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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by 김민식pd 2022. 7. 15.

(오늘은 꼬꼬독 원고를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삶, 좋은 책, 꼬꼬독의 김민식입니다.
평생 피디로 일하면서 좋은 드라마를 만들려고 고민했는데요. 좋은 프로그램의 2가지 구성 요소는 재미와 의미입니다. 둘 중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재미입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드라마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안 보고요. 아무도 안 보는 방송은 의미도 없거든요. 즉 재미가 있어야 의미도 생겨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당장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이 재미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어요. 저는 매 순간 재밌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재미있는 삶이 곧 의미 있는 삶이니까요. 오늘은 노후의 삶을 더 재미나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김재환 지음 / 북하우스)

이 책을 쓴 김재환 저자는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메시지가 강한 영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을 다수 연출하고 ‘한국의 마이클 무어’라고 불리는데요. 한글을 배우는 70대 80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칠곡 가시나들>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 영화가 화제가 되고 <가시나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나왔지요.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라는 생각으로 살던 김재환 감독은 다큐 찍느라 할머니들과 몇 년을 보낸 후, 생각을 바꿨어요. ‘재미있는 게 의미 있는 거다.’

경북 칠곡군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를 치십니다. 맥심 모카골드 커피를 사이좋게 나눠 드시고 하루를 시작하는데요. 한글을 배우고 시를 짓습니다.

고맙다 화투야
오백 원만 있으마 하루 종일 즐겁다
니가 영감보다 낫다

- 박금분 <화투>중에서

이 시를 쓴 박금분 할머니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약간 의아했어요. 1930년대 일제 시대에 나고 자란 딸들은 당시 '가시나가 글 배아서 머할라꼬'하며 공부를 안 시켜요. 심지어 전쟁통에 난리를 겪느라 학교도 못 가지요.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 나이 60이 넘어 문해학교를 다니는데요. 할아버지 중에도 그런 분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칠곡 머스마는 없고 가시나들 뿐일까? 할아버지들은 체면 치레 하느라, 문해학교에 안 온답니다. 

“문해학교에 할머니만 있어요. 할아버지들은 절대 안 나옵니다.”
“영감들은 그 놈의 체면 때문에 재미없게 살다 죽기로 작정을 했어요.”

김재환 감독이 촬영을 하면서 관찰한 결과, 할머니들은 공부하러 마을회관에 모이고, 할아버지는 막걸리 가게에 모이더래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공간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바로 웃음입니다. 마치 할머니들은 살짝 스쳐도 까르르 하고, 할아버지들은 톡 건드리면 버럭 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할머니들의 마을회관에는 별일 없어도 웃음이 넘치고, 할아버지들의 막걸리 가게에는 온갖 '썰전'으로 화가 넘쳐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게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에요. 웃다 보면 재미가 생깁니다. 아무리 웃기는 시트콤도 웃음 더빙을 빼고 보면 재미가 없어요. 누가 옆에서 웃어줘야 나도 웃게 되거든요. 

제가요, 20대에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과팅이나 단체 소개팅을 나가면 웃기려고 온갖 설레발을 쳤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진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잘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잘 웃는 사람이더라고요. 이제 저는 남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잘 웃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똑같은 일에 대한 반응도 화를 내느냐, 웃느냐로 사뭇 달라집니다. 길을 가는데, 급하게 가던 사람이 툭 치고 가잖아요. “아, 젊은 놈이 눈은 어디 뒀어?”하고 버럭 화를 내는 대신, “아, 가만히 있어도 젊은 사람이 막 달라붙네. 이놈의 인기.”하고 웃어주세요. 습관은 체형에서 드러나고, 행복은 얼굴에서 드러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고 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이 이제는 시를 짓습니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할게요.

‘어휴 저 화상 

평생 돈을 벌지 않는 저 화상
가장인데 노력하지 않는 저 화상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저 화상
아이들과 추억이 없는 저 화상
어휴 저 화상

보기만 하면 자꾸 미워지는 저 화상
나와 결혼한 지 어언 38년 저 화상
젊어선 참이슬 마셔대던 저 화상
이젠 건강 생각해서 소주를 막걸리로 바꾼 저 화상
그래도 어쩌겠나 저 화상
나 없으면 불쌍한 저 화상
남은 삶도 으르렁 같이 살아야지 저 화상’

노정임 할머니의 시를 들려드리면 할머니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그 새댁은 화상이라도 있어서 참 좋겠네’하는 소수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죽은 영감 얼굴 꿈에 볼까 무섭다, 그 새댁이 진짜 제대로 된 화상이랑 안 살아봐서 철없는 소리를 한다며 까르르 하신답니다. 

할머니들이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의외의 장애물이 있는데요. 그건 바로 자식들이랍니다. 말리는 아들딸이 그렇게 많대요. 

"에이 엄마, 힘들게 그걸 왜 해요. 스트레스만 받지."
"아빠 거기 가지 마시라니까. 추운데 넘어지면 큰일 나요."
"참 엄마도 주책이다. 그분들이랑 같이 다니지 마세요."

서울에서 젊은 사람들이 카메라 들고 내려와 촬영한다니까, 이상한 약장수들이 시골 할머니한테 사기 치려고 그런다는 자녀도 있어요. 김재환 감독은 영화 개봉 후 이런 질문을 받았대요.

“오랫동안 할머니들을 지켜보셨는데 우리 시대의 효는 구체적으로 뭐라 생각하세요?”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겠지요. 할머니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자녀들의 전화와 에너지를 주는 리액션이더군요.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그런데 나이 든 부모님들의 설렘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삶이 힘든 건 언제인지 아세요? 변화가 없을 때에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으면 일상은 재미가 없고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날을 맞는 방법은 공부에요. 매일 공부를 하면, 오늘 나는 어제 몰랐던 것을 배우고요. 내일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설렘의 시작은 배움입니다. 두려움을 넘어 배움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나를 기다리는 건 어제와 똑같은 지겨운 일상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매일 책을 읽습니다. 독서만큼 쉽고 재미난 공부도 없거든요. 김재환 감독은 즐거운 노후를 위해 ‘일용할 설렘을 찾아다니자’라고 권합니다.

할머니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 들어보니 튼튼한 치아랑 무릎이 행복의 기본이랍니다. 치아가 좋아야 잘 드시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요, 무릎이 좋아야 이동의 자유가 생겨 친구들 만나 재밌게 잘 놀 수 있다는 거죠. ‘이가 자식보다 낫다’거나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나 봐요. 철 따라 가고 싶은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할머니들이 알려주시는 최고의 노후 대비는, 펀드, 연금, 실손 보험이 아니라 양치질 열심히 하고 많이 걷는 습관입니다. 

칠곡 할머니들은 십대에 시집 와서 한 동네에서 육칠십 년을 같이 보내고, 남편을 먼저 앞세우고, 노후에 이웃들과 벗삼아 삽니다. 영화를 보면 곽두조 할머니의 어린 시절 꿈이 가수였어요. 그래서 8학년 7반, 여든 일곱의 나이에 약목면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는데요. 긴장한 탓인지 예선 탈락하고 맙니다. 친구들이 모여서 심사위원들 욕을 ‘씨게’ 합니다. 노인을 공경할 줄 몰라. 지들은 안 늙을 줄 아나. 
다음 해에 친구들은 곽두조 할머니를 다시 꼬십니다. 작년에 떨어진 건 선곡 실패 탓이다. 이번엔 빠른 트로트로 가자. 8학년 8반, 88세, 여든 여덟의 곽두조 할머니가 노래자랑 대회에 재도전합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부르는데, 친구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고속버스 춤을 춥니다. 양 무릎을 수술해 걷기조차 불편했던 할머니가 특이한 개다리춤까지 춰요. 가수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라는 노래가 있어요.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야’
 
나이 들수록 영감보다 친구입니다. 영감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 같이 춤춰주지 않거든요. 무릎을 수술해 걷기도 힘들지만, 내가 노래자랑 대회 나가면 같이 무대에 올라 개다리 춤을 춰줄 그런 친구, 있으신가요? 그런 친구를 만들어가는 게 진짜 노후 대비입니다.

제게도 보약 같은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쓴 김재환 감독이지요. 1996년 MBC 피디로 입사할 때 만난 입사 동기니까 벌써 25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인데요. 다음 시간에는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의 저자, 김재환 감독을 모시고, 재미나게 노후를 사는 비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유튜브에서 <굿라이프>채널을 구독하시면, <꼬꼬독> 영상을 보실 수 있고요. 이번주 수요일에 올라온 김재환 저자와의 대화도 보실 수 있습니다. 25년된 친구와 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꼬꼬독 꼬꼬독,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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