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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중동은 왜 싸우는가?

by 김민식pd 2018. 12. 3.

예전에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갔어요. 안달루시아 지방에 갔을 때, 이슬람 건축의 진주라 불리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어요. 이토록 놀라운 문화를 자랑하던 이슬람 세계가 어쩌다 현대에 와서는 전쟁과 내전에 시달리게 된 걸까? 중동은 어쩌다 세계의 분쟁지역이 된 걸까? 
제가 품은 의문을 더 오래전부터 품어온 이가 있어요.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연출한 박정욱 피디입니다. 뉴스에서 중동 분쟁을 다룰  때마다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책을 찾았는데, 아쉬울 때가 많았대요. 미국의 저자가 미국의 시각을 갖고 쓴 책을 번역한 게 대부분이었다는 거지요. 왜 우리의 시선으로 중동문제를 바라본 책이 없을까? 중동 문제를 균형감있게 살펴보는 책이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에 직접 쓰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저는 평소 박정욱 피디가 SNS에 올리는 글의 애독자입니다. 다양한 사안에 대해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거든요. 시사 토론 프로를 연출하며 터득한 내공이겠지요. <중동은 왜 싸우는가?>(박정욱 / 지식프레임)는 그런 저자의 오랜 고민을 담아낸 결과물입니다.


이슬람 국가의 주권은 신에게 있었다. 신의 계시를 기록해놓은 <꾸란>이 곧 헌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슬람 국가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 <하디스>에서 국가 운영과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법을 도출해냈다. 문제는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꾸란>이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알라가 한 번 계시한 말씀은 영원불변하다. 이슬람 법학자들이 경전 해석을 통해 시대에 맞는 유연성을 발휘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에서는 '주권이 신에게 있다'는 관념이 계속 이어졌고 근대 유럽에서 등장한 '인민 주권'의 개념이 들어서기 어려웠다. 이는 20세기에 도입된 민주주의와 공화제가 중동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 33쪽)

   
한국이 21세기 마지막까지 남은 분쟁지역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이 유달리 싸움을 좋아해서? 아니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에서 양 세력이 부딪히는 첨단에 위치한 지정학적 배경 탓이지요.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이념체제로 나뉘어 있는 탓에 서로의 정체성을 두고 충돌이 일어납니다. 

중동이 싸우는 이유도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랍니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후,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유럽 세력의 위임통치라는 시련을 겪습니다. 국가를 이룰 때도, 민족이나 종교에 따라 나뉘기보다는 유럽 열강들이 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에 따라 나뉘어집니다. 마치 우리에게 38선이 그랬듯이. 터키 안에 투르크 족도 있고 쿠르드족도 있어요. 한 나라 안에 시아파가 있고 수니파도 있어요.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삽니다. 외세에 의해 함부로 국경이 그어진 탓에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지요.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쫓고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고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의 맹주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을 나누어 인위적으로 세운 다른 아랍국가들과는 달리 사우디아라비아는 스스로의 실력으로 영토를 정복해 세운 아랍국가였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 대부분이 사막이었기에 유럽열강들이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 눈독을 들이지 않은 것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외세의 개입 없이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 척박한 사막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아랍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세력의 위임통치라는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사우드 가문만은 유럽 국가들과 대등한 지위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위의 책 152쪽)

개인이 그러하듯, 나라의 운명 역시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다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요. '잘 나갈 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안 나갈 때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오일 머니에 너무 기죽지 말고 살아야겠어요.

터키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은 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 국가들이 터키를 침공할 때, 게릴라 전을 통해 독립을 지킨 영웅입니다. 전투의 승리를 통해, 스위스 로잔에서 서방 제국들과 터키 국민군간의 협상이 시작됩니다. 이 협상에서 오스만의 대표단장은 터키 독립 운동의 영웅 이스메트 파샤라는 늙은 군인이었어요.

이스메트 파샤는 협상 과정에서 터키의 주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귀가 어두웠던 이스메트는 보청기를 끼고 다녔는데, 영국 대표가 이야기할 때 보청기를 꺼두었다가 그의 말이 끝나면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터키의 독립과 완전한 자주권'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협상 내내 이러한 태도로 일관하자 기가 질린 영국 대표는 결국 이스메트 파샤의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으로 터키는 승전국들에 전쟁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고 아나톨리아 전 지역을 되찾았으며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해협도 차지했다. 

(위의 책 196쪽)

 

독립 영웅과 영국 외교관 사이 기싸움에서 이스메트가 이긴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스메트는 고국을 지키려는 투사였고요. 영국 대표는 강대국의 이권을 챙기려는 정치가였어요. 싸움은 더 간절한 사람이 이깁니다. 누가 더 간절하게 싸울 것인가. 

중동은 왜 싸울까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인간은 어느 집단에 소속감을 가진 채 살아갑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소속감이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어떠한 이유로든 세상은 변하고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혼란의 시기가 도래하면 인간들은 미래가 불확실해졌다고 느끼고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새삼스레 자신의 소속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집단적으로 던질 경우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아닌 이들은 누구인가?' 집단적으로 던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누구를 우리 집단에 포함할 것이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6쪽 들어가는 말에서)


지난 수십년간 우리의 불행은 냉전에서 비롯되었어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념 전쟁의 최전선으로 설정된 탓에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지요.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남과 북이 이제 다시 물어야 해요. '우리는 누구인가?' 이 책을 통해 한반도가 맞이하고 있는 정체성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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