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인사위에 불려다니며 징계를 앞둔 어느날의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오셔서는 약속을 미루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요, 선배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날 내가 어디 가기로 했던 걸 까먹고 약속을 잡았어."

"어디 가시는데요?"
"일본 동경에서 서머소닉이라는 뮤직 페스티벌이 있는데 거기 가기로 했거든."

이럴 때 저의 눈은 완전 똥그래집니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와요.

"우와앙! 좋겠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약속은 미뤄야지요. 와, 진짜 부럽습니다. 동경 서머소닉이라니!"

"서머소닉 알아?"

"아, 옛날부터 듣기만 했었죠.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거든요."

"그럼 자기도 갈래?"

"네?"

"응, 마침 표가 한 장 남거든. 같이 가자."


그길로 집에 달려와 아내에게 물어봤어요.  

"이게 말이야, 진짜 죽이는 기회거든.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당장 다음주 주말이야, 갔다 와도 돼?"

아내의 표정이 미지근합니다. 이럴 때, 필살기 들어갑니다. 동정표 작전!

"나 엊그제 인사위 갔다가 본부장들한테 조리돌림 당하고 지금 완전 멘탈 바닥인데, 여기 가서 노래 듣고 춤도 좀 추고 오고 싶다. 그럼 갔다 와서 완전 충성할 것 같은데. 당신 혹시 면세점에서 뭐 필요한 거 없어?' 

마님, 그제야 피식 웃습니다. 

"알았어. 갔다 와."


앗싸!

바로 항공권을 사고 숙박을 예매한 후, 예전에 외운 일본어 기초 회화책을 꺼냅니다. 동일본 지진 이후 진짜 오랜만의 일본 여행이네요.


저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부러워합니다. 아내는 미국 유학하던 시절, 방학을 맞아 남미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갔어요. 아내가 찍어온 사진들이 다 죽이더라고요. '우와아앙! 부럽다.' 제가 하도 부러워하니까 아내가 그러더군요. '여기 진짜 좋아. 당신도 나중에 꼭 가봐.'

2015년 회사에서 난데없이 발령이 났어요. 2012년 파업에 대한 인사 보복을 2015년에도 하더군요. 주조정실 송출 근무를 하라기에 '에이, 진짜, 이 참에 확 때려치워?'했어요. 득달같이 달려가 사직서를 던지고 싶었지만..... 소심한 저는 일단 1달 휴가를 냈습니다. 어차피 그만 둘 거라면 실컷 놀아나보고 그만 두지 뭐. 사표 쓸 생각도 했는데, 굳이 부장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요? 장기 휴가를 내고 퇴직 후 삶을 예행연습 해봅니다. 아내에게는 이렇게 구슬렀죠. 

"당신이 옛날에 나보고 파타고니아 꼭 가보라고 했던 거 기억 나? 나 이번에 거기 가고 싶은데..."




(그 파타고니아 여행을 하며,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그 글이 반응이 좋아 책으로도 나왔어요. '음... 드라마 연출을 못해도 블로그 하는 재미로 살아도 괜찮겠는 걸? 그럼 회사에서 좀더 버텨보지 뭐...'했지요.)



저는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부러워합니다. 대학 다닐 때, 누군가 영어를 잘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아, 저 사람은 유학 다녀와서 영어를 잘 하는 구나. 그럼 나는 한국에서 혼자 유학 온 것처럼 살아볼까?' 남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될 때까지 하면 되니까요. 살아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믿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

- 아랍 속담.


진심으로 부러워서 떠난 여행, 도쿄 서머소닉 관람기, 내일부터 연재 시작입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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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이스키 2017.12.18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글 너무 좋아요^^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너무나 긍정적이고 솔직하고 좋은 표현같아요^^ 다음글을 계속 기다려봅니다

  2. 김수정 2017.12.18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 피디님의 표정 정말로 즐거워 보이십니다! 포즈도 멋지셔요. 저런 포즈는 연구 하시는건지? ^^ 사진을 보는 저도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네요ㅎㅎ

  3. 섭섭이 2017.12.18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우~~~ 도쿄 서머소닉이라... 정말 부러워요.^^ 나도 가고싶다 가고싶다 가고싶다 ㅋㅋㅋ. 요즘엔 남을 부러워하면 지는거다라는 얘기를 하던데 전 반대로 부러워해야 뭔가 동기부여가 되는거 같아 잘 부러워 하는데요. 그래서 PD님 글들 읽다보면 동기부여가 팍팍되어서 같이 따라하게 되네요. ^^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
    명언이네요. 아침부터 좋은 기운 받고 갑니다. 그리고, 다른건 몰라도 그 어렵다는 마님에게 혼자 여행 허락 구하는 필살기는 정말 언제 제대로 배우고 싶네요. ㅋㅋㅋ

    내일부터 여행기 기대됩니다.

  4. 정은 2017.12.18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센스베리굿굿~ 필살기 한마디
    "면세점에서 필요한 거 없어?"
    상황대처의 달인....
    긍데.. 미녀들과 너무 즐거워하신다... ㅎㅎ

  5. 정지영 2017.12.18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4월 정모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댄스를 선보이시는 모습 보고
    알아봤습니다. 역시 남다른 분이라는 것을요.
    남과 다른 생각에서 남다른 행동이 나오는 거겠죠?
    자유로운 여행, 막힘없는 언어
    정말 정말 부러워요~~
    ~~에도 불구하고 항상 방법 찾아내는
    피디님 리스펙트^^

  6. 소금별 2017.12.18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피디님의 여행기를 읽으면 생기가 팍팍 납니다.
    덩달아 싱글벙글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피디님의 오키나와 여행기를 보고 오키나와를 동경하다가 직접 가봤구요.
    대만 여행기를 보면서 혼자 대만 여행을꿈꿔보기도 하구요.
    지금은 남미 파타고니아를 마음에 담아 봅니다. 월요일 힘을 주셔서 감사해요^^

  7. 아리아릳 2017.12.18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기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
    하고싶은 것의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삶을 꿈꾸며, 오늘도 하루를 보람차게!

  8. 이쁜 아줌마되기 2017.12.18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 재미지네요

  9. 팔찌 2017.12.18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너무 좋은 글이었어요.. 너무나 공감되는ㅎㅎ 행복해지네요.
    즐겁게 읽고가요.

  10. 오감이 2017.12.18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메인에 올라왔길래 들어와 봤습니다.
    사진이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다고 했는데 김민식 PD님이시군요!
    MBC 건물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를 외치시던 그 PD님!
    공모자들 영화를 통해서 뵀었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인터넷상에서라도 만나니까 괜시리 반갑네요.
    자주 놀러올게요~

  11. 김도이 2017.12.18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책 한권 읽어봤니??를 주문한지 두어달도 넘은것 같은데 이제야 읽는중에...피디님 블로그를 소개한 페이지에 머물러 뽀모도로 시간 활용 해 봅니다. 저는 부러워하질 않아서..발전이 없었나.는 지점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언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요..

    책 첫페이지 피디님 싸인에 민식 민식스러움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MBC이 권투를...
    늦었지만..^^..MBC 파업 완전. 멋찜 멋찜 함

  12. 얀입술 2017.12.19 1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이네요. 잘보고갑니다~
    행복한하루되세요^^

  13. 2017.12.20 0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럽큐 2017.12.20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오름~ 진심 멋있어요!!!ㅜㅜㅜ
    그리고 덕분에 읽고픈 책이 또 생겼네요! 영어공부 다시 시작입니다 ㅎㅎ

  15. 2017.12.22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