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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버티는 법

by 김민식pd 2019. 11. 22.
직장인 작가의 책을 즐겨 읽습니다. 퇴직 후, 전업작가로 살고 싶으니, 지금 당장 겸업 작가로 살고 싶어요. 곽재식 작가는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꾸준하고 부지런히 작업하며 무엇보다 원고 마감을 성실하게 지키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가 쓴 책이 있어요.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곽재식 / 북스피어)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스템 밖에서 암중모색을 거듭하며 분투하다가 마침내 책을 내고 작가라 불리게 된 이들'이 작가로 사는 법에 대해 낸 시리즈, '작가 특보'의 두번째 책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해 인터넷에 웹소설을 올리던 어느날, MBC 손형석 피디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2006년, 인터넷에서 드라마 소재를 검색하던 손형석 감독은 곽재식 작가의 소설을 보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다고 해요. 출판사나 신문사 공모전에 투고한 원고가 당선된 적도 한 번도 없는데, <MBC 베스트극장>에 방송이 됩니다. 2006년이면 손형석 피디가 조연출 시절을 막 벗어난 신인 시절인데, 손감독의 열정도 정말 대단하네요.

'소설을 쓰는 작가도 일종의 자영업자라고 한다면 첫 번째 고객이 MBC였으니 출발은 괜찮았던 셈이다. 동네에서 미용실을 개업했는데 첫 손님으로 전지현 배우가 들어온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 만큼 이제 진짜 작가가 되어 얼마 안 있어 책도 내고 이름도 알려질 거라는 달콤한 상상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나는 변함없이 그저 인터넷 한 켠에 별로 보는 사람 없는 글을 올리기만 하는 작가로 몇 년이고 계속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22쪽)
  
버티는 건 작가의 숙명인가 봐요. 저도 그랬거든요. 2012년에 회사에서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을 때, 첫 책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썼어요. 곧 출판계에서 다음 책을 내자는 제안이 쇄도할 줄 알았는데..... 네, 출판사가 문을 닫고 책은 절판되고,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블로그에 혼자 글을 올리며 버팁니다. 5년간 감감무소식이었어요. 

버티고 버티며 글을 올렸습니다. 언젠가 내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겠지, 하고요. 위즈덤하우스의 박경순 편집장님이 연락을 주셨을 때, 책 3권을 한꺼번에 계약하자고 졸랐어요. 5년 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주제별로 묶어서 내도 될 것 같았거든요. 출판 제의에 너무 목이 말랐던 거죠. 

쓸 거리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요? 저는 책을 읽거나, 길을 걷습니다. 곽재식 작가도 도저히 쓸 것이 없다면 훌쩍 방랑여행을 떠난답니다. 방랑벽은 작가의 고질병인가 봐요. 역에 가서 열차 시간표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고른답니다. 

'방랑여행은 목적이나 목표가 없기 때문에 기대감도 없다. 따라서 매 순간 실망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정해진 일정이 없기 때문에 바쁘지도 않다. 항상 여유롭고 느긋하게 쉬거나 기다리면서 다닐 수 있다.'

(27쪽)

저도 그래요. 지방 강연이 잡히면, 일찍 가서 근처 여행을 즐깁니다.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게 아니라, 불러주는 곳을 갑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러주면 가서 하고, 안 불러주면 혼자 합니다. 어차피 뜻대로 안되는게 인생의 디폴트더군요. 그래서 목표나 계획없이 대충대충 삽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었어요. 그냥 그 순간 즐거운 일을 했습니다. 블로그가 그렇고요. 무슨 일을 하든 일단 재미가 우선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해야 할까요? 곽재식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항상 메모하자,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대충 다 써서 마무리지어 놓고 나중에 고치자, 마감 시간을 정하고 그때까지는 맞춰서 다 쓰려고 노력하자, 글을 쓰는 도중에 백업을 잘하자, 등등.'
 
(83쪽)

책을 쓰기 위한 핵심 요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초고를 쓰는 도중 틈틈이 메일로 백업을 해둡니다. 그것도 못미더워 때로는 종이로 출력해두기도 합니다. 종이로 인쇄한 원고를 보면 고쳐야 할 대목이 더 쉽게 눈에 띄기도 하고요. 그 자체로 백업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하기에, 초고를 쓸 때 부담이 적습니다. 일단 마음 내키는 대로 쓰고, 부족한 건 수정할 때 보완하자고 생각하거든요.  

'일 년 내내 따뜻한 남태평양에 가서 항상 여유롭게 설렁설렁 해변에서 소일하는 삶이 꿈이라고 해 보자. 이를 실현하는 데는 해결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무슨 돈으로 뭘 해 먹으며 남태평양의 섬에서 버틴단 말인가? 대충 살아질 거라 생각하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세금 빼서 남태평양으로 갔는데 막상 가 보니 도저히 살기 어려워서 한 달 만에 돌아온다면 그때는 어디서 지내며 무슨 직장을 구해 먹고사나? 실패의 위험은 두렵고 지불해야 할 대가도 크다. 그에 비하면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글을 위한 도전은 실패하더라도 타격이 적다. 소모된 것은 몇십 킬로바이트의 컴퓨터 용량 정도다. 글쓰기 연습이라 여긴다면 피해는 더 줄어든다. 시간은 좀 소요되겠지만 역량은 늘었을 테니까 말이다.'

(88쪽)

제 꿈은 남태평양에서 일 년 내내 빈둥대는 게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남태평양 여행을 가는 겁니다. 첫 책이 잘 안 팔려서 5년간 출판 제의가 없었지만, 그래도 책을 낸 저자라고 칼럼 요청은 꾸준히 있었어요. 한 달에 한 두 편씩 글을 썼고, 200자 원고지 10매에 10만원 정도 받았어요. 한 달에 두 곳만 연재를 하면 1년이면 240만원, 그 돈으로 1년에 한번 여행을 다닐 수 있었지요. 

직장인으로서 작가 겸업을 하는 것,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은 공부가 되고요. 운이 좋으면 여행 경비 정도 마련할 수 있는 용돈벌이도 됩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건 즐겁고요. 지치고 힘들더라도, 버텨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가 꽃이라 불러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꽃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꽃입니다. 
매일 쓴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고요.

그런 점에서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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