어려서부터 난 동네에서 뛰어놀면서 내가 보는 모든 장소에 옛날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주위에서 보는 모든 장소들이 어린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 덕에 책을 좋아하게 되고 나중에 피디가 된 건 아닐까.

 

한국에 천년고도 경주가 있다면, 라오스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루앙프라방이 있다. 1975년 공산주의 혁명 전까지 수백년 동안 라오스의 수도로 역할을 해왔기에 도시 곳곳에 문화유적이 있다. 500년 가까이 된 왓 시엔톤을 비롯해 오래된 사찰이 많다. 하지만 이곳을 찾기위해 방비엥에서 버스를 탔다면 8시간 가까이 비포장 도로 위에서 고생을 좀 해야한다. 도착한 첫 날 숙소를 잡고 늦은 오후 푸시 힐을 올랐다.

 

 

 

산 아래로 도시의 전경과 메콩강이 보인다. 이곳에서 석양을 보는 것이 르앙프라방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둘째날에는 여유있게 일어나 자전거를 빌려 시내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민지는 자전거가 서툰데, 이곳 루앙프라방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일부 허가된 차량만 시내에서 차를 주행하도록 되어있어 자전거로 돌아보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도시이다. 메콩강을 따라 오래된 절을 구경하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우리 부녀에겐 최고의 추억이었다.

 

 

그러다 강변 카페가 나타나면 1000원짜리 코코넛을 사서 나눠먹고 우노나 루미큐브같은 보드게임을 했다. 나는 보드게임 하는 걸 즐기는데, 어른과 아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딸에게는 이겨도 기분좋고 져도 기분이 좋으니까. 

 

 

자전거를 타고가다 아무 골목이나 쑥 들어가면 이런 멋진 절이 나온다. 관광안내책자에도 안나오는 이름없는 사원이었지만 느낌이 참 좋았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민지가 찍은 내 사진이 내가 찍은 민지 사진보다 더 구도가 좋다. 인물과 배경의 배분이나 구도 등, 모든 점에서 민지가 더 잘 찍었다. 이럴때는 꼭 아이에게 칭찬을 해준다. "아빠가 드라마 피디면 뭐하니, 촬영은 12살난 민지보다 더 못하는데." 그러면 민지는 쑥스럽게 웃는다. 선한 아이의 미소만큼 흐뭇한 게 없다. 아이와 단 둘이 여행을 하면서 평소 모르던 아이의 장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좋다. 집에서 '아빠 어디가'를 보며 윤휴 예찬만 하지마시고, 둘만의 여행을 떠나 내 아이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세째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보러갔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나는 불자로서 언젠가는 단기 출가를 하는게 꿈이다. 연출한 드라마가 망해서 실의에 빠져있던 어느날 아내에게 물었다. "부인, 나 휴가내고 한 달 정도 절에 가서 수양 좀 하고 오면 안돼?" "왜?" "부처님 모시고 마음공부 좀 하게." "그냥 집에서 부처님 모시듯 나랑 아이들을 좀 섬겨봐." ㅋㅋㅋ 역시 우리 마님, 못 당한다.     

 

 

 

셋째날 오후에는 한인민박집 사람들과 툭툭을 함께 빌려 꽝시 폭포에 갔다. 물이 차지만 그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즐겼다. 경치가 아름다워 루앙프라방에 들렀다면 꼭 한번 가 볼 만한 곳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줄을 타고 타잔 흉내도 꼭 한번 내보시길.

 

저녁에는 야시장에서 놀았다. 한쪽 골목에 있는 시장통 만킵 부페도 참 좋다. 우리돈 1500원 정도에 접시에 양껏 음식을 담을 수 있다. 라오스 군만두도 맛있고 잡채같은 국수도 많이 있다. 아침으로는 길거리에서 1500원짜리 '라이스 수프'를 먹었는데, 맛있는 라오스식 닭죽으로 한국 배낭족들이 즐겨찾는 메뉴다. 우리 입맛에 딱 맞고, 아침을 해결 할 수 있는 최고의 메뉴다.

 

루앙프라방을 며칠 즐겼다면, 이제 다음 코스는 숨은 오지 마을 므앙 응오이 느아로 갈 차례다. 다음엔 배를 타고 므앙으로!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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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두파파 2013.05.15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트콤 pd께서 이렇게 슬슬 후기를 올리시니 더 감질맛 나네요 ㅋ
    저도 고향이 경주라 갑자기 루앙프라방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데요~

    근데 따님 안고 계신 사진을 보니 왠지 보쌈해가는것같은 느낌이.....((((((((((((^^;;;)/

  2. 용이 2013.09.3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3년 지금으로 부터 딱 10년전 라오스에서 기억이 새롭네요.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못 가봤지만, 근 20개국 배낭여행으로 땅을 밟아본 곳 가운데 라오스는 저의 최고 여행지 였습니다. '사람, 문화, 자연' 정겨웠고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곳이였죠. 이글을 통해 멋진 주인장과 따님 얼굴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좋았네요. 저도 아이들이 자라서 함께 저와 여행을 다닐 때를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