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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자전거 여행과 김영갑 갤러리

by 김민식pd 2016. 10. 26.

제주 자전거 일주 3일차

오늘은 가장 먼 거리를 달리는 날인지라 아침 일찍 서귀포 숙소를 나왔어요. 어떤 여행이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아침에 동 트면 숙소를 나와 구경 다니다 점심 먹고 오후 3시쯤 숙소에 들어가 낮잠을 자고, 쉬었다가 저녁 먹고 동네 산책, 그런 다음 9시에 잠들기,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보며 하루를 준비하고... 이게 여행지에서 저의 일과지요.

이건 사실 저의 평소 일과이기도 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여행 왔다고 삶의 리듬이 바뀌면 일상에 복귀해서 힘들어요. 여행도 일상과 같은 패턴으로 즐깁니다. 아니, 일상을 하루하루 여행처럼 즐기는 거지요.  

쇠소깍 가는 길, 오늘 첫번째 인증센터는 쇠소깍에 있습니다. 용두암, 송악산, 성산일출봉 등, 자전거 일주 인증센터들만 다 돌아도 제주도 해안가에 있는 명승지는 다 돌아봅니다.  

쇠소깍은 제가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오는 곳입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이 바다를 만나는 광경, 장관이에요.

올레길을 걷다 만났던 돌하르방을 자전거 여행 와서 다시 만나니 반갑군요. 자전거길과 올레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그럽니다.

가다보면 이렇게 찻길 한 가운데를 큰 개가 막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지가 산적도 아니고, 통행세를 걷나? 제주도의 개들은 유순해서 별 문제가 없지만 가끔 자전거를 보면 짖으면서 쫓아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개는 시골길을 달릴 때 위험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갑자기 개가 달려들면 놀라서 핸들을 꺾다가 옆에 오는 차랑 부딪힐 수도 있고 넘어지기도 하거든요. 오랜 경험으로 보아, 자전거를 타다 개를 만나면 개에게 물려서 다치는 것보다 사람이 당황하거나 놀라 넘어져서 다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개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올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말벌떼의 습격이 잦았어요. 말벌은 영역 보호 본능이 강해서 자신의 벌집 근처에 누가 나타나면 침입자로 판단해 공격을 합니다. 벌에게 쏘였을 때, "아니, 이 조그만 놈이 겁도 없이!" 하고 벌과 싸우면, 침입자 경보가 울리면서 벌들이 떼거지로 덤빕니다. 한 방 쏘인다고 죽지는 않아요. 문제는 그 자리에 서서 벌과 싸우면서 여러방 맞으면 쇼크사 할 수 있지요. 벌에게 한 방 쏘이면, 무조건 그 자리에서 달아나야합니다. 벌집에서 멀어지면 쫓아오던 벌떼도 돌아갑니다. 그게 집을 지키는 말벌의 본능이니까요.

개도 마찬가지예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개가 덤비면, 그냥 계속 달리면 됩니다. 한동안 쫓아오면서 짖어대도, 집에서 멀어지면 다시 돌아갑니다. 자전거를 그 자리에 세우면 안 됩니다. 공격 의사로 판단하거든요. 짖으며 쫓아오는 개에게는, 웃으면서 "어, 그래, 너 집 잘 지키는구나. 장하다." 하면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면 됩니다.

유순한 녀석들은 오징어 다리 하나 주고 길들여서 같이 놀기도 하지요. ^^  

부처님 말씀에 '제1의 화살은 맞아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슴이 길을 가다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았어요. 뒷다리에 꽂힌 화살을 보고, '아니 이 놈은 뭔데 이렇게 따끔따끔 아프지?' 하고 그 자리에 뱅뱅 돌면서 화살을 뽑으려 하면 사냥꾼이 날린 제2의 화살을 맞고 잡히고 맙니다. 한 대 맞으면 그 자리에서 달아나야합니다.

살다가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장사가 망하거나, 사기꾼에게 돈을 잃거나. 이건 제1의 화살입니다. 장사가 망하거나 사기를 당했다고 부부가 싸우기 시작하면 가정 불화가 생깁니다. 제1의 화살은 누구나 맞을 수 있습니다. 제2의 화살은 피해야 해요. 

가다보니 바닷가에 멋진 카페가 조성이 되어 있군요.

바다가 보이는 너른 잔디밭이 마치 발리에 있는 리조트처럼 꾸며져 있어요. 여기는 어디일까요?

태흥2리 마을카페입니다. 마을 어귀 바닷가 공용 공간에 이렇게 잔디를 심고 야자수를 가꾸고 예쁜 의자들로 공간을 꾸몄네요.

이른 아침이라 아직 아무도 없어요.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갑니다.

 

강화도나 대부도로 자전거 여행을 다니면, 경치가 아름다운 바닷가마다 꼭 카페나 펜션이 지어져 있어요. 전망 좋은 곳이 다 사유지라 길 가는 이가 쉴 곳이 없어요. 자연 경관을 사유화하는건데, 이건 좀 안타까워요. 

이런 마을 카페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하릴없는 노인들이 나와 커피를 팔고, 하릴없는 청년백수들이 커피값 부담없이 놀다가고. 이것이 백수가 꿈꾸는 공유 경제입니다.      

표선 해비치 해변입니다. 아침에 숙소에서 토스트 네 쪽 먹고 몇시간을 달렸더니 허기지네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오션 뷰 레스토랑'(?)에 앉아 만찬을 즐깁니다.

표선 해안가를 따라 달리다 중산간으로 핸들을 꺾습니다. 잠시 자전거 일주도로에서 벗어나 찾아갈 곳이 있어요.

표선해비치 지나 삼달교차로에서 1.5킬로 정도 올라가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나옵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고 꼭 다시 오고 싶었어요.

2016/10/21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그 섬에 가고 싶다

김영갑 선생이 루게릭 병과 싸우며 폐교를 갤러리로 꾸민 이 곳. 선생의 모습을 TV 화면으로 다시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평생 제주도에서 사진만 찍겠노라고 내려왔어요. 사진 공부를 이론적으로도 체계적으로도 해본 적이 없어요. 몇년을 오름만 찍었지만, 끝이 안 나요. 끝없이 변하는 오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자전거로 해안일주를 하면, 중산간의 오름을 볼 수 없습니다. 제주도에만 있는 특별한 자연 경관이 바로 오름의 풍광이거든요. 자전거 일주 오셨다면, 잠깐 김영갑 갤리리에 들러 오름의 경치를 맛보고 가세요. 시청각실에서 상영중인 다큐를 보시면, 언제 오더라도 화면 속 사진을 통해 제주도의 사계절을 볼 수 있어요.



다시 자전거를 달리다, '귤 1킬로에 2천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급히 세웁니다. 작은 귤 스무 개 정도 든 한봉지에 2천원. 가을에 제주도에 오면 싸고 맛있는 귤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바닷가 돌벤치에 앉아 짠 갯내음 맡으며 새콤달콤한 귤을 한입 가득 먹습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외딴 바닷가에 푸드 트럭 한 대가 서 있어요. 핫도그 3500원! 하기에 세우고 간식 삼아 먹습니다. 어라? 그런데 맛이 범상치 않아요. 뉴욕 스타일 핫도그의 맛이 제대로 살아있네요.

'써니스 키친'

가게 이름이며 핫도그 맛이며, 주인장의 포스가 범상치 않아 슬쩍 말을 걸어봤더니, 이 분 미국서 33년을 살다가 오셨대요. 미국인들이 파라다이스라고 부르는 하와이 섬의 마우이에서 8년을 살았다고. '어쩐지!"

나이 드니까 모국어가 그리워 돌아왔다고 하시네요. 제주도에 정착한지 몇 년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주도가 더 좋아진다고, 이 섬의 매력은 끝이 없다고 하십니다. 처음에 오면 바다가 좋은데, 지나면 산도 좋고 오름도 좋고 다 좋대요.

해외에서 살다가 서울살이는 못 할 것 같아요. 제주도라는 곳이 있어 한국에서도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이 생겨 다행입니다.

저는 그래도 서울에서 살 거예요.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게 많거든요. 지하철, 도서관, 북한산, 한강 등등. 손주도 봐야하고 일도 해야 하고. ^^ 그래도 은퇴하고 일년에 한번씩 제주도에 여행오고 싶어요. 그럼 되지요, 뭐.

오늘은 구좌읍 평대 해수욕장에 있는 '언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풉니다. 오래된 살림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씁니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달린 후, 오래된 시골집 마루에 놓인 의자에 기대 앉아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오늘도 이 집에 남자 손님은 저 뿐이라, 3만원 내고 독채를 쓰게 되었군요. 주인장 커플에게 미안하네요.

 

3일차 코스

서귀포 - 쇠소깍 - 남원읍 - 표선해비치 해변 - 김영갑 갤러리 - 성산일출봉 - 세화항구 - 평대 해수욕장

75킬로 (5시간 거리)

아, 벌써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는군요. 가기 싫어지는 걸요?

가야지요, 가서 일 하고 돈 벌어야지요. 애도 봐야지요. 낙원에서의 3박 4일에 감사하며 이 추억으로 또 한동안 버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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