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14일차

아침에 맨발로 길을 나섭니다. 파제 마을은 길이 다 고운 모래예요. 해변까지 500미터, 맨발로 갑니다. 지갑이고, 휴대폰이고, 신발까지, 숙소에 다 두고 나왔어요. 트렁크 반바지 수영복에 티셔츠 한 장 걸치고 걸어가서 그 차림 그대로 바다에 입수. ^^ 1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1시간은 모래사장을 걷습니다. 물이 찰랑거리는 해변을 걷다 내키면 바다로 들어가고, 지치면 나와서 멍하니 바다를 봅니다. 아, 이런 신선놀음이 또 없네요.

 
이곳 파제 해변이 카이트 서핑의 성지가 된 이유가 있어요. 파도가 없어요. 돌이나 자갈처럼 뾰족한 것도 없이 고운 모래가 쭉 깔려 있어요. 카이트 서핑을 하다 넘어져도 다칠 염려도 없고, 비싼 카이트가 찢길 걱정도 없어요. 조종 미숙으로 넘어져도, 서면 바로 물이 허리 아래라 위험하지 않아요.

해변에서 물로 10미터 걸어들어갔는데, 아직도 깊이가 저 정도에요.

95년에 호주 배낭여행 갔다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스노클링하다 죽을 뻔했어요. 그 이후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배영과 평영을 제일 좋아합니다. 항상 얼굴이 물 밖에 있으니까요. 다만 수영장에서 배영은 힘들지요. 어디로 가는지 안 보여서 민폐랍니다. 바다에서 배영을 하면 파도가 칠 때 짠물이 코로 들어가 힘들어요. 이곳 파제 해변은 파도가 없어 배영을 하기 딱 좋네요. 바다 위에 드러누워 발로 물장구만 치면서 마음 편히 둥둥 떠 다닙니다. 이른 아침이라 카이트 서퍼도 없이, 넓은 바다를 혼자 독차지하네요.

모래사장 크기로 보면 거의 해운대만 합니다. 한 여름날, 해운대 해수욕장을 혼자 독차지한 기분~^^ 유러피안 아드레날린 정키들은 아침형 인간이 아닙니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대낮까지 늦잠을 자고요. 오후 3시 넘어 카이트 서핑하러 나옵니다. 킬리만자로라는 현지 맥주가 우리 돈 천원이니, 서퍼들이 밤늦도록 맥주 파티를 열 만 하지요. 저같은 아침형인간이 해변을 오전 내내 독차지하게 됩니다.

오후에는 날이 더워 숙소에서 쉽니다. 해먹에 누워 책을 읽다 낮잠을 청합니다. 귀여운 이탈리아 아가씨가 있어, 말을 걸었어요. 저는 항상 여행자를 만나면 물어봅니다. '그동안 가 본 곳 중 어디가 좋았어?' 이곳 잔지바르도 그런 질문 속에서 찾아낸 곳이고요.

20대 중반의 어린 아가씨인데 꽤 많은 나라를 다녔더군요. 심지어 중동 요르단이나 사우디까지. 오홀? 여행의 고수를 여기서 만나네? 저더러 이제껏 가본 나라 중 어디가 좋았냐고 묻더군요. 짠돌이인 제게는 가격 대비 성능비가 가장 중요합니다.

"난 네팔, 라오스, 태국, 이런 나라들을 좋아해."

"그래? 난 태국이 별로였는데." 

어라? 유럽 배낭족치고 태국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의외였어요.

"어디 어디 가봤는데?"

"방콕이랑 파타야. 둘 다 별로였어." 

이 친구, 엉뚱한 곳만 골라 다니고 있네요. 저도 방콕, 파타야, 푸켓 같은 태국의 관광지도 가봤지만, 태국의 진짜 매력은 치앙 마이나 코 사모이같은 시골에 있거든요. "왜 그렇게 큰 도시만 다녀?" 하고 물어봤더니, 에티하드 항공의 여승무원이네요. 비행기가 내리는 큰 도시만 본 겁니다.


사람들은 촬영이 끝나면 장기 휴가를 낼 수 있어 드라마 피디처럼 여행다니기 좋은 직업이 없다고 하는데요. 저는 정작 파일럿이나 스튜어디스가 부러워요. 일 자체가 여행이니까요. 그런데 나름의 애환이 있네요. 테레지아의 경우, 기착지에서 하루나 이틀 쉬는 게 전부이고, 이렇게 휴가를 내는 것도 가끔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매일 비행기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이 부럽기만 하다고.

 

여행하기 좋은 직업은 따로 없어요.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직업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다닙니다.

 

파제 숙소에 아시아인 여행자는 저 뿐이에요. 그러다보니 친구를 쉽게 사귀게 됩니다. 다들 한국이나 일본, 중국에 대해 궁금해하거든요. 어려서 영어를 공부한 덕에 즐겁게 다니고 있어요.  

혼자 보내는 파제 해변의 하루는 심심하게 흘러갑니다. 수영과 독서와 낮잠,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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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 2017.04.0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셨네요. 해변을 독차지한 기분 정말 좋으셨겠어요. 스튜어디스는 전세계 어디든 여행하니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여행하기 좋은 직업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오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좀 바꿔야겠어요. ^^

  2. 첨밀밀88 2017.04.05 0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정신이 온통 회뜨는데 가 있어서 이제야 봅니다. ^^ 아직도 여행중이시군요 ...

  3. 징기스 2017.04.05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바로 거기에 가고싶습니다. 피디님 글보면 안가고는 못 배길것 같습니다.언젠가 직접 보기로하고 이 순간은 피디님 사진으로 즐깁니다.^^

  4. 2018.10.21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