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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희망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by 김민식pd 2013. 2. 6.

작년 12월 20일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아내가 물었습니다.

"이제 당신 후임은 어떻게 해?"

저는 지난 2년간 MBC 노동조합 편제부문 부위원장으로 일해 왔거든요.

170일에 걸친 파업, 7명의 해고자, 아직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한 100여명의 조합원들...

MBC 노동조합은 지금 이 순간,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노동 조합을 맡으려 할 것인가?

아내에게 말했지요.

"걱정 마. 이런 상황에서도 집행부는 꾸려져. 그게 MBC 노조의 힘이야."

 

저는 후임을 부탁하기 위해 '편성의 현자'를 찾았습니다. 편성국에서 오래 일한 피디인데요, 평균 독서량이 많은 MBC 직원들 사이에서도 책 많이 읽기로 유명한 후배입니다. 제가 얼마 전 블로그에서 소개한 '습관의 힘 Power of Habit' 역시 이 친구에게서 추천받은 책입니다. 평소 늘 영어 원서로 책을 읽는 후배는 제게 100권에 가까운 영어 원서를 추천해줬거든요.

 

그 후배의 독서 습관을 잠깐 소개할까요? 일단 그 친구는 저녁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퇴근 후 시간을 온전히 책읽기에 전념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핸드폰을 꺼둡니다. 카카오톡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산 속 암자에 틀어박힌 선비처럼 퇴근후에는 책읽는 즐거움에 몰입하며 삽니다. 

 

그 후배에게 노조 부위원장직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 난 술도 안 마시고, 사람도 안 만나는데, 어떻게 집행부를 해요."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지 않니. 이제 너도 책을 접어두고 세상에 나와야 할 때가 온 거지. 책에서 찾아낸 지혜를 이제 세상에 좀 나눠줘야하지 않겠니?" ^^

 

MBC 노조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노동자는 노동조합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고요,

노동조합은 사람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고요,

사람은 책에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힘든 시기에 무거운 짐을 후배에게 넘겨주게 되어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2000명의 조합원이 있고, 수천권의 책이 있음을 알기에,

저는 여기서 물러날까 합니다.

 

새로 출범하는 MBC 노동조합 10기 집행부 여러분,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저는 9기 집행부의 구호를 마지막으로 외치고 물러납니다.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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