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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사이판 여행 1일차

by 김민식pd 2018. 1. 25.

사이판 여행 1일차


(지난 추석에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2018/01/24 -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 괴로움이 즐거움이 되려면



사이판 항공권을 검색할 때, 너무 저가항공권에 집착해서 그런지 주로 밤에 출발하고 새벽에 도착하더군요. 혼자 여행 할 때, 새벽 4시에 공항 도착하면 입국장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동이 트길 기다리는데요.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공항에서 버티긴 힘들 것 같아 쉴 수 있는 라운지를 찾아봤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찜질방 같은 거죠. 숙소는 아니지만 24시간 운영하기에 체크인시간까지 쉴 수 있는 곳.  검색을 통해 마리아나 라운지에 예약했어요. 공항까지 픽업 차량이 오고, 나중에 숙소까지 데려다주더라고요. 

 


 

찜질방 수면실 같은 곳인데, 쇼파에 길게 누워서 눈을 좀 붙입니다. 새벽 4시에도 공항 픽업과 체크인이 가능한 고급 호텔을 예약하면 될 일인데, 웬지 새벽 4시에 체크인하면서 1박 요금 내는 건 너무 아까워서... 짠돌이 기질은 어쩔 수가 없어요. 


밤 비행기 타고 오느라 고단하셨는지 아버지는 쇼파에 모로 누워 바로 코를 골며 주무시네요. 올해 일흔일곱이신 아버지와 몇년 째 여행을 다니는데요. 다행히 크게 까다롭지는 않으세요.  어디서든 잘 주무시고 무엇이든 잘 드시거든요.


 

아침 해가 뜨자, 라운지 셔틀을 타고 숙소로 갑니다. 짐을 맡기고 사이판의 중심가인 가라판으로 가요. 쇠락한 모습의 중심가가 좀 쓸쓸해 보이네요. 



사이판은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곳이라 Memorial Park라고 전쟁기념관이 있어요. 사이판 전투의 기록 영상과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리아나 제도를 둘러싸고 일본군과 미군이 치열하게 싸운 이유가 있어요. 일본 본토를 공습하기 위한 활주로가 필요했던 겁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전함을 침몰시킨 것도 같은 이유지요. 일본은 바다로 둘러쌓인 섬나라라 육지로부터 침공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해전이나 공중전의 기세 제압이 필요한 거죠. 마찬가지로 미국으로서는 일본 본토 진군을 위해서는 중간 병참기지인 괌이나 사이판의 점령이 필요하고요. 2차 대전이 끝나고 이들 두 섬이 아직도 미국령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미국의 태평양 전진 기지.



사이판 시내를 걸어다니다보니, 9월인데도 푹푹 찝니다. 덥고 습한데 어디 쉴 곳이 없어요. 이럴 땐, 여기서 전쟁 기록 영상물을 보며 시원하게 쉬었다 갑니다.시원하고, 어둡고, 낮잠 한 숨 자고 가기 딱이네요. 심지어 '무료 입장' '무료 관람' ^^


2차대전 기록 영상을 보니, 전쟁 막바지에 사이판 점령 일본군들이 자살절벽(사이판의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일명 '만세 절벽')에 몰려가 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충격적이에요. 영화 덩케르크를 보면서 '전투에서는 졌다고 포기하면 안되는구나. 어떻게든 살아남아 설욕전에 전력을 보태야지.'했거든요. 그런데 일본군은 다 절벽에서 몸을 던져요. 왜 그랬을까요?


3일 후 찾아간 만세 절벽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습니다. 그건 4일차 여행기에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전쟁기념공원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마이크로 비치가 나옵니다. 사이판의 대표 해변인데, 이름 그대로 좀 작아요. 저같은 저가 여행자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해변에서 편하게 쉴 곳이 없어요. 비치 파라솔과 선베드가 몇 개 있는데, 다 고급 호텔 리조트 숙박객 전용이거든요. 동남아 해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배낭족들이 즐겨찾는 저렴한 해변 카페 같은 곳이 하나도 없어요. 마이크로 비치 해변은 고급 리조트에 포획되어 있습니다.

 

아, 결국 여기도 미국이구나... 


미국을 여행할 때 느낀 점이에요. 돈으로 구역을 나누는 것. 


미국에서는 좋은 경치를 보려면 돈을 내야합니다. 뉴욕 근처의 스태튼 아일랜드에 놀러갔을 때, 풍광이 좋은 곳은 다 사유지였어요. 풍광이 멋진 해변을 찾아가니 접근금지라고 살벌한 마크가 있어요. 미국에서는 사유지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무단 침입으로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겁이 덜컥 나지요. 


미국에서는 돈으로 인종을 격리합니다. '흑인 출입 금지'라고 하면 차별 금지법에 걸리니까 아예 비싼 요금을 매겨요. 가난한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들어올 엄두도 못 내게. 


그런데 사이판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이네요. 풍광은 동남아인데, 문화는 미국식, 흠... 아쉽네요...   



(그림의 떡... ㅠㅠ)


돈을 내지 않고는 볼만한 곳이 없어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숙소로 향합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됩니다. 첫날에 의욕만 가지고 덤볐다가 남은 기간 지치면 안 되거든요. 


아버지는 연세가 연세인지라 청력이 떨어졌는데, 보청기 끼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이번 여행에도 보청기를 아예 안 가져 오셨네요. 문제는 그러다보니, 제가 불효막심한 아들이 된다는 거죠.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소리를 질러야해요. 아니면 못 들으시니까. 저는 짐을 가지고 입국 수속 줄에 서 있어요. 아버지는 무조건 벤치에 앉아 기다립니다. 우리 차례가 되어도 안 오시면 줄을 이탈할 수는 없어 멀리서 부릅니다. 못 들어요. 보청기가 없으니. 결국 소리를 지릅니다. "아버지! 이쪽으로 오시라니까요!" 공항에서 늙은 아버지 구박하는 못된 아들이 접니다. ㅠㅠ


늙어서 저도 장성한 딸들이랑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요. 그때를 위해 블로그에 이 이야기를 꼭 남겨두려고 해요. 나이 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아요. 평생을 살면서 굳어진 자신의 믿음대로 그냥 삽니다. 식당에서 팁을 두고 나오면, '돈을 왜 그렇게 낭비하냐'고 뭐라 그래요. '여기 문화니까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을 드리는데, 항상 고개를 저으며 듣지를 않고 팁을 집어들고 나오십니다.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제가 다니는 곳은 맥도날드나 즉석 요리점이에요. 팁을 내지 않아도 민망하지 않을 곳...

  

'난 늙으면 저러지 말아야지.  말도 귀담아 들어야지.'

'보청기는 꼭 챙기고 다녀야지. 나는 불편해도 딸들 편하게 해줘야지.'

 

그러니까, 이 글은 20년 후의 저에게 보내는 편지에요. 


사이판 여행기 2일차,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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