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입사하고 1년쯤 된 1997년에 회사에서 토익 시험을 봤습니다. 해외 연수자 선발할 때 평가 기준이라고요. 단체로 토익을 보고 나오는데 주위에서 선배들이 그러는거에요. "이건 뭐, 민식이가 1등하는 거 아냐?" 네, 당시에는 토익을 공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900점 넘는 사람도 드물던 시절입니다. 980점인가 나왔다기에 인사부 직원한테 슬쩍 물었어요. "혹시 1등은 누구인가요?" "네, 편성국 부장님이 1등 하셨어요. 990점 나와서."

굴욕이더군요. 동시통역사 출신 피디라고 주위에서 '니가 MBC에서 영어 제일 잘 하지 않냐?' 하고 추켜주는데, 숨은 고수가 계시더라고요. 역시 인생, 겸손하게 살아야... 알고보니 그 부장님은 어학을 공부하는 게 취미시더라고요. 퇴근하면 서재에 틀어박혀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라틴어까지 공부하시는 분. 외국어를 재미삼아 공부하는 데 7개 국어에 능통하시다고... 업무상 필요한 것도 아닌데,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셨으면 사모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신대요.
"아니, 하라는 애들은 공부를 안 하고, 애들 아빠가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니..."
역시 좋아서하는 공부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제가 올린 영어 학습법을 아이들에게 시키는 분이 있을까봐 슬쩍 걱정이 됩니다.
"야, 중학교 영어 공부는 교과서만 외우면 된대. 학원 다닐 필요도 없어. 집에서 책만 외워도 다 된다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요.
영어 암송은 무척 힘듭니다. 그냥 학원에 가서 앉아있는 게 편할 수도 있어요. 수동적으로 앉아있기보다 능동적으로 외워야 어학 실력은 늡니다. 하루에 10문장, 간단해보여도 매일 매일 10문장씩 외우고, 한달에 300개를 누적 암송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꾸준히 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걸 스스로 마음을 내어 해야지, 남에게 억지로 시키면 효과는 없고 괜히 아이와 관계만 나빠집니다.

공부는 직접 하는 게 맞습니다. 본인이 먼저 솔선수범하시고, 그걸 본 아이가 따라하면 다행이고, 안 해도, 내가 영어가 늘었으니 되었다, 하고 마음을 내셔야 합니다. 아빠보다 공부 안 한다는 그 부장님 따님, 알고보니 외고 나와 명문대에 간 외국어 특기자랍니다. 아빠가 퇴근만하면 친구 안 만나고 집에 들어와서 그 재미난 TV도 안 보고 서재에 틀어박혀 온갖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외국어 공부가 저렇게 재미있나? 아버지가 어학을 즐기는 모습이 아이에게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남이 시켜서 열심히 하는 공부, 스스로 즐기는 사람을 절대 못 당합니다. 스스로 하는 영어 공부, 즐거움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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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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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첨밀밀88 2016.09.30 2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기는 사람은 진짜 못당하지요..ㅋㅋ
    저는 9월28일부터 초밥학원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오는 드디어 초밥을 쥐었습니다.
    학원에서 남는 밥 싸가지고 세종시 집으로 가져가는 중입니다.
    집에가서 재료가 없으니 그냥 계란초밥이랑 스팸초밥이라도 해 먹을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