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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더이상 늙는게 두렵지 않다

by 김민식pd 2019. 2. 14.

저는 어려서 좀 철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닥...^^) 20대에는 록카페에 가서 춤을 추고 놀았어요. 춤추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일하기 싫으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오고, 배낭여행 훌쩍 떠나고 하던 시절, 제 눈에 비친 어른의 삶은 재미가 없었어요. 자식들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상사나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들으며 버티는 삶. 나이 서른 이후의 삶은 상상이 가지 않았어요. 늙는 게 너무 싫었지요. 참 철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철없는 어른으로 사는 것도 재미있어요. 30대 시절 비디오 게임에 빠져 살았어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엑스 박스, 위 등 온갖 게임기를 제조사별로 사고 모았고요. 중고 장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초등학생을 만나 중고 게임 타이틀을 사기도 했지요. 눈떠보니 50인데요. 철은 아직도 안 들었어요.  

저처럼 딴따라인 친구가 또 하나 있어요. MBC 입사 동기이자 친구인 김재환 감독입니다. 이분도 좀 철이 없어요. 방송사를 나가서 외주 제작사를 차렸는데요. 방송사의 불합리한 외주 시스템에 대해 통렬한 풍자를 퍼붓는 블랙코미디, <트루맛쇼>를 만듭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MB의 추억>이라는 심히 불손한 영화를 만들고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대형 교회의 치부를 들추는 <쿼바디스>를 연출하기도 해요. 겁 없이 세상과 맞짱 뜨는 그를 보면, ‘아, 천상 딴따라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사는구나’ 싶어요. 그런 김재환 감독이 새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휴먼 코미디 장르입니다. <칠곡 가시나들> 

칠곡에 사는 일곱 할머니들이 주인공인데요. 이분들 예사롭지 않아요. 나이 팔십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요. 그러다 한글로 시를 쓰는 재미에 폭 빠지지요. 


칠곡군 복성 2리의 늘 배움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글자를 배웁니다. 평균 나이 86세인 할머니들이 왜 한글을 모를까요? 일제 식민지 시대,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가르쳤거든요. 광복 후에는 전쟁이 터졌고 난리통에 교육 기회를 잃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보내고 장성한 아이들을 내보낸 후, 이제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한글을 배웁니다.  

영화를 보면, 또 한명의 주인공이 있어요. 한글 선생님인 주석희 선생님. 할머니들에게 스승이자 친구이자 딸처럼 대하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설파합니다. 주석희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가 있어요. ‘아침 저녁 맛있게 먹기’, ‘밤에 잘 자고 잘 일어나기’ 노인학교 학생들이 소풍 가서 쏘요 (소주 + 요구르트) 칵테일을 만들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제는 늙는 게 두렵지 않다.’

어려서늙는 게 두려웠어요.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영화 속 할머니들에게서 배웠어요. 무언가를 새로 배울 수 있다면, 친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면, 기나긴 노후는 축복이라는 것을. 유쾌한 할머니들을 보니, 나이 드는 것은 오히려 아이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할머니들처럼 늙고 싶어요. 시인이 되어 인생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요. 

언젠가 나이 70이 되면, 블로그에 자작시를 올리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네요. 


동심과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강추합니다!

2월 27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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