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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게으름에 대한 찬양

by 김민식pd 2016. 6. 15.

2016-128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알파고의 등장으로 앞으로는 '노는 인간'의 시대가 올 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일은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에게 맡겨놓고 인간은 여유로운 일상을 누려야합니다. 아마 일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야하는 사람도 나올 겁니다.  이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기왕 놀아야한다면, 잘 놀아야겠지요. 이미 1935년에 버트런드 러셀이 그런 이야기를 한 바가 있어요. 1935년에 쓰인 책을, 1997년 한국에서 번역했고, 2016년 지금 읽어보니 더 크게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1800년대 산업 혁명 이후 영국의 노동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노동 시간이 줄지는 않았어요. 산업 전반의 생산성 증가 추세로 보면 8시간 근로 대신 4시간 근로를 도입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아래는 4시간 노동제를 주장한 러셀의 글입니다.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이 반드시 불성실한 일에 쓰여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얘기는 하루 4시간 노동으로 생활 필수품과 기초 편의재를 확보하는 한편, 남는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곳에 사용되도록 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중략)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 시합을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적극적인 에너지들이 모조리 일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여가가 더 있다면, 그들은 과거 적극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맛보았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여가를 즐기는 계층은 소수였고 일하는 계층은 다수였다. 유한 계층이 누리는 편의는 사회 정의란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 결과 유한 계층은 압제적으로 되어갔고 자기들만의 공감대 내로 좁혀지고,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만들어 내야 했다. 이 같은 점들은 이 계층의 우수성을 상당히 위축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계층은 이른바 문명이란 것을 담당하는 공헌을 했다. 예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발견들을 이루었다. 책을 쓰고, 철학을 탄생시키고, 사회적 관계들을 세련시켰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 운동조차도 흔히 위로부터 일어난 것이었다. 유한 계층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결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젊은 작가들은 기념비적인 대작을 내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써서 주의를 끌어보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략)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위의 책 30~33쪽에서 발췌)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의 창의성이 곧 경쟁력입니다. 창의성이란 언제 발현될까요? 잘 놀 때입니다. 미친듯이 일만 하는 사람에게 창의성을 기대하기란 힘듭니다. 노는 것이 직업이 되는 시대, 일을 놀이처럼 하는 사람이 창의성도 뛰어납니다.

요즘 우리는 게임이나 TV 시청 같은 수동적인 여가에 넋을 빼앗깁니다. 이건 우리가 삶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 조리돌림을 당하는 중학생 남자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공을 찰 힘도 없어요. 그러니 엄지를 놀려 스마트폰 게임만 합니다. 야근에 잔업까지 회사에서 시달린 직장인은 퇴근하고 취미 활동이나 운동을 할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게임을 하거나 축구 중계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요.

앞으론 게으름을 찬양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일은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은 취미나 예술 활동에 정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대에는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보다 (지금 교육은 정확히 그런 사람만 만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겁게 하고 사는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한 삶을 살 겁니다.

이미 1940년에 이런 주장이 나왔는데, 그때보다 훨씬 더 발달된 문명을 가진 우리가 여유를 누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산성 증대는 이제 인공지능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여가 활동 증대를 목표로 살자고요. 

 

special thanks to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듣고 책을 찾아봤어요.  표제작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가장 읽을만 합니다. 나머지는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칼럼인데 지금은 시류에 좀 맞지 않네요. 책도 절판되어 구하기도 어렵고요. 저는 그나마 상호대차로 다른 동네 도서관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전문을 감상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영하씨의 팟캐스트를 들어보세요.

http://www.podbbang.com/ch/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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