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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상처 입은 치유자의 조언

by 김민식pd 2022. 8. 19.

어느 기자님이 야근을 많이 한 탓인지 어깨 통증이 심해 마사지를 받으러 갔어요. 마사지하시던 분이 그럽니다. “왼쪽 가슴에 혹이 만져져요. 병원 한번 가보세요.” 마흔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원에서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받고 많이 놀랍니다. 열정과 긍정이 삶의 모토이고,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어요. 2019년에 신문사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밤 10시 넘도록 일하며 ‘올해의 언론인상’까지 타는데요. 그해 말에 유방암 진단을 받습니다.

‘처음엔 암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암이 내 삶의 즐거움과 앎의 기쁨을 빼앗고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영영 무채색 같은 삶을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암 진단 이후에도 또 다른 기쁨과 행복과 기회의 빛이 나를 비춰주었다. 여전히 삶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암 진단을 받으면 인생이 끝장나는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암 환자로 살아도 삶은 무지갯빛으로 빛난다고 말하는 분, 양선아 기자의 책을 소개합니다.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양선아 / 한겨레출판)

유방암 3기 환자가 겪는 일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항암을 하면 입맛이 사라져요. 먹어야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기에, 구토증세가 심한데도 억지로 꾸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지독한 변비와 속쓰림에 탈모까지 찾아옵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다못해 머리를 밀고 가발을 삽니다. 엄마의 낯선 모습에 어린 아들은 눈물을 흘려요. 아이들이 놀랄까 봐 엄마는 아파도 아픈 티도 못 냅니다. 그 힘든 항암을 7번이나 받고 다시 조직검사를 받는데요. 유방 전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다시 무너집니다. 항암, 수술, 방사선치료까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갑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저자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요. 바로 ‘완전관해’입니다.

돈, 지위, 인정과 사랑, 흔히 우리가 갖고 싶어 하고 바라는 것들이지요. 저자도 암 진단 전에는 집 장만하느라 진 막대한 빚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려고 기를 쓰고 일을 했어요.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니 욕망, 욕구, 욕심이 절로 줄어듭니다. 이제 저자의 꿈은 오로지 하나에요. ‘완전관해’ 암 세포가 완전 소실되는 것입니다. 몸에서 암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살까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연식으로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 누구보다 맛있게 감탄하며 먹을 자신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 좋아하는 지인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낮에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밤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수할 것이다. 단 30분이라도 반드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온전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해 나에게 쉬는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저자가 제게 들려주는 조언이라 생각하고 꼭꼭 새겨 읽었어요.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운동을 하고, 혼자서 쉬는 시간을 마련하자. 제 삶의 새로운 모토로 삼겠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책이 있어요. 우리가 잠들면 꾸는 꿈은 ‘꿈 제작자’가 만들고요. 달러구트는 다양한 꿈을 파는 판매자인데요. 이 책을 읽다 저자는 암 환자를 위한 꿈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달러구트에게 편지를 씁니다. 암 환자가 바라는 건 ‘완치 꿈’이지요. 

‘암 환자가 완치에 이르는 길은 길고 지루해요. 그 길은 울퉁불퉁하고, 장애물도 있어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암 환자는 몸의 작은 변화에도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3개월에서 6개월마다 검진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땐 바들바들 떨어야 합니다. 이런 길을 갈 때 완치 후 자신의 모습을 꿈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요? 항암 치료 중 부작용이 너무 심해 치료를 중단하고 싶은 환자가 꿈에서 자신이 마침내 도달할 그 모습을 본다면 위기를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가 주문하고 싶은 꿈이 또 하나 있어요. 암 치료를 하는 의사들을 위한 맞춤 제작 꿈으로 ‘역지사지몽’이라고요. 암 치료를 하는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와 꿈에서 역할을 바꿔보는 거죠. 그런 악몽을 누가 꾸고 싶겠냐고요? 저자는 이런 꿈이 출시되면 모든 의과대학에서 구매할 것이라고 합니다. 꿈에서라도 암 환자가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본인이 직접 경험해본다면, 환자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불친절한 의사는 확 줄어들 테니까요. 

이제는 암 진단을 받고도 완치한 뒤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어요.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새로이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7퍼센트에 달합니다. 1995년 암 5년 상대 생존율이 41.2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높아졌지요. 5년 상대생존율이란, 치료를 시작해 5년이 지난 시점에 살아있을 확률을 암이 없는 사람들의 생존율과 비교한 개념인데요. 암이 아니라도 다른 질병 혹은 교통사고로 언제든 아프고 또 죽을 수도 있어요. 암에 걸렸다고 죽는 건 아닙니다. 과거보다 진단 및 의학 기술이 발전했고 상대생존율도 높아지고 있으니, 너무 겁내지 마시고,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하고, 전문가와 상의하며 치료에 임하셨으면 좋겠어요.

몇 년째 항암과 수술을 거친 저자는 올바른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섯 가지를 일상에서 실천한답니다.
첫째, 채소 충분히 먹기
둘째, 설탕이나 백미 같은 당 섭취 줄이기
셋째, 밀가루 음식 최소화하기
넷째, 수면의 질 높이기
다섯째, 스트레스 그때그때 풀기
여섯째, 걷기 등 날마다 운동하기.

암 투병기를 신문에 연재하던 저자는 국회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발언 기회를 얻습니다. 그 자리에서 ‘현재 대학병원 암 치료 과정이 항암과 수술, 방사선, 재활 등에만 치중해 있고, 정신 및 심리 상태나 스트레스 정도에 대한 진단 및 치료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토로하며 암 환자의 마음을 돌볼 필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료를 보면, 암 환자 5명 중 4명은 암 진단 시 정신적, 심리적 충격이 가장 크다고 했고, 특히 타 연령 대비 40대에서 정신적, 심리적 충격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암경험자이자 40대인 제게 누군가가 지난 1년 6개월을 뒤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진단받고 명확한 치료 계획이 잡히기 전까지의 그 시기라고 답할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검사와 진단과 화학적 치료 등에만 치중할 뿐 환우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까지는 보살피지 않습니다. 그냥 각자도생해야 하는 것이죠.’ 

저자는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암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취재 다니던 경험을 살려 의료전문기자나 유방암 완치자들을 찾아 조언을 구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어요. 또 신문에 투병기를 연재하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자처럼 할 수 없는 분들도 많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느라 바쁘고, 때로는 암에 걸린 사실을 꽁꽁 숨기고, 그 힘든 항암 치료를 하며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있어요. 여성일수록, 고령일수록,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암 경험자의 삶의 질은 낮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깨달았어요. 공부하는 사람은 암이라는 시련을 만나도 삶의 교훈을 찾아 나서는구나. 진료실에 수첩을 들고 가 질문하고, 기록하고, 투병 기간 동안 필요한 점을 꼼꼼하게 취재했어요. 수술 전 간병 시스템을 어떻게 짤지, 항암 치료 전에 해야 할 일, 수술 준비물 리스트 등을 세심하게 기록한 덕분에 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매뉴얼이 한 권 나왔네요. 

심리기획자 이명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물리적 심리적으로 벼랑 같은 고통 속에 빠진 누군가여,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선아의 부축을 마음껏 받으시라. 그리하여 천천히, 정확하게, 일어서시라.’

아프지 않은 삶이 좋은 삶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질병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무지갯빛 인생은 이어진다는 것, 그래야 진짜 좋은 삶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저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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