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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노종면처럼 돌파하라

by 김민식pd 2012. 12. 7.

1998년인가, MBC 입사하고 채 2년이 되지 않았던 신입 조연출 시절의 일이다. MBC 공채가 한참 진행중인 가을이었는데, 예능 PD 면접을 앞둔 한양대 후배가 회사로 찾아왔다. "세상에 예능 피디만큼 재미난 일도 없으니 꼭 꿈을 이루시게!"하고 당부했는데, 그후 연락이 없었다. 결과가 안좋았나보다 하고 잊고 살았는데, 올해 초 YTN의 한 해직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저 기억하시나요?" 

 

MBC, KBS, YTN 방송3사 공동 파업 집회에 나가면 꼭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이명박 출범 후 해고된 노종면, 현덕수, 우장균, 정유신, 권석재, 조승호, 6명의 동료 이름을 부르며 "복직! 복직!"을 외치는 복직송이다. 그 정유신 기자가 14년전의 후배였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가 고배를 마신 후, 예능피디에서 기자로 직종을 바꾸어 YTN에 입사했단다. 그러다 지난 2008년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당시 노종면 앵커 등과 함께 해고되었다. 해직기자 정유신과 예전의 후배가 동일인물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다고 했더니 그러더라. "저야말로 선배님과 MBC 노조부위원장이랑 동명이인인줄 알았잖아요. 그때는 춤추고 노래하고 웃길 수 있어 예능 피디가 최고라고 하시던 딴따라였는데."

 

그러게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 대단한 점이 그게 아닐까? 불과 5년 사이에 세상을 이 지경으로 바꿔놓고, 아무 생각없이 살던 딴따라를 전장으로 소환해낸다. 월요일에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토크 콘서트를 갔다가 정유신 기자를 만났는데, 그가 책 한권을 들려줬다.

'노종면의 돌파' 

"지난 3년간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쓴 책이에요, 선배님."

 

 

책을 읽으며 참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우울한 상황을 이렇게 재밌게 그릴 수 있는거지?'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거기나 여기나 부역자들 하는 짓은 어쩜 그리 똑같은지... MB의 또다른 능력인가 보다. 자신을 똑 닮은 아바타들을 나라 곳곳에 분신술로 소환해내는 것.

 

책을 보니 정유신 기자가 돌발영상 PD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돌발영상을 볼 때마다 자막이나 편집의 예능감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군!' 예능의 재능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곳에서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해직 후, 구속되어 교도소 생활까지 하고 나온 노종면 앵커는 트위터로 자신만의 1인 미디어를 시작한다.

 

'트위터 적벽대전이라 불리는 <용가리 통뼈 뉴스>, 영어로 Yonggary Tongbbyeo News (@YoToNews), 줄이면 YTN이다. 트위터에 계정 하나 열고, 취지를 알려 팔로워 늘리고, 트위터에 올린 글이 넓게 전파될 수 있도록 파워트위터리안들과 친분을 맺고, 매일 여덟 시간씩 투자한다. 그 결과 트위터 영향력이 어느때보다 컸다는 10.26 선거에서 다른 곳도 아니고 <동아일보>가 선정한 '25대 파워 트위터리안' 12위에 랭크됐으니 '나름의 역할'은 했다.'

 

YTN에서 만든 <돌발영상>은 성공한 킬러 콘텐츠다. 나처럼 뉴스를 보지 않는 딴따라도 돌발영상은 봤다. 거기 나오는 정치인들의 병맛 캐릭터쇼는 어지간한 시트콤 저리가라다. 해직 신분이니 '돌발영상'을 제작할 길은 사라진걸까? 노종면은 '공갈영상'을 들고 돌아온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외모를 가진 노종면의 앵커 경력도 해고로 끝난 걸까? 그는 '뉴스타파'의 앵커로 돌아와 더 많은 열혈시청자들에게 사랑을 얻는다. 진주는 흙속에서도 영롱한 빛을 잃지 않듯, 참된 언론인은 어떤 역경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예비언론인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매스미디어에 매여살던 언론인들에게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무기를 안겨준 것, 그리하여 미디어의 진화를 모색케 하는 것, 이것이 이명박의 단 하나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노종면의 돌파를 보고 배운 게 있다. '정면돌파'란 이런 것이구나. 2012년의 MBC 파업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김재철 사장의 퇴임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고통이 끝난 후, 즐겁게 기록해야지.' 그런데, '노종면의 돌파'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승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구나. 싸워야 할 때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이 승리구나. 고통을 즐기는 것, 그것이 승자의 자세구나.' 

 

멋진 싸움을 보길 원하는 분들께 '노종면의 돌파'를 권한다. 언론장악의 하수인들을 책장 하나 하나마다 소환해내어 칼날을 날리는 노종면 앵커의 모습은 마치 단기필마로 조조의 진영을 휘젓는 조자룡의 환생같다. 가카 임기가 끝나면 이들도 펑하고 사라질까? 부역자는 사라져도 이름을 남긴다, 책 곳곳에서. ^^ 책장마다 노종면이 날려대는 칼에 쓰러지는 부역자들의 모습이 통쾌하다. 와우, 심지어 현직 판사에게 자상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던지는 노종면의 돌직구! 꼭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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