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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진짜 언론인의 꿈은 무엇일까?

by 김민식pd 2017. 9. 22.

2017/09/18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 가슴이 울었기 때문에 파업에 나선다

2017/09/19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 어린 시절의 괴로움이 지금의 즐거움

2017/09/20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 피디란 공감하는 직업이다.

2017/09/21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 언론인은 어쩌다 ‘기레기’가 되었을까?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방송사 파업과 무한도전 불방 사이' 그 마지막 편입니다.)

 

아이들에게 진로 희망을 물어보면,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돌보겠다.” “판검사가 되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말의 순서를 뒤집어 보아요. “아픈 사람을 돌보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판검사가 되겠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의사가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간호사나 자원봉사자도 할 수 있어요.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직업은 꿈이 아닙니다. 그 직업을 얻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게 진짜 꿈입니다.

기자나 피디가 되는 게 꿈이라면 신문사나 방송사에 취업하는 데 목을 매게 됩니다. 언론사 입사 경쟁이 치열한 탓에 어쩌다 회사에 들어가면, 그 고마움이 충성심으로 바뀝니다. 그 순간, 사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광고주에게 무릎 꿇고 권력에 고개를 숙이는 기레기가 탄생합니다.

저는 피디를 꿈꾼 적이 없어요. 어려서 피디가 꿈이었다면, 공대를 가거나, 영업사원을 하고, 통역대학원에 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서 깨달았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는 걸 좋아한다는 걸.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었지요. 그러나 파업 참여 이후 5년째 회사에서 제게 연출을 맡기지 않았어요.

드라마 피디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작가가 대본을 쓰고, 배우가 연기를 하고, 카메라맨이 촬영을 해야 무언가 만들어지거든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블로그의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한 편씩 올렸어요. 내 삶의 경험 중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혼자서 영어책을 외워 공부한 방법을 소개했고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출간 6개월만에 1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 섭외가 와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강연도 했어요. 그 강연은 180만 조회수를 넘기며 화제의 동영상이 되었지요. 망가진 MBC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어요. 그 장면은 영화 공범자들에도 나옵니다. 지난 몇 년, 회사 경영진은 보복인사로 제게 드라마를 시키지 않았지만, 저 혼자 시작한 블로그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저자로서, 강연자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어요.

피디나 기자가 꿈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신문사 기자가 되어야만 세상 사람들에게 내 글을 읽힐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어요. 방송사 피디가 되어야만 재미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서 재미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어요.”

지난 9년 동안, 정치와 언론은 한통속이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어요. 권력은 기자와 피디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고요, 권력의 감시견이 되어야 할 언론은 권력의 애완견이 되어 부정부패에 눈을 감았습니다. 그 결과 터져 나온 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시민 혁명입니다.

앞에서 제가 사는 것이 힘들 때, 그냥 참고 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지요? 그건 외모나 성적, 부모님 같은 개인적 고민이 그렇습니다. 약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 폭력이나 교내 비리 같은 문제는 참고 살면 안 됩니다. 그건 공동체의 문제이거든요. 내가 눈 감는 순간, 약자가 당합니다. 누군가 괴로워할 때 눈 감은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가서 말리든, 함께 싸우든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그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언론을 감시하는 시민 사회의 양심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의 말대로, 언론이 망가지면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이거든요. ‘무한도전이 파업으로 불방 될 때, 시청자로서는 아쉽겠지만,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 청소년 여러분도 함께 싸워주세요. 권력에 대항해 싸우는 방송사 노조의 진짜 무한 도전을 응원해주세요. 언론이 힘 있는 이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도와주세요.

지난겨울,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항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청소년 여러분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을 때였어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친구들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여러분, 권력에 길들이지 않는 참된 언론의 모습, 여러분이 보여주고 있어요. 세상을 바꾸는 청소년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이 원고는 <소년소녀, 정치하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우리학교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오늘 저녁, 광화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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