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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23년 전의 나를 만나다

by 김민식pd 2017. 4. 7.

엊그제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 강연에 오신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후기를 공유합니다. 저는 이 글 속에서 23년 전 제 모습을 만나고 반갑고 또 놀라웠어요. 내가 잊고 있었던, 그 옛날 나의 모습을 다른 이의 기억속에서 만나는 게 감동이네요. 공유를 허락해주신 정일수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의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입니다.”(128,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김민식 씨(現 PD,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은 1994년 종로 외국어학원(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이었다. 그 시기 나는 대략 2년 전부터 사정상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돈 벌기위해 신문배달, 우유배달, 세차, 종로 금세공 공장, 음식 배달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 일곱 살이 마주한 그 시절 세상은 무척 거칠고 냉정했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한 끝에 나는 당시 김영삼 정권이 내세운 ‘세계화’ 바람에 휩쓸려 영어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보자 다짐 한 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무작정 종로 외국어학원에 등록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환경 탓에 당연히 학원비와 생활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바닥나버렸다.

더 이상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오며가며 알게 된 일본어를 공부하던 한 사람에게서 우연히 학원의 근로학생 제도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근로학생은 매일 수업이 끝나고 난 밤 10시 이후에 자신이 담당한 층의 모든 강의실을 청소하고 월급 대신에 ‘두 과목 무료 수강’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행운의 기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학원에서는 근로학생 자리를 두고 경쟁력이 무척이나 치열했었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원하던 영어를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하루 근로학생이라는 특권(?)으로 나는 내 청소구역이 아닌 3층 계단 바로 옆에 있던 ‘통역대학원 입시반(통대입시반)’ 강의실을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었다. 책상, 칠판, TV모니터가 전부였던 다른 강의실과 달리 이곳에는 빽빽이 들어찬 Lab 형식의 시청각실로 번호가 매겨진 좌석에는 헤드폰이 각 책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을 진행하시는 한민근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베게만한 큰 영한사전과 베게 사이즈의 반 정도 될 만한 롱맨영영사전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역시 또 베게만한 크기에 라디오가 있었다. 그 라디오의 버튼 중에 몇 개는 세월이 오래되어 빠져 버려서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밑 뚜껑(?)이 빠진 다양한 색상의 공기돌들이 버튼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며칠 후 쉬는 시간을 틈타 선생님을 찾아가 많이 부족하지만 수업을 수강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정일수씨, 한 6개월 정도 힘들더라고 꾹 참고 결석하지 말고 따라올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셨다. 잠시 머뭇거리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는 “거참~ 대답 시원찮다.”하시면서 웃으셨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선생님의 포스에 압도되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통대입시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민식씨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강 시간이 달라 함께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3층 로비에서 점심시간이나 수업 전후에 만났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항상 밝고, 발걸음이 바운스 타듯 경쾌했으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사 스타일은 사람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거의 90도 가까운, 요즘으로 말하자면 배꼽인사에 버금가는 적극적인 자세였다.

어느덧 해가 바뀌나자 김민식씨와 일부 학생들이 학원에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에서 한민근 선생님으로부터 그가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입학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과 동시에 영어교과서를 모두 외운 김민식씨의 공부법을 잠시 들려주시곤 하셨으며, 이후에도 종종 격려차원에서 문장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실 때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을 선생님께 들은 것은 대학원 졸업 후 MBC에 PD로 입사했다는 다소 의외의 내용이었다. 당시 나와 알고 지냈고 그와 함께 공부했었던 황선식씨나 이동훈씨 역시 그의 진로 선택을 두고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이후 이동훈씨도 곧이어 그의 대학원 후배가 되었다.

당시 학력이 중졸이었던 나는 통역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학력제한이 없었던 관광영어통역가이드로 진로를 선택하였다. 대학을 졸업 못하였으니, 대학원 입학은 서류에서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통대입시반에서 1년 가까이 한민근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훈련받은 덕분에 스무 살에 영어통역가이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1년 연수과정(한국관광교육원12기) 동안에는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김민식 작가의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이 아닌 나의 23년 전 이야기를 나열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기억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김 작가님의 책을 읽는 도중에 나는 상실된 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 기억의 무수한 편린들을 퍼즐처럼 하나하나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20대 초반에 나는 현실에 불만이 많아 가던 길(관광영어통역가이드)을 이탈한 후, 자처하여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언제나 책과 음악이 함께 했다.

기나긴(?) 방황을 벗어나니 어느 덧 스물네 살이 되었고, 다시 무작정 공부가 하고 싶었다. 자신있는 것은 영어뿐 이어서 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입학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주간지 TIME, 토익, 토플, CNN 청취가 영어공부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었던 내게 영문학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소설 수업에서 “문학은 당장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살아가면서 어떻게 밥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을 제시해준다.”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은 나로 하여금 문학 공부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민식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12년 이명박 정권 당시 ‘MBC 총파업’으로 회자되었던 ‘2012년 대한민국 언론 노조 파업’에 대한 언론 보도들에 귀 기울이면서였다. MBC 노조 총파업은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김재철이 MBC사장으로 취임한 뒤로 MBC의 공정방송 권위가 추락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당시 김재철 MBC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학 동문이라는 학연과 기자 시절부터의 친분을 내세운 전형적인 낙하선 인사로 MBC 사장에 취임한 이후 특혜지원 비리와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MBC 노조와 감사원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하였다.

MBC 노조 투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 가카헌정방송 <나꼼수>를 듣다가 팟캐스트에 당시 MBC PD이자 MBC 노조 부위원장 김민식씨가 당시 김재철 사장의 비리폭로를 위해 출연한 것이다. 종로 외국어학원에서 헤어진 이후 18년 만에 그 변함없이 맑고 뚜렷하면서 다소 장난기까지 넘치는 목소리와 조우하게 되자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그의 앞날이 걱정도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의 전투적 기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듯하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삶에 대한 열정이란 것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지 가끔은 혼란스럽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글을 쓴다. 정말이지 그는 어디에나 존재하는(omnipresent) 능력자와 같다고나 할까. 그에 대한 이런 인상은 아마도 그의 탁월한 시간 관리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지 모른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는 하루를 30시간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출간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단지 영어공부 방법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 책에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간을 확보하며 하루하루 소소한 계획을 실천함으로써 자신만의 큰 인생그림을 완성해가는 어느 평범한 사람의 경험이 녹아들어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감사의 글」을 읽는 동안은 콧날이 시큰해지기까지 했다. 김민식 작가가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한민근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보니 선생님의 모습이 내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오롯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뵙고 싶어졌다. 올 해 스승의 날에 꼭 찾아뵈어야겠다.

-강연에서 만난 후
그는 변함없이 여전했다. 찾아와 준 지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챙기는 발걸음은 여전히 묵직하면서도 경쾌하다. 그는 23년 전 종로 외국어학원 통대입시반에서도 그랬고 통역대학원에 입학 후에서 그랬을 것이고 MBC 총파업에서도 그랬다.

김민식 작가의 오늘 강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말은 "남이 나를 거절해도, 내가 나를 거절하지는 말자." 그리고 "우리가 머리 속에 그어 놓은 선"에 자신을 가둬두지 말자는 것이었다. 또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행복은 화려한 핑크빛이 아닌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자주 반복하고 싶어하는 마음 가짐이 아닐까한다. 돈보다는 시간이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착취를 토대로 부를 축적한다. 노동을 팔면서도 시간을 지배당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쩌면 '강도'보다는 '빈도'를 추구하는 삶을 수 있지 않을까?


#영어책한권외워봤니 #김민식

 

교보 문고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는, 4월 9일 일요일 댓글부대 정모에서도 들려드릴게요.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저의 옛날 모습을 만나니 반갑네요.

세상에 고마운 인연이 많음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정일수 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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