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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나에게 글쓰기란?

by 김민식pd 2026. 3. 30.

최근에 글쓰기에 대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때 정리해본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1)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글쓰기는 늘 좋아했어요. 어려서 책 읽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책을 계속 읽다 보니 내 안에도 이야기가 차더라고요. 공대를 다니며 혼자 어쭙잖은 시를 썼고 <민시기의 글밭>이라는 개인 문집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MBC PD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 논술과 면접, 즉 글쓰기와 말하기 실력을 보는 것인데 어려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긴 덕분에 쉽게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연출 데뷔작인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을 만들며, 시청자 게시판을 자주 들어가 봤는데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 ‘오늘 조인성과 박경림이 아르바이트로 나온 카페는 어디인가?’ ‘오늘 양동근이 차력쇼할 때 나온 팝음악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 피디인 내가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썼어요. 일일 시트콤을 연출하는 바쁜 와중에도 매일 한 편씩 연출일기를 쓴 게 도움이 되었고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더 이상 피디로 일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후, 회사에서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고 5년간 유배지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세상이 일을 주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했고, 그때 가장 치열하게 글을 썼습니다. 10년 동안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썼으니까요. 글쓰기란 제 일상이자 삶을 붙드는 루틴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돈하고 삶을 재건하는 행위였습니다. 제게 글쓰기는 존재 증명입니다.

2) 글쓰기 전에도 많이 써왔지만, 그 상황에서 썼던 첫 글은 어떤 글인가요?

고등학교 때 왕따를 겪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따돌림을 당하면, 처음에는 상대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런데 자꾸 생각을 곱씹다보면 마지막에는 내가 가장 원망스러워요. 어려서 우리는 “세상은 대체로 공정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 믿음을 유지하려면, 부당한 일을 설명할 논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이런 계산이 일어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이 나를 미워하고 놀리고 괴롭힐 리는 없어.” “그러면 이유는 나겠지.” 그들에게 나를 놀릴 빌미를 준 나, 그들의 도발에 발끈하는 나, 그럼에도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나, 
그때 자살 시도를 한 후, 일기장에 쓴 글이 있습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은 괴로운데 왜 나까지 나를 미워했을까? 남이 나를 오해할 순 있어도 적어도 나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되자.’ 당시 글쓰기는 나와의 내면소통이었어요. 부정적 사고의 회로를 끊고 나를 용서하고 배려하는 첫걸음이었지요. 그 후 저는 힘들 때면 글을 쓰며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요. 혹시라도 생각만 계속하다 부정의 사고 회로에 빠져들지 않나 경계합니다.

‘MBC 차기 사장이 가장 미워하는 사원 1호 김민식’이라는 말이 회사에서 농담처럼 돌았던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나의 일을 방해하는 보도국 임원이 밉죠. 그런데 혼자 계속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 코미디 피디 주제에 뉴스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뉴스의 가치를 주장하니, 기자가 보기에 괘씸할 수 있겠네. 저놈이 뭘 안다고 저렇게 나댈까. 그러게. 나는 코미디 피디가 왜 그렇게 공영방송 정상화 파업에 앞장섰을까?’ 이렇게 자아비판 모드로 갑니다. 
사람이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가장 괴로운 건 내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사람은 혼란을 견디기보다, 차라리 “내가 잘못했다”고 해석하는 쪽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나’가 되면 다음엔 내가 고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회사 시스템이 잘못됐다”보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은 덜 불안합니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 나를 도닥여주는 글을 씁니다. 아니야, 넌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야.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이더라? 그걸 찾아봅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으로 살기 싫었던 적이 있어요.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나열해봤어요.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도 떠올리고요. 문득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도서관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실컷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어요.
2015년 송출실로 쫓겨나 드라마 피디 인생의 최대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나는 나를 핍박하는 이들에게 내가 그렇게 못난 놈이 아니다, 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나를 아껴주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어요. 1년에 200권의 책을 읽는 나, 주말마다 서울 둘레길을 걷는 나, 내가 살면서 좋아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썼씁니다. 그러다 20대의 내가 어떻게 혼자 영어책 한 권을 외우고 동시통역사가 되었는지 썼어요. 그 글이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피디를 그만두고 작가로 살게 되었지요. 즉 나는 힘들 때 나를 긍정하는 글을 쓰고요, 그 글을 통해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습니다. 제게 글쓰기는 구원입니다.


 
3) 그때의 글과 지금의 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솔직히 저는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조금 더 정제된 것 같고 조금 덜 거칠어진 것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독서를 할 때 깨달았어요. 무조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습니다. 의무감에 책을 읽는 건, 책과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독서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행위일 때, 더욱 효능감을 느끼고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에요.
쓰고 싶은 글을 막 쓰다가 글을 잘못 써서 크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초고를 쓰고 수정을 여러번 합니다. 초고를 쓸 때는 쓰는 내 마음대로 나의 감정에 충실해서 쓰지만, 수정을 할 때는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살핍니다. 
초기의 글이 더 솔직하다고 저는 느낍니다. 작가로 이름을 알린 후 글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고 중압감도 느낍니다. 그래서 예전만큼 예리하거나 웃기지 않아요. 코미디 피디라서 웃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요. 제가 자학 개그라고 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예전보다는 자기 검열이 심해져서 좀 덜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4) 글을 꾸준히 쓰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글을 쓰면 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내가 온라인에 쓴 글이 나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내가 잠들거나 쉴 때도, 내가 쓴 글은 24시간 온라인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요. 그중에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분들이 강연을 요청하지요. 요즘 저는 강연장에 가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가장 큰 낙이 되었어요. 함부로 웃기는 글을 썼다가, 내 삶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그 글을 보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요. 글은 남지만 말은 휘발되어 사라지거든요. 그 순간 그 상황에서만 가능한 유머가 있어요. 강연장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최고의 낙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글을 씁니다. 강연을 다니는 게 저의 공부이자, 일이자, 취미인데요.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말을 하기 위해 평소 글을 쓰며 좋은 글감을 모으고 강연 주제를 다듬습니다. 강연장에서 청중을 웃길 때, 지금이야말로 저는 코미디 피디로서 내 삶을 꽃피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매일 아침 글을 쓰나요? 분량과 주제는 어떻게 되나요?

며칠 전, 저의 전 직장인 MBC에 재테크 강연을 갔어요. <월급 절반을 재테크하라>는 책의 저자로. 후배가 묻더군요. “왜 퇴사를 결심하셨나요?” 저는 쉰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회사를 나왔어요. 이유는 하나에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읽고 싶은 책이 많고요. 여행 가고 싶은 나라도 많고요. 배우고 싶은 춤도 많아요. 작년에는 살사와 바차타를 배웠고요, 올해는 탱고를 배우고 싶고요. 틈틈이 줌바를 춥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아 퇴사를 결심했어요.
작년 한 해 동안 일요일에는 바차타 수업을 받고 월요일 아침에는 수업 후기를 동호회 게시판에 올렸어요. 이런 글도 썼어요.

‘바차타 레벨 4 · 9월 21일 수업 후기

어제 우리는 ‘타이타닉’이라는 동작을 배웠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동작이지요. 뱃머리 위, 두 팔을 활짝 벌린 여주인공을 뒤에서 감싸 안는 남자 주인공. 그 순간의 자유로움과 설렘이 바차타 안에서 재현됩니다.

동작의 시작은 바차테로가 바차테라의 왼팔 이두박근을 잡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동시에 허리를 손으로 받쳐주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엄지를 쓰지 않는 것’. 엄지를 쓰면 아플 수도 있어요. 네 손가락만으로 단단히 걸어줘야 합니다. 이어서 로가 스쿼트하듯 앉으며 라의 몸을 앞으로 내밀게 하고, 서로의 체중을 이용해 균형을 잡습니다.
왼쪽으로 보내고, 다시 앞으로 밀고, 이어서 오른쪽으로 보내는 흐름이 이어지면 라의 몸은 마치 날개를 펼친 듯 세상을 향해 곧게 서고, 한껏 매력을 발산하게 됩니다.

관객석에서 보면 로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엉거주춤 앉아 있는 로를 가린 채, 라의 몸이 우아한 선을 그리며 아름다움을 드러내지요. 로의 헌신 덕분에 라가 빛나지만, 사실 이 동작에서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은 라입니다. 로는 단순히 주저앉으면 되지만, 라는 자신의 몸을 앞으로 내던져야 하니까요. 결국 이 순간을 완성하는 힘은 라의 ‘신뢰’입니다.

그래서 깨닫게 됩니다. ‘타이타닉’이라는 동작은 로의 희생과 라의 신뢰가 맞물려야 완성되는 춤이라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 아닐까요?
사랑 또한 희생과 신뢰라는 두 기둥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전해지니까요.

서로를 향한 헌신과 믿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춤.
바차타가 ‘사랑의 춤’이라 불리는 이유를 새삼 느낍니다.

다음주에 펼쳐질 수료식 무대에서 펼쳐질 멋진 ‘타이타닉’ 군무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무슨 작가라는 사람이 춤 수업 후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쓰고 있나,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는 삶에 진심입니다. 내가 읽은 재미난 책, 내가 여행한 멋진 장소,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글로 남기는 데 진심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독서, 여행, 취미에 새롭게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거든요. 네, 지금도 저는 매일 글을 씁니다. 분량, 주제는 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 마음껏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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