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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에게해의 낙원, 크레타 섬

by 김민식pd 2022. 7. 18.

오전 1시간 동안 돌아본 아크로폴리스 이야기로 블로그 포스팅 2편을 쓰고 난 다음, 마음이 급해졌어요. 정작 볼 거리는 크레타랑 산토리니에도 많은데, 어떡하지? 일단 크레타로 떠납니다. 3박 4일간의 아테네 여행기는 다음에 다시 이어가고요. 오늘은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에서 야간 페리를 타고 크레타 섬으로 갑니다.

숙소에서 전철을 타고 피레우스 항에 가니 저 멀리 배가 보입니다. 저녁 9시 아테네를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크레타에 도착하는 유람선. 페리 탑승권은 55,000원. 유럽여행을 하며 야간 열차를 탄다면, 여기서는 야간 페리를 타며 시간도 아끼고 숙박비도 아낍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했어요. 장거리 이동의 경우, 미리 교통편을 한국에서 예약하고 가야 마음이 편합니다.  

배가 엄청 큽니다. 크루즈선 같아요. 

야간페리라고 침대칸이 있는 건 아니고요. 식당칸에서 밤을 지샙니다. 저는 일찍 승선해서 길게 놓인 소파 하나를 확보했어요. 덕분에 누워서 잘 수 있었지요. 다행히 그날 남는 자리가 많아 다들 띄엄띄엄 앉아서 갔어요. 비행기에서 받은 귀마개와 눈가리개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어요. 야간 열차로 이동하거나 공항에서 노숙할 때 꼭 필요한 물품이지요. 비행기에서 받으면 버리지 말고 꼭 챙겨두세요.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저 멀리 크레타 섬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배를 타고 크레타섬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옵니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여자, 과일, 이상……. 이 세상에 기쁨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따사로운 가을날 작은 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는 기쁨은 없다. 다른 어느 곳도 이렇게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놓지는 못한다. 꿈과 현실의 구획은 사라지고 아무리 낡은 배의 마스트에서도 가지가 뻗고 과물(果物)이 익는다. 이곳 그리스에서는 필요가 기적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정오 가까이 되어 비가 멎었다. 태양은 구름을 가르고 그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어 그 빛살로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씻고 닦고 어루만졌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열린책들 세계문학 0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이윤기 역 / 열린책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이들이 크레타섬을 찾아옵니다.

페리에서 내려 호텔부터 찾아갑니다. 아직 체크인 전이라 근처 식당에 자리잡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스에서 즐겨 먹은 음식은 기로스였어요. 저렴하고 제 입맛에도 잘 맞아요. 예전에 터키 여행하면서 케밥을 즐겨먹었거든요. 같은 요리인데 그리스에선 기로스, 터키에선 케밥. 피타 빵에 닭고기나 양고기 구운 것을 얇게 잘라 올리고 튀긴 감자와 토마토를 올려줍니다. 말아서 들고 먹을 수도 있고요. 식당에서는 접시에 내놓기도 해요. 재미난 건, 케찹을 안 줍니다. 여기서는 감자 튀김을 사우어 크림에 찍어먹습니다. ^^ 미국인들이 유럽 여행 오면 가장 당황하는 거죠, 아니 왜 케찹을 안 주지? 유럽 사람들은 자존심이 있어요. 여긴 우리 식대로 먹어.  

기로스 7.5유로 (10,000원)

점심 먹고 산책을 시작합니다.

크레타 섬은 유럽인들의 휴양지에요. 해변을 따라 예쁜 호텔들이 늘어서 있고요.

6월 초인데도 해변에는 해수욕객들이 많아요. 

대형 수영장과 워터 슬라이드를 갖춘 리조트형 호텔도 있어요. 

제가 찾아간 곳은 스타비치 워터파크입니다. 숙소 근처에서 쉴 만한 곳이 어디있을까 구글에서 검색하다... 

무료 입장이라는 소개를 보고 찾아왔어요. 간판 아래, FREE ENTERANCE라고 크게 적혀 있어요. 반갑지요. 공짜 놀이터... ^^

저는 이곳에서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시며 쉬었다 갑니다.  

그늘 좋은 비치 카페에서 콜라 한 잔 마시는데, 2.5유로, 우리돈 4,000원.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영장도 있고요. 


어른들이 선탠을 즐기는 공간도 따로 있어요. 썬베드 대여는 유료입니다. 입장은 무료지만, 먹고 마시고 쉴 때 돈을 좀 쓰라는 거지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해변에 있는 썬베드는 1회 대여료가 4유로입니다. 5000원.

유럽인들의 휴양도시라 그런가? 동양 사람은 나 혼자뿐이네요. 날이 더워 슬슬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체크인하기 전에 항상 물을 챙깁니다. 시원한 물을 냉장고에 쟁여둬야 해요. 호텔 앞 마트에서 물을 샀는데, 1.5리터 생수 한 병이 40센트. 우리돈 600원. 엄청 싸네요? 

크레타에서 지낼 숙소. 플로랄 호텔 Floral Hotel입니다. 체크인하니까 시원한 생수 1.5리터 병부터 주네요. '오느라 고생했지? 시원하게 목부터 축여.' 양팔에 생수병을 끼고 방으로 갑니다.

작은 수영장이 딸린 호텔이고요.  

방도 깨끗하고 예뻐요. 1박에 54,000원.

야간 페리로 이동하느라 제대로 못 쉬었으니 오늘은 낮잠을 길게 잡니다. 알람은 맞춰두지 않고 푹 잡니다. 어차피 한낮에는 더워서 다니지도 못해요.

한 숨 잔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요. 동생은 저보다 한 달 먼저 유럽 여행을 떠나 그리스를 돌고 이탈리아로 향했어요.

"야, 크레타 섬 완전 좋은데?"

"음식도 맛있고, 해변도 예쁘고 나도 좋았어." 
"어디가 맛있어?"
동생이 알려준 식당을 지도에서 검색하니 차로 2시간 반 거리라네요. 헐! 크레타 섬, 은근 크군요. 제주도의 4배라니까 그럴만 하네요.

"야, 거긴 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
"오빠, 그냥 지도에서 가까운 식당 검색해봐. 구글 평점 4.7이상이면 다 무난해."

이제 저녁 먹으러 산책을 나갑니다. 

바닷가 예쁜 식당도 많고요.

풀장을 갖춘 클럽도 있어요. 밤이 되면 파티 피플로 넘쳐나겠지요.

산책 끝에 구글에서 미리 눈여겨둔 식당을 찾아냅니다.

Petalida라는 식당에서 해물 피자를 주문해요. 10유로, 14,000원.

음식을 기다리며 전자책 리더기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크레타 섬이고요. 여기가 작가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곳이지요. 내일은 작가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아가야겠네요.  

해물 피자, 홍합이며 새우며 오징어가 푸짐하게 들어갔어요.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은 걸요. 

오션 뷰 디너를 앞두고 셀카 한 장 찰칵!

식당 주인도 그렇고, 호텔 종업원도 그렇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으며 반겨주고 농담을 겁니다. 제가요. 그리스 여행 떠나기 전에 소심한 걱정을 했어요. 혹시 코로나가 터진 후, 유럽에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있으면 어떡하지? 괜히 여행 갔다가 마음 상하는 거 아냐? 20일간 그리스 여행하며 느낀 점. 하등의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나. 내내 환영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나라의 주수입원입니다. 그런 나라가 코로나와 봉쇄로 타격을 입었어요. 식당이 1년 중 8개월 동안 문을 닫기도 했고요. 이제 다시 여행 산업이 기지개를 켜요. 미국과 유럽에서도 관광객이 몰려오지요. 그런데요.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이나 유럽 사람은 자국민과 구분이 안 가요. 나같은 동양인을 보면? '어, 저런 동양 사람도 이제 크레타에 오네? 아, 힘든 시간은 지나갔구나!' 싶어 반가운 겁니다. 어딜 가나 환대 받으며 다녔어요. 저만의 경험이 아니에요. 최근 유럽 여행 다녀온 한국인을 만나니 하나같이 하는 말, '한국 사람은 지금 유럽에 가면 칙사 대접을 받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BTS 이야기를 하고, <오징어 게임>을 얘기하고, 손흥민을 말합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걸 느낄 수 있어요.

저녁 먹고 에게해를 보며 해변을 산책합니다.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빈둥거렸어요. <트립 투 그리스>랑 <맘마미아> 등, 그리스 현지 로케이션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정작 그리스에서는 재생 불가능 국가라고 뜹니다. 한국에서는 되고 그리스에서 안 되는 영화가 있다면 그 반대도 있겠지요?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검색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넷플릭스에서 발견했어요! 앗싸! 오늘저녁은 퀸의 노래와 함께!

크레타에서 보낸 첫 날 하루 경비는요.

버스비 3,000원
점심 10,000원.
음료 4,000원.
피자 14,000원.
숙박 54,000원.

총 85,000원.

낙원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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