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2차모집 4주차 공고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어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 소설의 초고를 쓰기 위해 하루 20매씩 꼬박 6개월 동안 작업한답니다. 그런 다음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수정 작업에 들어가기 전, 원고로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거죠. 때로는 한 달 씩 휴식을 취하며 자신이 쓴 작품을 머릿속에서 지웁니다. 그런 후 다시 원고를 들여다봐야 객관적 시선에서 글의 약점이 드러난다는 군요. 경이로운 것은, 이렇게 소설을 쓰다 쉴 때, 하루키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번역이랍니다. (아니, 쉰다면서요?!)

'일을 쉬기 위해 다른 일을 한다니! 일 중독 아냐?' 싶다가 생각해보니, 저도 예전에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끝내고 머리를 식히려고 SF 번역을 한 적이 있네요. 드라마 연출의 경우, 일하는 중 몰입이 강해서, 끝나도 한동안 그 느낌이 유지됩니다. 망하기라도 한 경우, 틀어박혀 쉬면서도 실패의 기억이 계속 맴돌아요. '아, 그때 대본 방향을 틀었어야 하는데...' '아, 캐스팅이 미스였나?'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SF 번역을 했습니다. 미래 세계의 광활한 우주 속으로 여행을 떠나, 영어 문장을 하나 하나 붙들고 있다보면 실패의 기억도 어느새 잊혀집니다.

예전부터 늘 궁금했어요. 하루키는 어떻게 번역일을 하게 된 걸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중반쯤부터 영어 소설을 원문으로 읽었습니다. 딱히 영어가 특기였던 것은 아니지만, 꼭 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어서 혹은 아직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어서 고베 항 근처 헌책방에서 영어 페이퍼백을 한 무더기에 얼마, 라는 식으로 사다가 뜻을 알든 모르든 닥치는 대로 와작와작 난폭하게 읽어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튼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할까, 그다지 저항감 없이 알파벳 책을 읽어냈습니다. 그 당시 고베에는 외국인이 많이 살았고 큰 항구가 있어서 선원들도 많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고 가는 양서가 헌책방에 가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내가 당시에 읽은 대부분이 화려한 표지의 미스터리나 SF 같은 것이라서 그리 어려운 영어가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제임스 조이스라든가 헨리 제임스라든가, 그런 까다로운 책은 고등학생으로서는 도저히 감당을 못하지요. 하지만 어쨌거나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은 영어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호기심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영어 시험 성적이 향상되었는가 하면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전히 영어 성적은 시원찮았습니다.

어째서인가. 나는 당시 그것에 대해 상당히 골똘히 고민해봤습니다. 나보다 영어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주 많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들은 영어 책 한 권을 통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충 슬슬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왜 내 영어 성적은 여전히 별로 좋지 않은가.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한 끝에 내 나름대로 납득한 것은 일본 고등학교에서의 영어 수업은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실제적인 영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대학 입시의 영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는 것, 그것을 거의 유일한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 때문에 영어(혹은 특정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입니다. 그것이 애매하면 공부는 그냥 '고역'이 되어버립니다. 내 경우는 목적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아무튼 영어로 (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다. 우선은 그것뿐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10~212쪽)

 

영어 교육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하루키에게 영어가 도움이 되는 순간은, 번역을 할 때가 아니라 소설을 집필할 때입니다. 일단 어린 시절 원서로 읽은 많은 양이 그에게 문학적 상상력의 토대를 제공했고요. 지금은 그에게 기성 문학계와 물리적 거리를 확보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 평단에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하루키는 일본을 떠나 외국에서 집필 작업을 합니다. 유럽 어느 도시의 카페나, 하와이 호텔 주방 탁자 위에서 소설을 쓰지요. 장기간 외국 생활을 하고 외국 대학에서 영어 강의도 하며 머리를 식히는 건, 고교 시절 혼자 영어를 익힌 덕분입니다. 

하루키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즐거운 취미였어요.

여러분에게 있어, 영어 공부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영어를 통해, 여러분의 즐거운 꿈이 함께 이뤄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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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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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업 2016.08.05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아이가 영어로된 동화 책을 내밀면 가끔 당황하게 됩니다...ㅠㅠ. 해외여행 후에는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곧 잊고 마는데 스스로를 좀 더 자극해야 겠습니다.

  2. 2016.08.28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6.08.29 0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고민이네요...
      선생님 아이의 경우,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로 익히는 중이라 영어를 제3언어로 공부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는 않거든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영어 책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보통의 경우, 저는 아이들에게는 영어 교과서가 가장 좋은 교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전문가이신 학교 선생님들이 선택한 책이 최고가 아닐까요?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아이에겐 이미 풍성한 어학 환경이 갖추어져있으니 영어 공부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