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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워리어를 미디어 혁명가로!

by 김민식pd 2012. 1. 20.

드라마 피디로서 가장 두려운 인터넷 공간은 시청자 게시판이다. 정말 무섭다. "김민식은 잘하는 것도 없고 시트콤도 드라마도 망하기만 하는데 왜 자꾸 기회를 주는거죠? MBC에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밤샘 촬영하고 들어와서 시청자 반응 보려고 게시판 들어갔다가 이런 글 보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고, 맥이 쑥 빠진다.

 

나야 연출을 못하는거 인정하니까 괜찮다. '못할수록 잘 할 때까지 자꾸 해야지, !'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린다. 걱정은 신인 연기자들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지경.' '어디서 듣보잡 신인이 나타나 연기한다고 난리냐.' '발연기의 대가, 여기도 있네' 이런 글을 보고도 자신있는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신인은 많지 않다. 내가 아는 지금의 톱 배우들은 다 이런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배우의 꿈을 접은 신인도 많을 것이다. 우리의 인터넷 문화, 좀 잔인한거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투잡을 뛴다. 하나는 본인 직업, 또 하나는 드라마 평론가. 첫 방송이 나가면 누구나 드라마 평론가가 된다. 누가 더 얼마나 신랄하게 비평하는가로 서로 경쟁도 한다. 얼마나 창의적으로 비평을 올리는지, 새로운 한국어 표현이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서 만들어질 정도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 표현은 예전에는 없던 말이다. 오로지 신인 연기자의 미숙한 연기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발연기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발로 한번 연기해보라. 정말 어렵다.

 

나는 게시판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참 화가 많구나.' 정치인의 비리나 재벌의 불의는 참아도 여배우의 성형이나 남자 탈렌트의 술버릇은 못 참는다.

 

인터넷 접속자수나 이용 시간, 정보 통신망을 놓고 보면 우리는 세계적인 정보 강국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좋은 인프라를 분노의 에너지를 표출시키는데 사용한다. 인터넷 뉴스만 해도 따뜻한 뉴스보다 분노를 부르는 뉴스가 더 많은 클릭에 더 뜨거운 반응을 부른다. 이런 에너지를 모아 창작열을 불사른다면 우리는 정말 콘텐츠 강국이 될 것인데!

 

게시판의 키보드 워리어들의 창의성은 놀랍다. 나는 그들 손 안의 키보드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 도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는 미디어를 만드는 것,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수만개 네이버 뉴스 댓글 속에 사라져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ㅅㅂ 대신 평생 가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 말이다.

 

네티즌의 분노를 창작의 열정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백만 키보드 워리어로 구성된 세계 최강의 창작 집단을 갖게 될 것이다.


(상기 이미지는 구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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