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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주철환 선배의 PD론

by 김민식pd 2011. 3. 26.
(2002년 3월 시트콤 사랑에 올린 글입니다.)

얼마전 우연히 imbc.com 뉴논스톱 게시판에 주철환 교수님(이대 언론영상학부-전 MBC PD)이 저에 대한 글을 올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그 퍼온 글입니다.

-내가 만난 김민식 PD- 주철환

저는 예전에 김민식PD랑 MBC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고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주철환입니다. 오늘 우연히 김민식PD가 쓴 여러 편의 글을 읽고 너무나 반갑고 대견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대견하다는 말은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쓰는 표현이죠. 제가 김민식PD보다는 조금 선배였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였음을 양해 바랍니다. 처음 김민식PD가 입사했을 때 저는 그의 모습이 골프의 천재인 타이거 우즈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끔 미스터 우즈라고 불렀던 적도 있습니다. 그는 일할 땐 너무 신명나게 일하고 회식 자리 같은 데서는 또 너무나 흥겹게 잘 놀던 PD였습니다. 지금도 그가 (그는 30대입니다) 신세대들이 부르는 랩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춤은 또 어떻구요. 거의 백댄서 저리 가라할 정도였죠. 그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 이를테면 솔직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하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쓴 글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자신만의 특화된 취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죠. 그러면서 그것을 남 앞에서 심각하게 내세우기보다는 경쾌하고 낙관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실은 대단한 거죠. 그의 글에서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따스한 배려와 함께 교육적인 깨달음도 아울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김민식PD처럼 늘 순박하게 웃으면서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PD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비록 현업에서 한발짝 떨어져 나와 있지만 김민식PD의 글을 읽다 보니 불현듯 그 젊음과 도전이 출렁이는 현장으로 막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저는 지금 방학을 맞아 시애틀에 와 있는데 개학하자 마자 김민식PD를 만나서 우정어린 격려와 부러움 섞인 칭찬을 마구 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김민식PD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의 단골손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열악한 방송제작환경 속에서 그가 정열을 다해 뿌리는 땀의 씨앗이 소담스럽게 열매맺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때 제가 인생의 지향점 role model로 생각했던 선배님의 글을 받아들고 처음 든 느낌은 쑥스러움이었습니다. 사실 방송국 PD들은 글쓰기를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제가 카페 운영하면서, 연출일기 쓰는 버릇을 키우게 된 것도 사실은 PD 저널리즘의 선구자, 주철환 선배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이지요.

오늘은 주철환 선배님이 현업 PD 시절, 제게 들려주신 연출가론에 대해 말씀드리려구요.

PD의 속성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Journalist (언론인)
Businessman (사업가)
Entertainer (엔터테이너)
Artist (예술가)
다같은 방송 PD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지만,
시사 고발 프로나 정치 다큐 연출가는 언론인에 가깝고,
방송 제작 시스템을 관리하는 프로듀서는 사업가에 가깝고,
쇼 오락, 코미디 프로를 연출하는 이는 엔터테이너 적 습성을 가져야하며,
섬세한 그림을 잡아내는 드라마 연출가는 응당 예술가라 부를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한 연출가에게도 이 네가지 속성은 모두 필요합니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데 있어,
언론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제작하는 영상물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고,
사업가의 입장에서 제작 경비 절감, 인프라 관리, 부가가치 창출을 고심하고,
엔터테이너로서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웃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한 편 한 편 심혈을 기울일줄 알아야 하니까요.

방송국에 입사하여, 다양한 특성을 가진 선배님들과 작업하면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주철환 선배님의 명쾌한 분석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PD의 네 가지 속성, 그 무엇하나 버릴수 없는 부분이지만, 넷 다 취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초보 연출가로서 한가지에 먼저 집중하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가 '철저한 엔터테이너가 되자' 였지요.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막춤을 추며 무대 위에서 광란하는 저를 보고 한 선배님이 일침을 가하시더군요. '주철환은 펜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너는 몸으로 떼우는구나.'
쩝... 그래도 어쩝니까. 철저히 딴따라가 되어서라도 엔터테이터의 길을 가겠노라 결심한 것을...

저의 연출일기를 즐겨 읽으시는 분 중에는 방송 제작 현업을 지망하시는 분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 네가지 분류 중 어떤 쪽을 희망하십니까?
사회 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언론인?
영상 미디어 산업의 첨단 경영인?
재미와 웃음을 추구하는 엔터테이너?
장인 정신으로 똘 똘 뭉친 예술가?

길이 험할수록,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이의 발걸음은 가벼울 것입니다.

주철환 교수님의 PD론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제게는 큰 도움이었거든요... 현업 일선에서 후배를 이끌어주시고, 이제 교육현장에 가셔서도 찾아와 격려해주시는 주철환 선배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2002. 3. 28 시트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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