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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때로는 정량적인 인생

by 김민식pd 2016. 8. 5.

(댓글부대 2차 모집 5주차 공고입니다.)

 

어제 소개한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읽다가 콱! 찔린 대목이 있어요. 질의 응답 시간에 누가 묻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비결은 무엇인가?' 유시민 선생님은 세상에 그 많은 책을 어차피 다 읽을 수는 없으니 굳이 많이 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많이 읽으면 좋긴 하지만 무작정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삼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1년에 100권 읽기' 같은 목표를 세우는 분들이 계신데 절대 그러지 마세요. 뭐하러 그럽니까? 100권을 읽으나 90권 또는 50권을 읽으나 무슨 차이가 있게요? 깊이 공감하는 순간이 한번도 없다면 100권을 읽어도 읽으나 마나예요.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입니다. 한권이라도 음미하면서 읽고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게 그런 것 없이 100권을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독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게 어리석은 것처럼, 속독하려고 애쓰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좋은 책은 천천히 아껴가면서 읽어야지요. 맛난 음식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씹어 먹는 것처럼요.'

(유시민의 공감필법, 104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많이 찔렸어요. 요즘 저는 1년 300권 읽기를 목표로 무식하게 와그작와그작 하루 한 권씩 씹어먹듯이 읽어치우고 있거든요. '어쩐지, 요즘 읽은 소설들이 재미가 없더라니... 하루 한 권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다보니 글의 맛을 음미하지 못한 탓이로구나!' 역시 책은 이래서 좋아요. 점잖게 저를 쿡 찔러 주거든요. 만약 누가 옆에서 "1년에 300권을 뭐하러 읽어?"하고 말했다면 아마 자기 방어모드로 변명하기 급급했을 거예요. 자칫 그러다 마음 상할 수도 있고요. 남에게 섣불리 해주는 충고보다, 책에서 스스로 깨닫는 가르침이 이래서 좋아요.

그렇다면 저는 왜 1년에 300권을 읽고 있을까요? 정체성의 위기 탓이죠. 저는 평생 로맨틱 코미디 연출을 업으로 살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5년째 제 이름으로 된 드라마 한 편 못 만들고 있어요. (감히 불평하고 싶지는 않네요. MBC에는 저같은 입장에 처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원래 나이 60에 정년 퇴직하고도 프리랜서로 드라마를 연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래서 술 담배도 안 하고 운동하며 건강 관리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현업에서 멀어진 지 너무 오래라 나중에 감이 떨어져서 일을 하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그래서 퇴직 후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조직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그렇게해서 꿈꾸게 된 직업이 전업 작가입니다.

나이 60에 작가로 살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책을 잘 쓰려면, 일단 많이 읽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어요. 1년에 300권 읽기. 인생을 바꾸고 싶을 때, 저는 항상 스스로와 약속을 합니다. 하루 영어 문장 10개 외우기, 하루 책 한 권 읽기, 하루 블로그 글 한 편 쓰기, 이런 식으로요.

어려서 저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불만이 많았어요. 아버지는 제게 정량적인 목표를 항상 제시하셨어요. 반에서 5등, 방학 숙제 하루에 문제지 10장 풀기, 이런 식으로. 저는 그런 아버지의 강요가 싫었어요. 그래서 대학에 온 후, 그냥 즐겁게 막 살았어요. 놀아보니, 노는 게 참 재미있더군요. 내가 그렇게 잘 노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인생에 발전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루에, 이거 하나는 하자.

'연출을 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하고 말하고 싶어요.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고, 글을 한 편 씩 쓰자.' 그게 제가 제 자신을 대접하는 방식입니다.

 

하루 한 과, 문장 6개를 외우기, 이건 다른 사람이 시킨 숙제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와 맺은 약속이지요. 때론 삶에서 이런 게 필요해요.

나와의 약속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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