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콘텐츠 진흥원에서 주관한 한국-영국 포맷 워크샵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런던은 제가 여행과 첫사랑에 빠진 곳입니다. 생애 첫 배낭여행을 늦게 간 편이에요.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다녀왔으니까요. 대학 1,2학년 때는 군미필자라 못 가고, 복학하고는 방학에도 야학 교사로 일하느라 못 갔어요. 4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내 평생 마지막 방학인데, 이번에 못가면 평생 못 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취업준비도 팽개치고 4학년 여름 방학에 배낭을 꾸려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비행기에서 내린 곳이 런던 히스로 공항. 저는 참 운이 좋아요. 처음 도착한 곳이 런던이었으니까요. 여행과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공연하는 극장)


오랜만에 런던의 언더그라운드를 탑니다. 런던 지하철은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르지요, 런던에서 서브웨이는 지하 보행자 통로를 뜻합니다. 1992년에 본 런던 지하철과 거의 변함이 없다는데 놀랍니다. 여전히 통로가 좁고 낮고, 지하철은 복잡하군요. 부동산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저가 숙소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92년에 처음 런던에 왔을 때, 호텔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나더군요. 싼 비앤비를 찾고 싶었어요. 기차역 근처에서 싼 숙소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봤어요. 배낭을 메고 지도를 들고 찾아나섰어요. 제 뒤로 여덟명의 배낭족이 쫓아오더군요.  GPS나 구글맵이니 없던 시절이라 길은 무조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야하거든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갔어요. B&B를 찾아가니 영국인 주인 할머니가 엄청 반기더군요. 전단지를 지하철 역 근처 기둥에 붙여뒀는데 멀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그런데 어떤 한국인이 일행을 여덟명이나 데리고 찾아왔으니까요. 

(로얄 앨버트 홀)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독서와 여행, 그리고 연애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겁쟁이에 쫄보인데요, 배낭여행을 다니며 담력을 키웠습니다. 세상 어디든 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게 되었거든요. 여행이 편안하려면, 돈을 들이면 됩니다. 비싼 호텔에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 기사가 이름만 대도 알만한 호텔을 잡으면 헤맬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돈이 들어요. 저는 요즘도 여행을 가면 1박에 5만원 이하하는 숙소를 잡습니다. 길찾기가 좀 힘들어도, 전철역에서 멀어서 좀 발품을 팔아야해도 싼 숙소를 찾습니다. 그렇게 길을 찾고 헤매는 과정이 여행이라고 믿거든요.

모험을 즐기면 여행이 더 즐거워져요. 돈도 아끼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도 키웁니다. 겁이 날만한 상황에서 겁을 내지 않고 극복해버리면 오히려 자신감이 커지거든요. 새로운 변화에도 겁먹지 않을 자신감이.


런던에 도착한 날, 문득 깨달았어요. 우린 왜 첫사랑에 빠진 순간을 이렇게 쉽게 잊고 사는 걸까?

가끔 잠든 아내를 보며 20대의 내가 그녀를 보며 품었던 강렬한 연정을 어느새 잊고 사는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20년째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진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잠든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며, 머리를 쓸어봅니다.

이번 런던 출장, 그런 마음으로 다녔어요. 이 좋은 여행지를 그동안 왜 잊고 있었던가. 

다시 만난 첫사랑! 

런던 여행기, 이제 시작합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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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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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둥이망 2018.03.26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초등생 쌍둥이 딸들이 가장 가고싶어 하는
    여행지가 런던과 뉴욕입니다.
    어느곳을 먼저 가야할까 고민중에 런던 보다 뉴욕의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로 런던이 뉴욕에 밀렸지요
    다음 런던여행글에 런던음식에 대한 정보도
    기대해봅니다 ㅎ

  2. 섭섭이짱 2018.03.26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야호~~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민식표 여행기 개봉박두... 두근두근 두근두근
    런던은 패키지여행때 유명한곳 위주로 잠깐 스쳐간 곳이었는데 피디님이 어떤 얘기를 해주실지 궁금하네요.

    런던 여행기 기대됩니다.

  3. 두리 2018.03.26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남편이 우리 둘만 여행다니자는 말을 자주하는데 실천해보고 싶어지는 생각이 드네요. 울 남편도 가끔 잠든 저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는데 뭔가 그 손길이 존중 받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4. 내멋대로~ 2018.03.26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런던 파리
    9박10일 계획하고 있어
    여행기가 넘 기대됩니다 ^^

  5. 김경화 2018.03.26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동네 ,영국 먼동네라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여행의 진리는 불편함속에서의 즐거움,발견,자신감,좌절.실망 ,행복 등등 많은것을 깨달을수 있을거 같아요~

  6. *loveme* 2018.03.26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런던 여행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 못한곳이거든요...ㅜㅜ

    멋진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7. 정지영 2018.03.26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드디어 오픈이네요.
    런던 여행기 학수고대하고 있었어요.
    전 파리가 첫 여행지였는데, 아직도 그때
    날씨와 거리풍경 생생합니다.
    전 첫사랑을 잘 안 잊어버리네요.^^
    기대됩니다.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실지...
    프로 이야기 봇짐러!의 런던 다음 얘기, 기다릴께요~~

  8. Mr. 코알라 2018.03.26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런던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인데! 피디님 통해서 간접체험을 할 수있게 다양한 이야기와 많은 사진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9. 수신제가 2018.03.26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암송후 교재찾아 3만리중입니다 영화 도전중인데 짐 공부하는게 노팅힐입니다.....귀가 뚫리고 입이 뚫릴때까지...그깟 영어하나라고 도전하게 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다 ...홧팅......

  10. pennylane 2018.03.26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 미용실 갔다가 뜻하지 않게 ㅎㅎ 무려 Luxury 4월호에서 피디님 인터뷰를
    보고 넘 반가웠어요~즐겁게 정독했답니다 ㅎㅎ
    그래서 작년 초 처음으로 댓글 남겨본 이후 또다시 블로그를 통해 피디님 응원하러 왔습니다~
    인터뷰 말씀처럼 "하루하루의 꿈을 이뤄가는 삶"이 진정한 럭셔리 라이프라고 생각합니다.
    첫사랑 런던 이야기도, 새로운 작품도 기대할께요~!

  11. 미소천사 2018.03.26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오늘 처음으로 블로그 들어왔습니다. 정말 매일 쓰시네요. 그 꾸준함을 존경합니다

  12. 옥이님 2018.03.26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무지무지 반갑습니다
    저는 최근에 홍콩으로 첫 해외여행을 친구와 자유여행을 다녀왔어요
    안되는 영어에 듣는 건 전혀 안됐지만 ....
    나름 의미있는 여행이었어요
    다음엔 런던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피디님의 여행기라니.....
    나이들어하는 영어공부지만 더 꾸준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나이들어간다는게 그리 슬프지 않네요^^
    피디님 덕분에 영어회화에 열심히 도전하고 다음엔 어느나라에 갈지 고민하며 언어에 열중하고있는 1인입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13. littletree 2018.03.27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런던을 짝사랑하는 것 같아요.. 갈때마다 흐리고 비오는 날씨에 아쉬웠는데 피디님 사진 속 런던 하늘이 너무 파래요!

  14. Mang나니걸스 자취이야기! 2018.03.28 0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런던 누가가보고후기를 말해줬는데
    완전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더라구요~~

  15. cyanluna 2018.03.28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웅 런던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