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행복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지요. 다만, 어떤 일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잘 하는 지 못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예능 PD로 일했지만 정작 버라이어티 쇼 연출은 잘 못하는 편이었어요.

입사하고 늘 시트콤 연출만 했더니 선배들이 걱정하더군요. 버라이어티 쇼가 예능국의 본령인데, 너무 변방 프로그램만 하는 것 아니냐고. '논스톱' 시리즈를 2년 반 동안 연출하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발령이 났습니다.

본격 예능, 그것도 주말 메인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조연출 때 버라이어티 쇼 편집을 많이 해보지 않아 한참 헤맸습니다. '박수홍의 러브하우스'라는 코너를 연출했는데, 웃기고 싶은 내적 본능과, 울려야하는 프로그램의 소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요. 그러니 웃기는 것도 어중간하고, 울릴 때 제대로 울리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나, 예능 피디 맞아?'하고 좌절하던 무렵, 인생의 은인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하도 헤매니까, 당시 조연출들 중에서 버라이어티 쇼 편집을 가장 잘 한다는 후배를 제 코너로 배정한 겁니다. 그게 바로 김태호였습니다. 벌써 14년 전 일이네요. 

일 잘 하는 조연출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사실 김태호는 이미 신입사원 면접때부터 화제였지만...) 정말 그 친구의 손에 들어가니 제가 아무리 거지같이 찍어왔어도 뚝딱뚝딱 제대로된 편집본으로 만들어내더군요. 편집본 시사를 하면서 많이 놀랐어요. '신이시여, 이게 진정 제가 찍은 방송인가요?' 편집의 신을 만났더니, 예능 열등생도 자신감을 얻게 되는 기적이!

 

조연출로서 김태호가 일을 잘 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윗사람 눈치를 크게 살피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편집했다고 연출 선배가 싫어하는 거 아닐까?' 그런 거 신경쓰지 않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본령은 무조건 재미라고 믿는 친구입니다. 선배의 의견보다 재미가 더 중요해요. '재미있으면 됐지, 뭐!' 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합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합니다. 일하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재량껏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야합니다. 그는 촬영본이라는 한정된 자원 위에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붓습니다. 자막, CG, 슬로우모션이나 자료화면 등등 모든 편집기법을 동원합니다. 선배가 던져준 촬영테이프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려면 고민스럽지만, 촬영본은 소스 중 하나일뿐! 이라는 자세로 일을 하면 작업이 훨씬 더 즐거워집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은 많아집니다. 그는 엄청난 일벌레에요.)

셋째, 그는 새로운 시도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연출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기존 포맷에 안주하는 일입니다. 잘 하는 것만 하려다보면 어느 순간 식상해집니다. 김태호는 항상 새로운 아이템에 도전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외적 경계를 넓혀갑니다. '무한도전'이라는 포맷을 가지고 코미디, 스포츠 쇼, 음악 공연, 코미디 쇼, 시트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합니다. 그 덕분에 예능의 경계가 무한확장되고 있어요. 끝없는 호기심과 겁없는 도전 정신 덕분이지요.

이렇게 일 잘 하는 조연출을 만나면 연출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업무 분담을 하면 됩니다. 나는 기획과 촬영을 할테니 너는 편집을 맡아줘. 태호가 일하는 편집실 의자 뒤에 앉아 거치적거리기 싫었어요. '마음껏 일해봐.' 하고 나갔지요. 그랬더니 하루는 부장님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편집은 조연출에게 맡기고 연출은 놀러다니냐? 하시더라고요.

"선배님, 조연출이 저보다 편집을 더 잘 할 때, 후배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연출의 역량입니다."

김태호가 내 조연출로 일했다고 자랑하면, 'PD님한테 일을 배운 거네요?'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가르쳐준 건 하나도 없어요. 제게 왔을 때, 이미 김태호는 예능 PD로 완성형이었답니다. 제가 태호에게 해준 건 아마 자긍심 고취일 거예요. '저 선배보다는 내가 편집을 훨씬 더 잘 하는구나.' 창작자에겐 그런 자신감이 자산이거든요."

김태호에게 바닥을 깔아주어 스타 PD로 발돋움하게 도와준 선배가 바로 접니다. ^^ 그리고 김태호가 PD로 입봉하는 순간, 저는 드라마로 이직했지요. 태호랑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

 

첫 책을 낼 때, 김태호 PD가 추천사를 써줬어요.

        

'그는 항상 바빴다. 일하느라, 노느라. 그러나 항상 즐거웠다. 어느덧 40대가 되고 흰머리가 자랐지만, 시간의 속도를 앞질러 살아온 이 소년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과 활기찬 목소리로 또 뭔가를 하자고 한다. 어쩌면 그와 함께 놀면서, 나 역시 신나게 나라는 직업을 만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번 영어 공부 책에도 김태호 PD의 추천사를 실었습니다.

'공부조차 즐겁게 만들어버리는 저자를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살면서 영어를 써먹을 일이 얼마나 될까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이렇게나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답한다. 그것도 아주 신나서. 그는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단순하지만 우직하게 달려온 진짜다. 책을 읽다 보면 영어실력만 향상되는 게 아니라, 이러다 정말로 인생이 바뀔 것 같다.'

책 표지 띄지에 실린 '김태호 (MBC <무한도전> PD)'라는 글자를 보며 생각합니다.

'태호야, 니가 내 인생의 은인이로구나.'

못난 선배는 항상 이렇게 후배에게 신세만 지면서 사네요.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추천했을까?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온라인 서점으로 달려가보세요! (^^)

 

(예스 24)

http://www.yes24.com/24/Goods/35095534?Acode=101

 

(교보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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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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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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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생충 2017.01.09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호피디님도 피디님같은 좋은 선배를 만나서
    더 역량을 펼 수 있었을 거 같은걸요~!!
    인생이 바뀔 거 같다는 책 내용 궁금하네요~

  2. 섭섭이 2017.01.09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김PD님과 김태호PD 둘다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을 연출해주셔서 좋아하는 PD분들인데..
    오늘 글을 보면서 김PD님의 연출 역량은 (인재를 적재적소 배치) 역시 대단한거 같아요.
    김태호PD 추천사가 제 마음을 표현해주는거 같아 놀랐네요. ^^ 저 같은 경우에도 작년에 영어공부하러 김PD님 블로그 왔다가 영어실력만 향상되는 게 아니라,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김태호PD 얘기를 읽다보니 예전에 김민식PD님과 김태호PD을 같이 볼 수 있는 영상이 기억나서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IQ1s4XjEg

  3. 2017.01.09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7.01.09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죄송합니다.
      rb23님은 골수 댓글부대 회원이신데 당연히 모셔야지요.
      카운팅은 해놓고 댓글만 빼먹었어요.
      21일에 뵐게요!

    • rb23 2017.01.09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성실하게 다하지 못했는데도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21일에 뵈어요! 감사합니다 ^^

  4. 첨밀밀88 2017.01.09 1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보문고에 주문할때는 책이 13일에 온다고 했었는데요. 벌써 받았습니다.

    당첨된 책은 조카에게 선물로 줬고
    산거는 그날 가서 싸인 받을게요. ㅋㅋㅋ

    근데 진짜로 군대에서 성경책을 외우신건가요??
    혹시 성경을 통채로 외우셨다면 천재고
    어디를 얼만큼 외우셨는지 궁금하네요 ㅋㅋㅋ

  5. 동우 2017.01.09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늦었지만 예비로 신청해도될까요?

  6. 게리 2017.01.09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끈따끈책 잘받았습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 감사드립니다

  7. 서경화 2017.01.10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받았는데 완젼 신나요..
    프롤로그 보고 공감하던차에
    김성령 배우가 쓰신 추천사를 보고
    "맞아 맞아~" 하며 혼자 신나고 있습니다.

    제 카톡프로필에도 올렸어요..
    여기저기 홍보하고 싶어지네요.

    초6아들하고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책내주셔서 무한 감사드려요..

  8. 제주도심플주의자 2017.01.10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라 배송이 3일이 걸려 오늘 받아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중간에 포기할까봐 결심하지 않았던 저를 깊이 반성하고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는 것보다 더슬픈게 내가 자신을 안 믿어주는것..읽다가 거짓말 조금보태 울뻔했습니다 ㅠ

    이러다 정말로 인생이 바뀌면, 그때 울려고요..ㅋ
    21일 기대됩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응원합니다!!

  9. 이기군 2017.04.04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호피디가 마음씨 넓은 좋은 선배를 만났었네요. 시청자들이 더불어 복 받았죠~

  10. starbell 2017.09.20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태호피디님 추천사를 보곤 주문했는데 아직 못읽어봤어요;;;;;
    당장 집에 가서 읽고 댓글부대에 참가할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