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

당신 탓이 아닙니다

by 김민식pd 2017. 5. 26.

2012년 파업 이후, 회사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 술 한 잔 사 주세요.”하고 연락이 옵니다. 만나면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지요. ‘MBC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걸까요?’ ‘이런 분을 모시고 일을 할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힘듭니다. 6개월간 파업을 함께한 조합원들에게 집행부로서 죄책감이 큽니다. 이기지 못한 싸움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뿐이에요. 솔직히 저도 고민이에요. ‘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언제나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드라마 PD로서 나의 경력은 끝난 게 아닐까?’ 어떤 이들은 저를 위로해주려고 만나자고 하겠지요. 저는 자신의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타인이 해주는 조언은 자칫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러게, 좀 살살 하지 그랬어?” 농삼아 한 말에 저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게 누가 노동조합 집행부 하랬어?” 이런 지나가는 말에도 저는 좌절해요.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내가 평소 가장 믿고 좋아하던 사람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죽도록 괴로운데, 너는 이걸 몰라주는 구나....' 좋아하는 마음이 순간 원망으로 바뀌더라고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깨달았어요. '답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자. 타인을 원망하지도, 타인에게 위안을 구하지도 말자.'

 

요즘 매일 책을 한 권씩 읽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것이 제게는 행복입니다. (읽은 책을 모두 소개하는 건 아닙니다. 재미있거나 소개하고 싶은 책만 블로그에 올립니다.)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면 자칫 상처를 주고 입을 수 있지만, 책속에서 구하는 조언은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책에서 만난 좋은 글귀는 글쓰기를 통해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책을 읽고 마는 것보다 다시 되새김질할 때 독서가 더 즐겁더라고요. 수동적인 독서보다 능동적인 글쓰기가 더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현역 PD로 제 이름을 걸고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PD 지망생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오랜 세월 PD 공채를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네요. 최종 면접까지 몇 번을 올라갔지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PD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1시간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무엇이 부족한지 현업 전문가의 피드백을 듣고 싶습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 피드백을 드릴 수가 없어요. 그런 만남이 저를 너무 힘들게 하거든요. 제가 노동조합 집행부를 하고, 또 파업 때 미친 듯이 싸운 이유가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이입합니다. 보도국 기자나 교양국 피디들이 겪은 탄압 사례를 보면 피가 끓어 올라요. 코미디 피디인데, 방송 공영성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싸운 이유는, 타인이 받은 상처를 내 것인양 느꼈기 때문인지 몰라요. 힘든 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때론 밤에 잠도 안 올 정도로 막 힘들고 답답하고 그래요. 언론사 지망생들의 사연을 들으면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MBC가 지난 몇 년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는 것도 다 제 탓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분을 만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기껏해야 아이고, 이렇게 멋진 분을 왜 안 뽑았는지 저도 이해가 안 되네요.’입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타인에 대한 결례인데 말이지요. 우선 공채 면접 심사를 본 MBC 동료나 선배에 대한 실례지요. ‘나라면 당신을 뽑았을 텐데, 심사를 본 사람들이 안목이 부족한가봅니다.’ 이렇게 들리잖아요? 다음으로는 합격한 분들(새롭게 저의 회사 동료가 된 분들)에 대한 실례지요. 그 사람을 내가 모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는데, 감히 그 사람보다 당신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 제가 보니, 이런이런 점이 부족하네요. 이런 점을 고쳐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건 더 큰 결례에요.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뭐라 할 수 없거든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나의 결점을 고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어떤 사람의 인생은 수십년간 다양한 우연과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거든요.

입사 경쟁에서 떨어지는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다른 누가 당신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시절 인연'이 그런 거예요. 심사 위원이 다르고, 경쟁자가 다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1000 1의 경쟁률에서 떨어졌다고 낙담하지 말아요. 남은 999명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떨어트리는 거냐?’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래도 경쟁률이 5대1인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건 너무 아깝습니다.' 라고 느낄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아들이 둘인데요, 딸을 갖고 싶어 아이를 하나 더 가질까 싶다가도 또 아들이 태어날까 무섭데요. 그랬더니 누가, “아들 셋이 연달아 세 번 태어나는 건 확률 상 아주 드문 일이야. 걱정하지 말고 하나 더 가져봐.”라고 했답니다뱃속의 아이가 아들일 확률은 언제나 50%예요. 경우의 수가 둘이니까요. 아들 셋 나오는 확률이 낮다는 것은, 아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이를 차례대로 세번 가졌을 때, 그 셋이 다 아들일 확률이 낮다는 거지, 기존에 아들이 둘이든 열이든 새롭게 아기를 가진 경우, 확률은 항상 2분의 1입니다.

 

최종면접에 올라온 다섯 명은 거기까지 이미 수많은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1차 전형에서는 허수를 거릅니다. 재미삼아 지원한 사람들요. 최종 면접은 진검승부에요, 단순 경쟁률로 똑같이 보시면 안 됩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공채에 도전했는데, 왜 판판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문제가 아니에요. 경쟁률은 매번 똑같이 적용되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이나 여러 번 본 사람이나.

 

면접 심사를 보면, 가끔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책자로 만들어와서 내미는 지원자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MBC 인사부는 심사위원이 그런 책자를 받지 않도록 엄격히 규정으로 정해둡니다. 나중에 다른 지원자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인터넷에 항의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받아도 문제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 소문이 나면 더 큰 일입니다. 지난번 MBC 드라마 PD 공채에는 자기소개서를 책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붙었다더라.’ 사람들이 앞에서는 욕을 할 거예요. '아, 뭐야, 심지어 자소서도 책으로 만들어야 해?' 뒤로는 자소서를 책으로 제작하는 경쟁이 붙겠지요. 더 두꺼운 책, 더 고급스러운 책자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 편집자나 인쇄소에 제작을 의뢰하기도 할 겁니다. 이 경우, 누가 더 유리한가요? 대필 작가를 쓰고, 전문 편집자를 동원할 자금력을 가진 사람 아닌가요? 사람들의 삶은 또 그렇게 더 팍팍해질 겁니다.

 

세상에 나눌 수 있는 일자리가 기본적으로 부족한 게 문제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바깥에서 답을 구하지 말아요. 그 누구도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저는 제 몸을 굴려봅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2시간 동안 정신없이 달립니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 하남을 거쳐 남양주 다산 유배지까지 갑니다. (앗, 유배지가 아니라 생가군요!)

저는 힘들 때마다 이곳에 찾아옵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생각합니다.

'이제 가문이 망해서 너는 출세길이 막혔으니, 과거는 신경쓰지 말고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으렴.'

저도 그러려고요.

다산 생태공원을 걸으며 정약용의 일대기를 다시 새겨봅니다.

1801년 (40살)

신유박해 때 모함에 빠져 모진 고문을 받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가다

1822년 (61살)

스스로 묘지명을 짓고 여유당집 500권을 펴내다.

 

200년 전에는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블로그, 페이스북도 없었지요. 선비들이 쓴 많은 책들은 자식이나 주위 친구들에게만 읽히거나 그냥 버려지고 잊혀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내가 별 생각없이 쓴 글도 (운 좋으면, 혹은 운이 아주 나쁘면) 수백만명에게 공유되고 그럽니다. 정약용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기를, 혹은 임금이 읽고 불러주기를 바라고, 그 많은 책을 쓴 게 아닙니다. 유배지에 귀양간 선비의 글은 자칫하면 또 다른 필화로 이어지고, 책 한 권 잘못 읽었다가 멸문지화를 당하던 시절이에요.

저는 다산이 누군가를 위해 썼다기 보다, 우선 자신의 공부를 위해 책을 썼다고 믿습니다. 책을 쓰는 즐거움은 사람들이 읽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에 있다고. 

스스로의 공부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더 좋은 답을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해서...  

반응형

'공짜 PD 스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상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10) 2017.08.14
춤추는 책벌레의 피디 도전기  (24) 2017.07.03
휴먼 다큐 주인공을 고르는 법  (3) 2017.05.23
거리의 화가 이야기  (6) 2017.01.19
글쓰기를 부탁해  (3) 201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