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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위대한 꿈을 만드는 법

by 김민식pd 2011. 11. 28.
주말 동안 경주에 다녀왔다. 후배 결혼식이 경주에서 있기에, 기왕 내려간 김에 어린 시절 고향인 경주를 1박2일 동안 둘러보고 왔다. 경주에 가면 꼭 걷는 길이 있다. 내가 다니던 월성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대릉원으로 간다. 대릉원에서 천마총을 보고, 길 건너 첨성대를 지나, 반월성을 통과해서, 안압지를 보고 마지막에 경주 박물관에서 마무리. 약 3~4시간 정도 걸리는 도보 여행 맞춤코스다. 

 
첨성대를 보자, 봄에 들은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강의가 생각났다. 건축물을 위대하게 만드는 재료는 무엇인가? 나무? 돌? 서까래? 많은 답이 나왔지만 선생의 답은 '시간'이었다. 어떤 건축물이든 오랜 시간을 견딘 후에야 비로소 위대해진다. 아무리 호화찬란하게 지은 건물이라도 몇백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면 위대한 건축이라 할 수 없다. 작고 초라한 첨성대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어 위대한 건축이 되었다. 단 한번도 쓰러진 적 없이 1500년을 버텨냈기 때문이다. 

사람의 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의 꿈을 위대하게 만드는 재료 역시 시간이다. 아무리 멋진 꿈이라도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없다면 위대한 꿈이라 할 수 없다. 한가지 일에 10년의 세월을 바치지 않고서는 그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의 말이 아니라도, 하나의 꿈이 단단하게 영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말은 쉽게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꿈을 쫓다가 우리는 쉽게 지친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치고, 다른 이들이 앞서 가는게 보여서 지친다. 이 길이 맞나 헷갈리기도 하고, 이 길이 내 길인가 헷갈리기도 한다.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에 다리는 후달거리고, 주저앉아 쉬고 싶고, 다른 길을 찾고 싶어진다. 역시 꿈 하나로 매진하기 쉽지 않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차에 경주박물관에 도착했다. 지홍 박봉수 화백의 특별전이 있어, '박물관에서 현대화 전시회도 하나?' 하고 들어섰다. 그때 벽 한쪽 나를 맞은 글귀.

 
"지홍은 친구가 오거나 가거나 그리 말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린다. 걱정이 있거나 없거나 배가 고프거나 안고프거나 그저 그림만 그린다..."

화가의 친구가 남긴 글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아, 꿈을 쫓는 이의 자세는 이렇구나... 그냥 하는구나...'
 
이중섭 선생과 동갑으로 2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나 박봉수 선생은 다른 화백만큼 큰 이름을 남기진 못했다. 전시회 설명을 해준 문화해설사는 '선생이 너무 다작하여, 오히려 대표작이 없어서 그리 되었다.'고 말했다. 순간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났다. 2000점이 넘게 그렸으나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던 불운한 화가... 아무도 사지 않는 그림이었지만 그는 그렸다. 시장 반응을 살피고, 영리한 계산을 하는 이었다면 애저녁에 포기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렸다. (고흐의 신념과 다작에 대한 예전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
2011/08/18 - [공짜 PD 스쿨] - 노동화가 빈센트 반 고흐

꿈을 벼리는 이의 자세는 무릇 이런 것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
위대한 꿈은 오랜 시간 공들여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끝으로 박봉수 화백의 그림 몇 점, 올린다. 

                                                               설불
    

                                                            불국사


마지막 그림... 누구의 모습인가?

참고로 선생은 평생 절에서 그림을 그렸고, 반가사유상을 수십년 넘게 그렸다. 그런 선생이 어느날 명상을 하다 영감이 떠올라 인물화를 한 장 그렸다. 선생은 명상하는 사람이라고 그렸는데, 친구가 보더니, '어, 그리스도네?' 했단다. 그래서 이 그림은 '명상 그리스도'로 이름지어졌고, 나중에 바티칸에서도 인정받는 그림이 된다. 평생 불교에 심취해 살았던 화백은 성화를 그린 화백이 되었고, 말년에는 독실한 천주교도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 

도란 이런 것이다. 하나의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그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  

작고 초라한 꿈이란 없다. 위대한 꿈을 만드는 법?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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