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대학원 재학 시절, 동급생들과 가끔 했던 얘기가 있다. '우리 나라는 너무 많은 사람이 영어를 공부하는게 문제야.' 소수의 통역사나 번역사 등의 외국어 전문가만 양성하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 분야만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이다. 

얼마전 카이스트 학생 하나가 자살을 했는데, 그가 평소 영어로 미적분 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 공고를 나온 그 학생은 로봇을 만드는 데 있어 천재였다고 한다. 에휴...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몰아넣는 사회,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주위에서 나만 보면, 영어 공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온다. 참으로 안타까운건 다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렇다고 정작 제대로 하지는 않고 있다는 거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살 필요 없다. 영어, 못해도 된다. 아니 안해도 된다. 당신이 40대라면... 그리고, 영어 공부가 즐겁지 않다면 굳이 하지 마시라. 그냥 일에서만 성공하시라. 요즘 영어 잘하는 어린 것들 많다. 데려다 쓰시라. 괜히 영어 때문에 쓸데없이 스트레스 받고 사실 필요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미친듯이 영어를 공부했을까? 취업 때문에? 큰 도움 된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MBC PD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지금, 왜 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드라마 연출과 아무 관계없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을까? 

인생, 살다보면 자기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남들 마음이 내 맘 같지 않아서.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 정도는 내가 맘먹은대로 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영어 공부는 그런 면에서 나만의 성취동기 측정 바로미터였다. 20대, 영어 독학으로 미친듯이 공부했고, 그 결과 통역대학원에 입학했다. 내 청춘을 영어 독학에 바쳐 얻은건, 영어 실력보다 더 소중한 자신감이다. 이후 나의 인생 행보에 있어 그 자신감은 큰 도움이 되었다. 전공과 상관없는 MBC PD공채에 지원할 때도, '독학으로 영어도 마스터했는데, TV 연출 쯤이야...'

그런데 막상 연출을 하다보니 뜻대로 안될때가 많다. 시청률이 연출 욕심대로만 나오면 그게 PD냐, 신이지. ㅋㅋ 내 마음 먹기는 쉬워도 시청자들 마음 돌려세우기는 그렇게 어렵더라. 이렇게 힘들때, 다른 연출들은 술먹고 담배피고 커피마시며 스트레스 푸는데, 난 혼자 외국어 공부한다. 20대에 맛 본 그 자신감을 다시 느껴보려는 발악이다. (미친넘! 하는 소리 들린다, 어딘가에서...^^)

영어 공부, 하기 싫음 하지 마시라. 담배랑 똑같다. 기왕 피울거면 즐겁게 피우지, 괜히 입에 물고 스트레스 받을 거 뭐 있나. 영어 안해도 잘 산다. 안할거면 마음 편히 먹고 그냥 하지 마시라. 그런데, 기왕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리고 어차피 스펙 싸움 때문에 해야하는 20대라면, 제대로 한번 해보시라. 요즘 영어 잘하는 아이들 너무 많지 않나? 적당히 잘하는거 의미없다. 미친듯이 한번 해보시라. 그럼 그 결과로, 영어 실력이라는 스펙에 더해, 뿌듯한 자신감까지 얻을수 있으니까. 20대에 무언가 내 뜻대로 해냈다는 자신감, 30대 이후의 인생을 준비하는데 있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일본어를 마스터하면, 일본 드라마를 실컷 볼테다. 그리고, 다음 드라마에 다시 도전해 볼테다. 인생 들이댄다, 대박 날때꺼정!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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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흥어흥 2011.03.01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치 않게 검색해서 들어오게 되어 즐겨찾기 까지 하게되었네요 .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2. sunny kim 2012.05.04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 위에 어흥님 처럼 우연히 들어와서 기분 ..쪼매...구기고 갑니다...ㅎㅎ
    이렇게 똘똘(미안) 하게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부러움의 질투..ㅎ
    어려서 부터 미국, 영국, 아프리카에 많은 관심을 두고도
    왜 가보리라.. 그러면 말을 할줄 알아야겠지... 이런 연결 고리를 만들지 못했을까..ㅜ.ㅜ
    그래서 지금 엉뚱한 캐나다에 와서 영어 때문에 정말 자격지심 팍팍 느끼며
    우울하게 사는 아줌마의 넋두리 였습니다.
    이젠 할일도 없는 저녁인데 김pd 님 언저리나 구경 해볼랍니다. ^^

    • 김민식pd 2012.05.07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끄럽습니다. 스무살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지금 스무살들 보라고 쓰는 글입니다. 아마 30년뒤에는 또 그러겠지요. 40대가 제일 좋은 시절인데, 그때 제대로 살았더라면! ^^

  3. mrdragonfly1234 2012.05.31 0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다 영어선생님들의 철밥통을 바꿀수 없어서 생기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거 이거 공부하면 영어박사된다 하면서 시험문제 꼭 자기가 아는걸로만 내고...손쉽게 가르치니까 전부 오도되어서 영어바보 만드는 나라....10년을 공부해도 한마디 못하는 영어.... 전부 자기가 만든 영어책 소비자들일 뿐이지 진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드물었었었어요....(엣날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4. 솔이 2015.02.11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말이네요 다른사람이나 여러 여건이 내 맘대로 안되지만 내 맘만은 뜻대로 한다는 말이
    어떤일에 미치는 것이 멋지기도 힘들지요 그런 분야가 있다면 성공하겠죠

  5. 40대 2015.03.02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자서 영어공부 독학하기 검색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쓰신 책도 샀답니다. 헉 40대면 하지말라는 말 좌절입니다.. 저 40대인데 영어 필요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T.T 굳은 머리로 50대 되면 잘하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습니다. 리스닝은 받아쓰기로 하면 어느 정도 될것 같은데.. 스피킹이.. 문장외우기가 넘 어려워요. 문법책에 나오는 문장들 외우는건 어떨까요?

    • 김민식pd 2015.03.04 0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몇년 전에 쓴 글입니다.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40대면 더더욱 외국어 공부를 취미삼아 해야 합니다. 치매 예방에 좋구요. 90까지 사는 시대,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외국어 공부에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역시 암송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소리내어 문장을 읽고 외우는 것도 좋습니다. 화이팅!

  6. 첨밀밀88 2016.05.18 2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주행 중입니다.^^

  7. 양웬리 2017.05.23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대단하십니다. 영어라는 마약에 빠진 1인입니다. 20년간 영어 공부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만 38세네요 ^^ 통대 드라마 pd 전부 제꿈이었는데 그걸 두개다 이루셨다니 대단하시네요...요즘 다시 꿈이 고개를문뜩문뜩 고개를 들고 잇어서 ㅜㅜ pd 통대두개다는 아니어도 한개라도 이루고 싶은데 나이가 참 걸리네요...부럽습니다

  8. 영어가 싫은1인 2017.12.26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가 없어도 취업은가능하지않나요??

    \\\\\\\\\\\\\\\\\\\\\\\\\\\\\
    &(아신다면말씀부탁드려요)
    (프로게이머가하고싶은데 영어가필요할까요)&

    • 김민식pd 2017.12.27 0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어 공부를 잘하는 최고의 방법은,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동기 부여에서 시작합니다. 영어를 못하면서도 취업해서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굳이 영어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