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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부담감

by 김민식pd 2019. 4. 23.
오랜만에 고민 상담 시간입니다. 

Q: 안녕하세요~
최근에 저는 공무원시험을 응시했습니다. 나이는 올해30, 남자이구요. 올해도 결과가 좋지못하네요ㅠㅠ 요새는 의욕을 잃고, 이것마저도 해내지 못하는 제가 원망스럽고 최근에는 전화도 일시중지할 정도로 사람 만나는 것조차 꺼려집니다. 갑자기 나이도 29에서 30으로 앞자리가 부지불식간에 바뀌었고 뭔가 성과를 내야하고 앞으로 나가야하지만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 제가 너무 무능하게 느껴지는데 혹시 pd님께서 제게 해주실 인생선배로서의 조언, 짧게라도 구하고 싶습니다.

A:

질문이 올라온지 한참 되었습니다. 계속 고민했어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살아온 시절보다 요즘이 훨씬 더 어려워서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얼마 전, 태릉백세길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시에서 펴낸, <서울, 테마 산책길>이라는 책을 샀거든요. '아, 이런 곳도 있구나! 한번 걸어보고 싶다', 해서 태릉백세길로 갔습니다. 2시간 정도 불암산의 능선을 따라 산책한 후, 집으로 돌아왔어요. 삼육대 앞에서 버스를 탔는데요. 몇 정거장 지나 안내가 나왔어요. 

"이번 정거장은 경춘선 숲길 화랑대역 공원입니다. 다음은 화랑대 사거리입니다."

저는 6호선 화랑대역에서 전철로 갈아탑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할까요?


1. 경춘선 숲길 화랑대역 공원

2. 화랑대 사거리


여러분의 선택은?

여기가 태릉 백세길입니다. 

1번, 2번 중 답을 정하셨나요?


네, 정답은... 3번입니다. 

"뭐야?" 싶지요?

네, 그 다음 정류장이 '화랑대역 1번 출구'더군요. 


버스 안내 방송은 이번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까지 알려주지, 그 다음에 화랑대역 1번 출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죠.


잘못 내렸어요. 화랑대역 공원에 내려서 아무리 둘러봐도 전철역은 안 보여요. 이미 두 시간을 걸어서 다리가 아픈데, 세 정거장을 걸어 전철역까지 가려니 갑자기 바보같은 짓을 한 나자신에게 짜증이 솟습니다.

  

화가 날 때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봅니다.

처음 정류장에 내려서 전철역을 찾아 주위를 스캔했다면, 이제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둘러 봅니다.

그제야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춘선 숲길 화랑대역 공원입니다. 폐선 부지에 걷기 좋은 공원을 조성했어요.

기차도 있고 철길도 있어요.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은근 즐길 게 많은 곳입니다.


'내가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 순간, 주위를 둘러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습니다. 자기합리화의 방편을. 내가 여기에 내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내 눈앞에 보기가 한정된 탓입니다.
87년 대학 1지망에서 떨어졌을 때, 적성에 맞지 않는 과에 갔어요. 그때 힘들어하는 제게, 아버지는 2개의 보기를 제시하셨어요.

1. 재수를 한다. 성적을 올려 의대에 진학한다.
2. 재수를 한다. 성적이 안 오른다. 그럼 군대를 간다. 갔다 와서 마음 잡고 공부해서 다시 의대를 간다.

2개의 보기 중에 제가 원하는 답은 없었어요. '그냥 적성에 안 맞는 공대를 계속 다닌다. 전공을 포기하는 대신, 영어를 공부한다.'라는 3번 보기를 선택했지요. 

위기가 닥쳐오면 우리의 시야는 좁아집니다. 마음이 급하거든요. 그럴 땐, 조금 물러나 거리를 두고 다시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서나 걷기, 명상, 운동, 취미 활동을 통해 조금 마음을 편하게 한 후, 다시 보면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던 보기가 보일지도 몰라요. 

질문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어요. 나이 먹는 부담감을 어떻게 할까? 
나이 30에 방송사 입사했을 때, 동기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어요. (96년에는 그랬어요.) 나이 40에 드라마국으로 옮겼을 때, 조연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이 50에 유배지에서 일하며, 피디로서의 경력은 끝났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사는 건 매 순간이 그냥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떡하나요. 내 인생인데. 꾸역꾸역 살아야지요. 

나이는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그런 일을 찾을 때, 제게는 조건이 있습니다. 오로지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독서든, 영어 공부든, 글쓰기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님에게는 그런 일이 무엇일까요? 공무원 시험의 결과는 내 뜻대로 할 수 없어요. 취미든 운동이든, 공무원 시험준비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정하고, 그 일을 꾸준히 함으로써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으로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명쾌한 답을 드리지못해 죄송합니다. 삶에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답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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