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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밥이 맛 없다고 집을 나가지는 않는다

by 김민식pd 2019. 2. 1.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했을 때, 강연이 끝나고 한 고등학생이 제게 왔어요. "피디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이나 블로그를 통해 다 하거든요. 제게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24시간을 가지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육아도 하고, 취미 활동(예전엔 플룻 연주, 요즘은 기타치며 노래하기)도 해요. 내 인생의 한 시간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쓴다면, 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쓰고,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닙니다. 유한한 자원인 시간, 좀더 많은 분들을 위해 쓰려고요. 

잘 모르는 어린 학생이 만나자고 하면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좀더 한가할 때 보자고 합니다. 바쁘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른 강연장에서 그 학생을 또 만났어요. "피디님, 요즘은 여유가 있으세요?" 그때는 제가 한창 싸우고 있던 터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또 다음에 보자고 했지요. 그런데 옆에 있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구범준 피디님이 그러시더군요. '김호이는 어린 학생인데 인터뷰어로서 열의가 참 대단하다'고. 그 말씀에 어린 친구가 다시 보였어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지요. 드라마 연출 때문에 바빠져서 미뤘는데요. 드라마가 끝나고 김호이 군과 약속을 잡았어요. 어린 학생이라고 무조건 내치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거절할 때마다, 보채지 않고 바로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해주세요.'라고 선선히 물러나는 태도도 좋았고요.

고등학생 기자 김호이 군과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 깜짝 놀랐어요. 질문의 내공이 만만치 않더군요. 글로 정리한 내용을 보면서 또 놀랐어요. 세상에는 어린 고수도 많구나!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MBC에서 핍박을 당하던 시절, 회사를 나가지 않은 이유가 있냐는 돌직구까지!


Q. 복귀를 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에 계속 계셨던 이유가 있나요? 

A. 저는 기본적으로 MBC라는 회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리고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때 MBC와 제가 안 맞아서 힘든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이것은 지나가는 현상이고 그 당시에 MBC 사장을 포함해서 경영진이라든지 이런 분들과 저와 서로 코드가 안 맞았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아침에 밥을 먹는데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메뉴가 나왔다고 집을 나가지는 않잖아요.

“언젠가는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겠지”하면서 버티는 것처럼 MBC에서도 당시 사장이나 경영진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젠간 나를 이해해주는 좋은 세상이 올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기본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밥을 이상하게 해줘도 믿고 내가 버티는 이유는 그전에 10년 이상 동안 엄마가 나에게 잘해줬기 때문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도 MBC에 입사하고 10년 이상을 항상 행복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힘든 시간이 몇 년 있어도 그게 계속 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중략)

Q. 많은 친구들이 PD가 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현직 PD로써 PD가 되기 위해 꼭 대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오히려 PD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대학을 가야 되느냐” 보다 “반드시 PD가 되어야 하느냐”라고 묻고 싶어요. 옛날에 사람들이 PD가 되었던 이유는 내가 뭔가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방송사 PD가 되는 거 말고는 길이 없었거든요. 제가 PD가 되었던 96년도만 해도 그래요. 

근데 지금은 굳이 PD가 되지 않아도 혼자서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가 돼서 유튜브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뭔가를 전해줄 수 있잖아요. PD가 반드시 되어야 하나라는 질문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유튜버나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대도서관처럼 고졸 학력으로도 충분히 유튜브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PD만이 답이 아니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다만 PD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 공중파 방송사에서 정규직으로 뽑을 때는 대학 학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을 단순히 학벌이나 이런 걸 위해서 가는 게 아니라 4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고 자기의 재미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 밥이 맛 없다고 집을 나가지는 않는다.

어린 학생과의 인터뷰라, 방송의 공영성이니, 노동조합 집행부의 책임감이니, 언론사의 조직 윤리니 어려운 이야기를 피하려고 든 예시인데요. 글로 정리된 걸 보니, 참 쉽게 잘 설명했다는 생각이.... (네, 워낙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라, 이런 자뻑으로 버팁니다. ㅋㅋㅋ) 

고교생인데, 김호이 기자는 글을 참 잘 쓰네요. <김호이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오랜 시간 인터뷰를 기록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역시 꾸준함을 못 당한다니까요.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ajunews.com/view/2019012418304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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