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고 훈육주임이셨던 아버지에게 참 많이 맞았어요. 저 어릴 때는 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했거든요. 평소 근무 시간 단련된 매질을 아들에게 시전하는건지, 아들에게 연습삼아 때린 매로 학교에서 써먹는 건지 늘 헷갈렸어요. 중요한 건, 울산공고 문제아는 고교 3년만 견디면 되지만, 아들인 저는 끝없이 맞았다는 거지요. 대학에 올라가서도 밥을 먹다 아버지에게 말대꾸했다가 앉은 자리에서 뺨을 맞은 적도 있어요.

어느날 어머니가 학교에서 가져온 '사랑의 매'가 기억이 납니다. 굵은 참나무 몽둥이에 '사랑의 매'라고 적혀있었어요. 경찰에서 일하는 학부모가 학교에 기증한 것인데요, 이게 한번 맞으면 시퍼런 멍이 듭니다. 선생님들이 써보고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폐기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어머니가 '그럼 기왕 버릴 거, 집에 가져가서 쓰자'면서 가지고 오셨어요. (학생들에게는 차마 못쓰니 아들에게 쓰자... ㅠㅠ 부부 교사 아들로 사는 거, 참 힘들어요...) 무게가 솔찮게 나가는 몽둥이라 한번 맞으면 타격감이 컸어요. 종아리에 굵은 멍이 며칠이 가도 가시지 않는 걸 보고, '음, 저건 좀 심하네...'라고 하시고는 방망이를 깎아서 얇게 만들었는데요. 그래도 너무 아팠어요... 성적표가 나오면 거의 공포에 휩싸였어요. 맞는 것도 괴롭지만, 이번에는 얼마나 맞을까? 생각하는 게 더 무서웠어요. 매는 맞는 그 순간보다,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무섭거든요. 

<이상한 정상 가족> (김희경 / 동아시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평소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학대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양육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도 학대로 치닫는 경우가 없었다.'

(위의 책 27쪽)


'사랑의 매'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20년을 맞고 내린 결론이에요. 내가 맞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행 청소년이라서? 나쁜 짓을 해서? 그냥 아버지 마음에 안 찼던 거에요. 의대 갈 성적은 안 되고, 공부도 못하면서 허구헌날 소설을 끼고 사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거예요. 체벌은 학대로 이어지기 쉬워요. 아동학대와 체벌의 뿌리는 똑같고요. 잘못한 아이는 맞아야 한다는 생각. 그게 잘못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매를 맞은 덕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매 맞는 아이에게는 폭력성이 내재되고 강화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내 속에 있을지 모르는 폭력성을 교화하기 위해서에요. 스무살에 결심했어요. '나는 절대 아버지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이제까지 맞으면서 죽도록 괴로웠으니, 앞으로는 무조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아버지는 당신 인생의 불만을 자식에게 풀었어요. 교사라는 당신 직업에 대한 불만은 아들의 진로에 대한 끝없는 간섭으로 표출되었어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좋은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부모가 아이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든요.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자식에게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편이 낫습니다. 자기계발이란 나를 향하는 것이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아니거든요.


'기성세대는 그 시대의 제한된 문화적 환경에서 자녀를 가르쳤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체벌의 유해성을 연구해온 발달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는 이를 자동차 안전벨트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성인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에 자랐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벨트가 없었던 덕분에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없었음에도 불고하고 무탈하게 자랐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위의 책 36쪽)  

 2015년 말부터 2017년까지 저는 송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조정실 업무 중 하나는 뉴스 모니터링인데요, 보기에 힘든 뉴스가 많았어요. 정치적인 뉴스가 아니라 사회 뉴스도 그랬는데, 그중에는 아동 학대 사건 관련 뉴스가 많았지요. 2015년 12월 인천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 갇혀 학대를 당하던 열한 살 소녀가 탈출한 게 시작이었어요. 동네 슈퍼 CCTV 영상에 찍힌 아이의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그제야 당시 정부가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요. 뒤늦게 찾아낸 끔찍한 학대 사망 사건들이 2016년 초까지 뉴스에 줄지어 나왔지요.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고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취약가정을 중점 지원하겠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취약가정이란 '한부모, 조손, 이혼, 재혼, 다문화, 새터민, 장애인 가정'을 예로 들고 있었어요.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말한 거죠. 당시 저자 김희경 씨와 동료들은 언론보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아동학대 사건들의 유형을 정리하던 중인데, 그 중 정부가 중점 지원 대상이라고 분류한 장애인, 새터민, 다문화, 조손 가정은 단 하나도 없었대요.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는 거지요. 사회관계 단절이나 게임 중독이 더 위험하다는 군요.


어려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었어요. '매 맞으며 자란 아이, 커서 폭력 남편 폭력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이 책을 보셨으면 저를 때리지 않았을까요?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 안 읽는 분이라서... 

<이상한 정상 가족>

엄마 아빠들이 봐야할 책입니다. '가벼운 체벌을 할 뿐,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봐야해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체벌 문화가 바뀌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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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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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수정 2018.09.17 0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 퍼센트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애들은 좀 맞으면서 커야 한다' '학교에서 체벌을 못해서 교사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말을 아직도 많이 합니다.
    힉대에 대해 경각심을 가진게 된 것은 거의 최근이며, 대부분의 성인들의 몸과 마음에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폭력을 당했던 기억, 목격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이들을 훈육하며 체벌은 안하겠다고 굳게 다짐해온터라 직접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감정이 격해질때마다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거나 하는 것에도 유의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물려주지는 못할 망정, 폭력을 학습시켜 주면 안되겠죠.

  2. 2018.09.17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꿈트리숲 2018.09.17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무겁네요.
    물리적 폭력을 가하진 않았지만
    언어, 눈빛, 분위기로 아이를 힘들게
    할때가 있었어요.ㅠㅠ 생각날때마다 사과하고 편지도 쓰고 했는데, 무지한 부모는 아이들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멍을 남기는 것 같아요.

    저의 삶을 긍정하지 못해서가 맞습니다. 자존감 낮을때 아이에게 욕심을 많이 부렸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주는 딸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 책도 꼭 보고 아이와 좋은 관계 지속하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rocket80 2018.09.17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분의 글이 생각나는데요.

    집에선 부모님한테 맞고,
    학교에선 선생님한테 맞고,
    대학 갔더니 선배들에게 맞고,
    군대 갔더니 고참들에게 맞고,
    내 나이 27살이 되어서야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공감합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저의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결정되더라구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는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부모가 언제는 웃고, 언제는 화낸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거구요. 이처럼 부모의 기분에 따라 바뀌는 훈육을 하면서 이건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5. 섭섭이짱 2018.09.17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드디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셨네요.
    피디님 책상에 이 책이 놓여있는
    사진을 봤던터라 언제 얘기하시나 기다렸거든요.

    저도 이 세상에 사랑의 매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창시절 매 맞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맞는다고 쉽게 달라지지는 않았던거 같아요.
    특히나 영문도 모르고 단체기합을 받거나...
    선생님 기분에따라 맞던 생각을 하면 정말...
    더 반항심만 키운거 같고요..

    올초 이 책을 한달동안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특히 우리사회 잘못된 가족주의 문화에 대해
    많은걸 깨닫게 해준 책이었어요.

    전 올해 읽은 책중 이 책을
    제 마음속 일등으로 뽑고 있는데요.
    안 읽어보신분들에게
    초~~~~~~강추 합니다. 👍👍👍

    p.s ) 저는 책이 좋은 경우 저자분도
    관심있게 지켜보곤 하는데요.
    관심있는 분들은 작가님 페이스북에
    함 방문해보세요.

    https://www.facebook.com/hk.kim.716




  6. 보리보리 2018.09.17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통총량법칙에 따라 100살까지 행복 누리세요. 말로 맞은 것은 책으로 교화가 안되었어요. 프로그램 가서 배운대로 기억의 재구성 해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요

  7. 2018.09.18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나무 2018.10.07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하신책은~늘 저에게 새로운세상을 보여줍니다~이번책도 저에겐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애넷을기르다보니~체벌이삶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었어여ㅜㅜ 아이들의인권을존중하며살아야겠습니다~좋은책추천감사드립니다^^

  9. 아니모 2018.11.17 2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닥토닥.. 말이 20년이지.. 긴시간동안 참 잘 견디셨어요

  10. 손잡기 2019.02.1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영어댓글부대에만 댓글 술술 달지 알았지 다른글들을 보며 눈팅만하고 즐겁게 제 마음만 채워가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구요. 지난날의 어른들께는 자식은 많은데 먹고 살기가 빠듯했잖아요. 자식, 사람이 진심으로 귀하다는 생각은 못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일 손쉽게 그 위치에서 제압할 수 있는 매질로 선택을 했던 거죠. 그 순간엔 그게 제일 쉽잖아요. 청소년 시기의 성적이나 가족간의 생활들로 저 역시도 욱해서 혼내시는 감정기복이 심한 엄마한테 자랐습니다. 4남매중에 셋째였는데 유독 저한테 더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순간의 모면을 위해 전 수많은 거짓말들로 포장했던것 같아요.. 그래야 혼나지 않았으니까요.. 그 때했던 거짓말들이 트라우마로 지금까지도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식낳고 일하며 꿋꿋이 가정을 꾸려가는 제 모습을 보시면서 어느날 엄마께서 그러시더군요. "네가 이렇게 잘 될지 몰랐다.." 저, 저는 그 말씀이 그 어떤 사과나 그 어떤 말보다도 통쾌했고 부모님 입장에서 내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디님.. 나의 멘토님.. 아마 당신의 부모님도 이토록 세상을 눈부시게 살아가는 지금의 아들을 보면서 지난날의 과오를 은연 중에라도 툭.. 풀어내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총총 즐하루^^

  11. 김인철 2019.12.05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PD님^^ 울산에 사는 36청년입니다.
    블로그에 들어와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요즘 틈틈히 블로그에 들어와 여러 글을 읽고 있어요.
    쓴 책들도 거의 다 읽었구요.
    PD님께서 아버지와 사이가 어려웠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버지는 경상도분에
    권의적이고 고압적인 분이에요. 어려서부터 옷이라던지 직업, 많은 부분에서 간섭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하시죠.(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미대를 졸업하고 자동차정비쪽 일을 10년 가까이 하고있는데 늘 마음이 불편해요.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은 사람이거든요. 복지, 상담 쪽으로 하고싶어요. 물론 아버지는 싫어하겠죠? 남자가 무슨, 그냥 기술배워서 중공업에 들어가!! 라고 혀를 차십니다.

    김민식 PD님. 글 보면서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그러면서도 2가지 질문이 들었습니다.

    1. 아버지와의 어려웠던 관계,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요. 그냥 결혼해서 멀리 떨어지는게 답일까요?

    2. 36이라는 어쩌면 늦은나이에 이직을 하려니 겁이 많이 나요.
    물론 자격증이라던가 하나씩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늦은건 아니겠죠?

    같은 고향출신이라 더 정이가는 PD님. 오늘도 블로그에 열심히 눈팅하겠습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