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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자연의 항우울제, 야생의 위로

by 김민식pd 2020. 7. 3.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펼쳤더니 무언가 팔랑거리며 떨어졌어요. 예쁘게 물든 단풍잎인데요. 몇 년 전에 여동생이 준 것이에요.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떨어진 꽃잎을 주워와 말리고, 낙엽을 책갈피에 꽂아 보관하고는 했어요. 둘째 딸이랑 제부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이가 미역 줄기를 건져오고, 조개 껍질을 줍더군요. 사람들은 왜 낙엽과 조개껍질을 모으는 걸 좋아할까요?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 신소희 / 심심)

25년간 우울증 환자로 고생한 저자가 숲을 산책하며 마음을 치유한 과정을 책에 담았는데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 소위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자였던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열매가 가득 달린 산사나무나 산딸기 관목은 조상들의 칼로리 섭취를 늘려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식용이 가능한 식물에 긍정적 반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할 때마다 뇌 내의 보상작용이 촉진되고 그러한 채집이 습관화된 것이다. 내가 오늘날 낙엽을 주워 모으며 느끼는 기분은 그러한 본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 뿌듯한 감정의 진화적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행동이 내 뇌의 화학적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나는 화사한 낙엽 카펫 옆을 서성이며 마법 같은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햇살이 따스하다. 눈부신 빛깔들 속에서 보낸 몇 분이 기분을 돋워주어 정말로 입안에 상큼한 맛이 느껴질 것만 같다.'

(36쪽)

요즘 코로나 탓에 제가 즐기던 취미 활동 (탁구 동호회 / 도서관 나들이 / 해외 여행)이 중단되었어요. 예전에는 기분이 울적할 때 산악회를 찾아가 버스를 타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요. 이제는 혼자 조용히 동네 뒷산을 찾아 걷습니다.

'숲속이나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삶이 대체로 괜찮게 느껴질 때도 할 수 있는 일이며, 일상적 우울감과 언젠가 닥쳐올 까칠하고 고된 나날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

(25쪽)

선릉역 옆에 있는 최인아 책방에 갔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호선 선릉역, 87년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그렇게 많이 들은 이름인데, 정작 선릉에는 한번도 안 가봤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꽤 넓은 녹지가 강남 한복판에 조성되어 있더군요. 왕릉이 자리잡은 덕에 개발 붐을 피한 거죠. 산책삼아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강남 한복판에 숲이 있고, 계곡이 있고, 산이 있더라고요.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아, 이런 것이 야생의 위로로구나...'   

이 책의 추천사에서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생의 위로>는 자연에서 위안을 느끼는 인간 본연의 생태적 습성에 기초를 둔다. 책 자체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최고의 매뉴얼이다. 더 큰 미덕은 책이 자연을 만나고자 하는 동기를 되살아나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하루 10분, 일주일에 한 시간, 분기에 하루 정도는 온전히 자연과 만나 '야생의 위로'를 즐기시길 바란다.'

(7쪽)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더 위축됩니다. 이럴 때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우선 책을 펼쳐보고요. 책에서 찾은 답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벼운 실천을 하지요.

이번 주말에도 가까운 숲을 찾아 야생의 위로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또 짠돌이 여행일지가 되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즐거운 주말 맞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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